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레길을 걷다보니 생각나는 것
얼마 전 4월 22일은 지구의 날이었다.
인스타그램에서, 구글 메인화면에서, 네이버 기사에서도 온통 지구의 날을 얘기하고 있었다. 예전에는 지구의 날이라고 하면 소등행사 정도만 했었는데, 이제는 기후주간이라는 지자체 행사도 열리고 다양한 참여가 이뤄지고 있는 것 같았다.
그리고 해시태그earthday의 홍수 같은 피드 속에서 조금만 불편해지면 지구가 깨끗해진다는 슬로건을 보았다. 그 문장을 보자마자 드는 마음은 '환경을 위한 행동 변화에 마음이 있고 실천 의지가 있는 나조차도 불편해지기 싫은 마음이 있는데, 환경에 관심이 없는 사람들에게는 반발감이 들지 않을까?'였다.
사실 생각해보면 환경에 대한 메시지를 전하는 마케팅, 캠페인 언어는 공포, 설득, 반강요(?).. 가 대부분인 것 같다. 부정적인 언어가 뇌에 더 자극이 되고 기억에 남기 때문에, 그 절박함과 시급성을 각인시키려는 목적인 것 같다. 실제 정신건강과학 연구에 따르면 우리의 생존에 직결되었다고 판단되는 정보는 더 오래 저장하려고 하고, 생존에 직결되는 정보를 판단하기 위해선 '감정'반응이 기준이 된다고 한다.
그래도 여전히 나는 '사람 마음이란 게 긍정과 기대의 감정이 바탕이 될 때 기꺼이 행동으로 이어질 것'이라고 생각했다. 재밌고 유쾌한 행동에 밈(meme) 효과가 나는 것처럼, 환경을 지킨다는 것이 재밌고 멋있는 일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바람이었지.
그러다 제주도 올레길을 걸으면서 깨달은 점이 있다.
유난히 생소한 벌레와 곤충이 많았던 14코스의 숲 길. 도롱뇽, 말의 변.. 흔적과 뱀, 꿩 등 그야말로 동물 천국이었다. 지구 생태계가 회복되면 어쩌면 우리가 잘 알지 못하는 생명체들이 다시 지구에 나타나 살게 되는 게 아닐까?
우리 눈에는 징그럽고 무서울 수 있는 동식물들이 원래 자리를 회복하고 우리와 함께 지구에 거주하게 될 텐데, 아 그럼 좀 불편할 수 있겠다. 자연의 질서를 회복한다는 것은 불편한 일이구나. 불편함이 자연스러운 것이 회복이겠구나! 우리가 지금 편한 것은, 아니 조금만 불편해도 바로 거부감이 드는 것은, 인간이 세운 기준에 따라 세상을 바꿔왔기 때문이라는 아하(Ah-ha!) 모먼트였다.
성경 속에 등장하는 노아도 그 유명한 방주를 만들면서 말씀에 따라 모든 생명체의 한 쌍을 배에 태웠다. 그 전에는 그저 읽고 지나쳤던 내용이었는데, 상상해보니 심히 불편할 것 같았다. 갇힌 공간에서 대체 어떻게...? 현대 사회를 살아가는 나로선 도저히 어떤 느낌일지 감도 오지 않는다. 성경에서는 자세히 얘기하고 있지 않지만, 제대로 된 시설을 갖춘 것도 아니었을 그 방주 안에서 나름의 생태계가 형성이 되었고, 배 밖으로 나온 이후에도 큰 혼란 없이 질서가 유지된 것은 불편함 속에 회복이 있었던 것이 아닐까... 감히 추측해본다.
조금만 불편해지세요-라는 말 자체에 불편함이 있을 순 있지만, 우리가 편하게 살고 있다는 현실은 생태계의 어떤 일부분은 굉장히 불편하게 살아야만 했다는 뜻일 수도 있다. 아..! 역시 자연 속으로 들어가야 깨달음이 온다. 우리는 얼마나 교만하고 이기적이었던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