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를 위한 환경보호론자
환경에 대한 관심이 지금처럼 뜨겁지 않을 때부터 환경을 지켜야 된다고 말하고 다녔다.
정확히 말하면 나는 ‘환경’ 자체보다는 ‘깨끗한 공기’와 ‘지구 온난화’에만 집중하고 있었는데, 미세먼지, 기후변화 (요새는 기후 위기)란 단어로 시작하여 제로 웨이스트, 탄소중립까지 다양한 환경 분야에 대한 사회 전반적인 관심이 지난 3~4년간 매우 높아졌다.
그런데 내가 바라본 환경 문제와, 언론을 통해 그려지고 있는 환경 문제의 모습이 조금 다른 것을 느꼈다.
환경에 대한 대중의 관심이 높아지는 타이밍이어서 그랬는지, 더욱 자극적이고 더욱 논란이 될 만한 이슈들만 자꾸 언급이 되는 듯했다. 과감한 발언을 서슴지 않는 어린 환경운동가가 유명해졌고, 현실보다는 이상에 가까워 보이는 극단적인 환경 목표를 세워서 당장에 산업과 생활이 바뀌어야 할 것만 같았다.
이왕 이렇게 모두가 환경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면, 문제보다는 해결책을 말하는 분위기가 조성되길 바랬다. 해결책에 집중할 때 모두가 무엇을 ‘할 수 있는가’를 논의할 거라 믿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문제 자체에만 자꾸 조명되다 보니 ‘누구 때문’인지, 누가 무엇을 ‘하지 않았는지’만 논하고 있는 실정으로 보여 안타까운 마음이다. 정말, 이제는 비난만 하고 있을 시간이 없지 않나?
환경 문제는 시급성을 인지함에도 불구하고 마치 에베레스트산 같아서, 정상을 바라보면 그 크기에 압도되어 두렵고 좌절하게 된다. 우리가 노력해도 기후 대응에 실패할 것 같고, 미래에 대한 불안, 상실감, 분노가 생기는 증상인 ‘기후 우울증’이란 말도 있다. 나도 한 번은 바다에 쓰레기를 줍는 활동에 자발적으로 참여했지만, 아무리 주워도 내일이면 또 생기는 쓰레기와 줍는 사람 따로 있고 버리는 사람 따로 있는 실정에, 쓰레기를 줍는 다고 뭐가 해결이 될까? 라며 반신반의했던 적도 있다. 그래도 또다시 바다로 나가 쓰레기를 줍게 된 것은, 내가 ‘할 수 있는 일’이기 때문이다. 매우 단순한 이유지만 반박하기 어려운 동기 아닌가?
할 수 있으니까 한다!
함께 쓰레기를 줍던 활동가들과도 이야기해보았다. 우리가 나눈 이야기는, ‘내가 무엇을 할 수 있는지’를 고민하고 실천하며 주변의 이웃들에게 ‘변화’의 영향력을 가질 수 있어야 한다-였다. 그렇게 시작된 작은 공감대와 행동들이 결국엔 산을 정복하게 만드는 시작이 될 것이다.
아마 추측컨대, 우선 시작할 수 있는 일이 어쩌면 사소하고 작은 일에 불과하다고 생각할 수 있을 것 같다. 기업의 경우에도 당장에 제조 공정을 바꾸고 공급망에 따라 관계를 맺어온 기존의 협력 업체들을 쉽사리 바꿀 수 없는데, 모두가 ‘환경 보호’를 입에 올리고 있으니 조급한 마음에 ‘큰 행보’를 보여야겠다! 고 다짐한 건 아닐까? 편의점에서 쉽게 먹을 수 있는 음료 포장지에는 ‘분리하기 쉬운 라벨’이기 때문에 ‘환경을 생각한 포장’이라고 쓰여있었다. 정말 환경을 생각했다면 포장지 자체를 없앴어야 하는 건 아닌가? 진정성 있는 조그만 행동들을 지속적으로 보여주지 못한다면, ‘그린 워싱’이라는 비난을 면하기 힘들 수도 있다. 소비자들도, 우리 개개인들도, 이제는 환경에 대한 인식이 매우 높아져있고 단번에 큰 변화를 가져오기는 힘들지만, 산업체가 시도하는 변화의 노력들을 관심 있게 지켜보고 있기 때문이다.
1년 전 한라산 성판악 코스로 백록담까지 올라가 보았다. 등산을 할 때 정상을 목표로 시작하지만, 잠깐잠깐 보일 듯한 고지를 빼고서 3/4 지점으로 갈 때까지 정상은 우리에게 제대로 모습을 보여주지 않았다. (심지어 구름이 껴서 정상에서도 백록담은 보지 못했…) 그러나 5시간가량을, 눈에 보이진 않더라도 내가 목표한 정상을 향해 꾸준히 올라갔고, 중간중간에 힘들어 쉬어갈 때도 있었지만 결국 정상이 조금씩 보였고 정상까지 도달했다. 백록담이 보이던 마지막 죽음의 계단.. 에서는 함께 걸어가는 사람들도 보여 더 용기내고 씩씩하게 올라가야지 다짐했던 것 같다.
내가 환경 문제의 해결책을 말하고 싶은 건, 우리가 서로를 비난하거나 압박하는 것이 아니라 사회 속 갈등을 줄이고 모두가 조금 더 평화롭게 살아갈 수 있기 때문이다. 이제는 우리가 할 수 있는 점, 함께 해 나갈 수 있는 분위기를 형성해 나가는 것이 필요하다. 우리는 문제만 지적하는 수준을 넘어설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