친구야.
나는 오늘 처음으로 군복을 입었다.
몇 해 전, 너는 이 옷을 입고 숱한 긴긴밤을 보냈겠구나.
갑판 위에서 너는 시를 썼다고 했다.
너의 자그마한 글들을 내가 비록 보지는 못했지마는
오랜만에 만난 너의 말들은 퍽 아름다워져 있었다.
친구야.
별과 달과 먼 마을의 불빛들, 소라의 노랫소리와 짠 소금바람이 너를 위로하는 동안 나는 네게 시 한 편 보내주지 않았다.
먼 날들이 지난 긴긴밤, 비로소 나는 네게 편지를 쓴다.
친구야.
너와 내가 함께 아는 이름들이 있다.
서로 지난하게 아끼고 스미며 때로 부딪히고 용서를 주고받아온 그 이름들은 내게 오래된 위로였다.
구름이었다. 나는 새처럼 너희에게로 가고 싶었다.
내 삶에 무던히도 찾아온 바람들이 있었다. 나는 모진 그들을 자주 원망했다.
이곳에는 바람이 불지 않는다.
너희가 보고 싶구나.
친구야.
너는 내게 여러 고민들을 이야기했었다.
올 한 해, 많은 것을 결정하게 될 것이라고 했다.
너에게 너의 바람이 불어올 때가 된 것이라고 생각했다.
너를 아끼는 친구로서, 그런 네 곁에 있어주지 못하는 것이 미안하다.
나는 믿는다.
네가 걱정하던, 너의 꽃이 더디게 피는 것은 단지 네가 봄이기 때문이다.
오랜 기간 봄이었던 너는 무성한 여름을 맞이할 것이다.
찬란하고, 눈물겹게도 아름답게 너의 꽃이 필 것이다.
친구야.
그날이 오면 네게로 가겠다.
꽃 한 송이, 시 한 편들고 네게로 가겠다.
몇 해 전, 너의 말들이 퍽 아름다웠듯이
네게 아름다운 말 한마디 전해주고 싶구나.
2023년 6월 5일부터 여러 날에 걸쳐
고은세 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