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 평범한 일상이 어색해졌다

(1부) 평범한 삶이 멈추다

by 고호


병원을 나와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었다. 전철 안은 평소와 다름없는 모습이었다. 사람들은 휴대폰을 보거나, 누군가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아무도 나에게 관심이 없었다. 당연한 일이었다.


그런데 나는 이상하게도 세상이 조금 낯설게 느껴졌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나는 단순히 지방종 제거 상담을 받으러 병원에 갔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갑자기 ‘육종’이라는 단어가 등장했고, ‘암일 수도 있다’는 말까지 들었다. 그런데 그 말은 이상하게 현실감이 없었다.


‘아닐 거야. 괜히 걱정하는 걸 거야.’

그렇게 생각하는 편이 마음이 훨씬 편했다.


집에 도착해 한참 가만히 앉아 있었다. 머릿속이 조금 복잡했다. 그래서 몇몇 친구에게 연락을 했다.


“지방종인 줄 알았는데 검사 한번 해보자고 하네.”

“괜히 걱정하지 마. 별일 아닐 거야.”


나도 그 말을 믿고 싶었다. 그래야 마음이 조금 편해졌기 때문이다.


목요일에 검사 결과 확인, 금요일에 어학연수 비용 완납, 그리고 예정대로 출국.

그게 가장 자연스러운 흐름이라고 생각했다.


‘출국 전에 생긴 작은 에피소드겠지.’


그렇게 생각하기로 했다. 하지만 마음은 완전히 편해지지 않았다.


조직검사를 하고 돌아온 뒤부터는 시간의 흐름이 조금 이상해졌다. 똑같은 하루가 유난히 길게 느껴졌다. 결과가 나오기까지 이틀밖에 남지 않았는데도 시간은 좀처럼 지나가지 않았다.


직장 생활을 하면서 나는 언제부턴가 술에 조금 기대고 있었다. 잘 마시는 편은 아니었지만, 하루를 정리하는 방식처럼 굳어 있었다. 동료들과 소주 한잔, 집에서 혼자 맥주 한 캔, 가끔은 와인 한 잔. 하루를 끝냈다는 느낌을 주는 의식 같기도 했고, 외로움을 달래는 수단 같기도 했다. 그렇게 술은 어느새 내 루틴이 되어 있었다.


조직검사 결과를 기다리는 동안에도 술 생각이 났다. 마음이 너무 불안했다. 어쩌면 그동안의 습관이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냉장고에서 맥주 캔 하나를 꺼냈다. 소파에 앉아 캔을 한참 바라봤다.


‘마셔도 되나.’


며칠 전까지만 해도 아무 생각 없이 마시던 맥주였다. 그런데 그날은 느낌이 달랐다. 한참을 그렇게 들고 있다가 캔을 열었다. 한 모금 마셔봤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목으로 잘 넘어가지 않았다. 평소에는 아무렇지 않던 맛이었는데, 그날은 전혀 다르게 느껴졌다. 결국 더 마시지 못하고 싱크대에 그대로 따라 버렸다. 그 순간, 처음으로 이런 생각이 스쳤다.


‘내가 정말 아픈 걸 수도 있겠구나.’


그전까지는 그저 막연한 걱정이었다. 하지만 그날 밤은 조금 달랐다. 처음으로, 그 가능성을 인정한 순간이었다. 그날 밤 나는 소파에 앉아 한참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 그저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아니, 어쩌면 나는 그냥 그 자리에 멈춰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진짜 기다림은 아직 시작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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