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y 18 - Last Day
캘거리 여행이 끝나고 비행기를 3번을 갈아타며 제주도에 돌아왔다.
일요일 아침에 캘거리 숙소를 나서서 화요일이 되기 직전에 한국 집에 들어온 여정은 만만치 않았다.
에어캐나다는 기대를 저버리지 않고 또 딜레이가 되었고, 동전만 남은 캐나다 화폐는 마지막 커피를 사면서 공항에서 탈탈 털었다.
이제 정말 캐나다를 떠나는구나.
캐나다를 오기 전까지는 ‘어째서 캐나다인들은 이렇게 친절한 걸까?’ 궁금했다.
평생 이방인으로 살아야 할 것만 같았던 유럽 생활과는 달리 캐나다에서의 17일은 ‘마음만 먹으면 캐나다 사회의 일원으로서 소속감을 느끼고 Fit in 해서 살 수 있겠다’ 싶었다. 단순 언어 문제는 아닐 것 같다. 토론토나 밴쿠버처럼 대도시가 아니어서 그런지도 모르겠지만, 정말 그들의 삶에는 여유가 있었다. 삶의 여백에는 타인을 받아줄 수 있는 공간이 있는 것 같은 인상이었다. 사람들의 시선에서, 언어에서 느껴지는 온기가 있던 캐나다.
기억을 돌이켜보면 21층이었던 숙소에서 다운타운 쪽 도로를 바라보고 있노라면 과속을 하는 차도 없고, 차선 바꾸며 조급하게 앞서 나가는 차량도 없었다. 외출을 해서 걷다가 횡단보도 근처에 다가가면 마주 오던 차량은 어김없이 속도를 줄이고 멈췄다. 굳이 브레이크를 밟아가면서 나에게 건너라는 사인을 보낸다. 한국인이다 보니 차가 지나고 건너자는 마음에 기다리고 있으면, 그 차도 하염없이 나를 기다린다. 하하 고맙다는 수신호를 얼른 보내고 다다다닥 뛰어 건넌다. 그런 나를 보더니, 안 뛰어도 된단다. 맞아.. 보행자와 운전자 간의 신뢰가 덮은 도로 위에서 보행자는 뛸 필요가 없고 운전자는 추월할 필요가 없다. 아무도 없어도 빨간 불이 켜지면 멈춰서는 것이 결코 ‘손해 보는 일’이 아닌 곳이다.
식사 중에 옆 테이블을 관찰해 보면 자연스럽게 웨이터와 대화를 나누는 사람들이 많았다. 기꺼이 자신들의 시간을 나누며 함께 하는 순간을 즐기는 모습을 관망했다. 상대에 대한 경계가 낮은 걸까. 우리는 어쩌다가 그렇게 ‘남’에 대한 방어를 높이 치게 되었을까. 오지랖이니, 꼰대니 하는 이름표를 붙여가며 원치 않는 대화를 시작하는 사람을 손가락질하는 문화가 아쉽다. 자원이 없고 땅이 좁은 곳에서 교육과 경쟁으로 발전을 이룬 나라니까 ‘그럴 수 있다’고 넘길 수도 있지만, 원래 우리는 정이 많은 민족이었는데… 벽을 낮추고 함께 살아가는 사회를 유지하는 게 불가능한 건 아닐 텐데 말이다.
낯설 정도로 건조한 날씨, 씻을 때마다 미끌미끌해서 적응이 결코 안 되던 물도 기억난다.
핸드크림을 아무리 덧발라도 하얗게 살갗이 일어나버리는 정도로 건조한 캐나다는, 연평균 습도 90~100%를 유지하는 제주도에서 온 내 피부를 뒤집어놓기 십상이었다. 모세혈관이 터져 아침마다 코피가 났다. 대체 얼마나 건조한 거야..? 화장품을 바리바리 싸 가도 화장한 날은 채 하루가 못된다. 무엇이 중하리… 화장보다도 보습이 더 중요했던 캐나다의 겨울이었다. 눈이 그렇게 많이 쌓여 있어도 눈사람 하나 없던 거리. 왜 눈사람이 없을까?? 한국에서 오리 집게를 사와다가 거리거리마다 눈으로 만든 오리가족을 놓고 싶을 정도였다. 나중에 알게 된 건, 워낙 건조하다 보니 눈이 뭉쳐지지 않는다고 한다. 눈사람을 만들 수 없는 눈의 나라라니, 슬프다. 게다가 씻어도 씻는 것 같지 않은 느낌인 미끄러운 물으로 머리를 감고 나면, 아무리 드라이를 하고 고데기를 해도 물먹은 미역처럼 머리카락이 두피에 차분히 붙어버린다. 유럽에서는 석회물로 머리 감고 나면 머리카락이 부서지듯 퍽퍽해졌는데, 지나치게 반들반들하게 만들어주는 캐나다 물도 골칫거리구나.
장기 여행자로서 특별히 집 앞 슈퍼에서 꽃도 사보았다. 여행 중에도 꽃을 사는 호사를 누리다니. 노란색, 보라색, 주황색으로 한 다발을 이룬 이름 모를 꽃은 2주가 넘는 기간 동안 죽지 않고 잘 버텨 주었다. 아침마다 커피머신에 캡슐을 넣고 커피를 내리며 화병에 물을 갈아주던 기억. 참으로 소소하고 작은 행복이다. 영화 <인사이드 아웃>에서처럼 오랫동안 기억의 창고에 저장될 감정들이 결국은 이렇게 별거 아니지만 차곡차곡 쌓인 소소한 즐거움이 아닐까.
캐나다의 기억을 하나씩 꺼내보니 11시간의 비행이 끝나간다. 비행기에서는 한국에 입국하기 전 마스크를 꼭 착용하라는 안내 멘트가 나온다. No mask였던 캐나다에서 실내 마스크 착용이 의무인 우리나라로 돌아왔지만, 마스크 착용 따위로 불평할 마음은 없다. 다름을 느끼고, 더 좋은 것을 보고 돌아왔다고 익숙하지만 반가운 내 일상이 볼품없어지는 건 아니니까. 아직도 내 여행이 끝난 것 같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