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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은세 Dec 11. 2022

현미

너에게 닿기까지 한 꺼풀
그는 마치 겨울의 긴긴밤처럼 멀고 아득했다.
나는 너가 올 줄만 알고 동이 트기까지 기다렸지만
너는 오지 않았다.
하지만 너가 오지 않는다 하여
오늘 먹을 밥 한 끼를 미룰 수는 없다.
삶은 단 하루도 미룰 수 없는 엄숙한 과제다.
겨울 앞바다의 보말, 거북손과 깅이를 한 움큼 넣고 푹푹 밥을 지었다.
너가 오지 않는다 하더라도 다시는 배고프지 않으리라.
아무것도 이루지 못한 비루한 삶이라도 나는 그를 사랑하리라.

너에게 닿기까지 한 꺼풀
그 긴긴밤 사이에 숱한 후회와 절망이 있었다.
그러나 어떤 상실도 내게서 삶을 빼앗아가지 못할 것이다.
겨울 눈 덮인 산의 냉이와 말린 국화꽃, 달래를 한 움큼 넣고 푹푹 밥을 지었다.
용기만 있다면 가난함은 옷을 찢고 살을 부르트게 할지언정 마음을 무너뜨리지는 못할 것이다.
너를 간절히 사모했지만
너가 끝내 없다 한들 나는 내 삶을 열렬히 사랑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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