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y 17
17일을 지냈던 캐나다 캘거리에서의 마지막 날이다. 영하 3도의 날씨. 추위는 많이 누그러졌다. 대충 짐을 다 쌌지만 기념품이라도 사볼까 해서 다운타운에서 마지막 쇼핑을 계획했다. 제일 좋았던 카페에서 커피를 테이크 아웃하고 20분 정도 거리를 걸어갔다. 질척해진 눈을 밟기 싫어 껑충거리며 걸었다. 아... 난 왜 흰 운동화 한 켤레만 가지고 온 걸까.
Avenue와 street으로 구획이 나눠진 네모 상자 같은 도심에서 목적지까지 가려면 그저 직진하다가 한 번만 꺾으면 될 정도로 길 찾기는 매우 쉬웠다. 그렇지만 쉬운 길보다는 재밌는 길이 더 좋지 않나? 직진하지 않고 횡단보도 불이 켜지는 대로 방향을 꺾어 구불구불하게 걸으며 예상치 못한 재미를 찾고자 했다. 그리고 그곳에서 캘거리의 새로운 모습 - 혹은 가려진 모습 - 을 보았다.
마약이 합법인 나라인 건 알고 있었다. Canabis라는 간판을 어엿이 달고 판매하는 가게도 많이 보았다. 그러나 구글맵이 알려준 길에서 벗어나자 마약에 취해 몸을 가누지 못하는 사람들이 보였다. 길 한가운데서 주저앉아 일어나지 못하고 몸을 질질 끌며 겨우 움직이고 있던 그들. 머리를 들지 못하고 흐느적대는 모습을 실제로 본 건 처음이었다. 내 코 끝에 마리화나 냄새가 배길 정도로 길에서 대마를 피우는 사람이 많았다. 우버를 타고 이동할 때는 보이지 않았던 노숙자도 많았다. 그래, 눈에 안 보인다고 없는 게 아닌데 그 당연한 사실을 왜 잊고 있었을까. 산타클로스의 보자기처럼 큰 비닐을 끌고 다니는 분, 마트에서 사용하는 카트에 짐을 한가득 싣고 이동하는 분, 쉘터 앞에 모여 몸을 녹이고 있는 분들은 어느 도시에서처럼 캘거리에도 있었다.
나에게는 캘거리가 관광지였지만, 결국 이곳도 사람 사는 곳이다. 그곳에는 록키라는 아름다운 자연환경이 있지만, 태평양 건너 우리네 살아가는 모습은 생각보다 비슷한 점이 많을지도 모른다. 외국에 산다고 해서 다 잘 사는 게 아님을, 그들의 삶도 역시 쉽지 않은 것임을 보았다. ‘올라갈 때 보지 못했던 그 꽃 내려올 때 보았네.’라는 말이 있다. 캘거리를 떠나기 전 날, 캘거리의 모든 면을 볼 수 있었다.
20분을 걸어야 하는 길을 25분을 넘게 걸으며 진이 빠져버렸다. 기념품 쇼핑이라는 목적도 잃고 그저 돌아가고 싶다는 생각이 가득 찼다. 마지막 저녁을 위해 남겨둔 재즈 공연장으로 바로 이동하기로 했다. 재즈바에서는 어떤 놀라운 경험을 하게 될까?
The Blues Can이라는 곳을 찾아냈다. 한국 블로그에도 후기가 하나 있었다. 정말 좋았다는 블로그 후기와 구글 리뷰를 믿고 찾아가 보자고 했다.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문을 열었는데, 앉을자리 없이 빼곡한 사람들은 대체로 50~60대로 보였다. 이게 맞아? 젊은 동양 여자 두 명이 들어오자 신기한 듯 쳐다보는 그들. 우리도 어리둥절했다. 재즈… 비슷한 곡이 라이브로 연주되고 있었다. 내가 아는 재즈가 맞나? 무대 앞에는 사뭇 아주머니들로 보이는 분들이 나와서 살랑살랑 몸을 흔들고 있었다. 이거 맞아?? 아무래도 이상했다. 노란 머리가 아닌 사람은 한 명도 없었던, 중장년층이 아닌 사람도 한 명도 없었던 곳에서 우린 또 머쓱해하며 자리를 떴다. 아닌 거 같아… 요일과 시간에 따라 공연 분위기가 바뀌는 건지도 모르겠다. 오늘은 쇼핑도 재즈도 허탕이다.
여행을 하다 보면 자칫 외국 생활에 환상을 가지게 된다. 짧은 여행 기간에는 거의 모든 것을 통제권에 두고 좋은 것만 취할 수 있기 때문에, 그 생활을 이어갈 수 있을 것만 같은 이곳에서 ‘살고 싶다’라는 당연한 욕망을 가질 수밖에 없다. 익숙한 한국 문화는 단점만 기억나고 여행지는 장점만 눈에 보이는 상황이라면, 우리나라를 ‘헬조선’이라고 비난하기도 쉽다. 나 역시 한때 외국 산다는 사람을 부러워했던 적도 있다. 그땐 뭐가 그렇게 부러웠을까 싶지만, 한국을 떠나 사는 게 얼마나 쉽지 않을지 이해할 수 있는 지금은 부럽다는 마음보다는 응원하고 싶다.
완벽하지 않아서 오히려 더 기억에 남을 캘거리의 마지막.
완벽이란 게 뭘까 싶기도 하지만, 여기도 똑같이 사람 사는 곳이라는 인상을 가지고 귀국할 수 있게 되어 오히려 다행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