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와사비맛 찹쌀떡 Jan 01. 2024

대단한 결심


나는 아빠가 조금 유난이라고 생각했다.


딸 키우는 집안이라면 어느 집이든 마찬가지겠지만, 그냥 걸어만 다녀도 머리카락이 빠지는데 늘 바닥에 코를 박을 정도로 쫓아다니며 머리카락 하나하나를 줍곤 하셨다. 돌돌이나 테이프는 항상 찍찍이를 몸에 두른 상태로 머리카락을 흡착할 준비를 갖춰 집구석에 배치되어 있었다. 우리 집 여자들보다 더 깔끔하셔서 화장실부터 현관 신발장까지 매일 쓸고 닦고 환기시키는데 게으름이 전혀 없었다.


제일 싫었던 건 주말 아침에도 청소기를 돌리며 내 방 문을 열 때였다. 늦잠 자고 싶은 주말에 꼭 어김없이 청소를 해야 하냐고… 자고 있는 귀에 유독 더 크게 들렸던 청소기 소리에 짜증을 내며 일어났던 기억이다.


아빠 차도 늘 반짝반짝했다. 먼지 쌓인 내 차를 타면 늘 잔소리가 이어졌다. 그 먼지를 다 내가 마시는 거라고, 조수석에 앉으셔서 물티슈로 쉬지 않고 구석구석을 닦아냈다. 자취하는 내 공간에 아빠가 올 때라면 전날부터 나는 대청소를 해야 했다. 그렇지 않으면 딸 집에 오신 아빠가 또 무릎을 꿇고 물걸레질을 할 테니까.


아빠의 부지런한 성격은 깔끔함뿐만 아니라 시간약속에서도 드러났다. 아빠는 30분 일찍은 기본, 1시간 일찍부터 약속 상대를 기다릴 때도 있었다. 필요한 이동시간보다 훨씬 더 넉넉하게 예상하고 출발하는 아빠가 이해가 안 될 때도 있었다. 여행 갔다 온 날 공항에 데리러 올 때에도 그렇다. 비행기 도착시간과 수하물 찾는 시간을 생각하면 1시간 늦게 와도 될 법 한데, 1시간 먼저 와서 내내 날 기다리셨다고 한다.


‘왜 그렇게까지 해’라는 생각을 안 할 수가 없었다. 그렇게 살면 손해 보는 것 같았기에, 손해 보는 사람이 아빠가 아니길 바랐기에.


그런 아빠가 정말 대단하다고 느낀 건 조금 더 최근이다.


용돈정도 되는 돈을 받으며 아이들 통학 차량을 운전해 주는 일을 잠깐 하셨다. 1년 반~2년 정도 하신 것 같다. 잠깐 한다는 생각으로 시작하셨던 것 같았는데, 그 기간에도 아빠에게는 대충이 없었다.


만약 나에게 그 정도 돈을 준다면… 용돈은커녕 살아 숨 쉬는 것만으로도 다 사라져 버릴 액수인 것 같은데 말이다.


요즘처럼 ’월급 주는 만큼만 일하는‘ 풍조와는 반대로 아빠는 받는 것보다 더 큰 진심으로 그 일을 대했다. 하루는 출근한다고 나갔던 아빠가 곧 지나지 않아 다시 집에 돌아왔다. 아이들 줄 과자를 깜빡했다는 이유였다. 아빠는 자비를 아끼지 않고 학원에 오는 아이들을 위한 간식을 챙겼다. 학원 차량이 본인 자차도 아닌데, 그 차량도 반짝반짝하게 관리했다. 세차하고 청소하고 온다고 퇴근이 늦어지는 경우도 많았다. 아니 왜 그렇게까지 하지… 싶었는데도 아빠는 그렇게까지 해야 하는 사람이었다.


유퀴즈에 하지원 배우가 나온 인터뷰를 보았다. 30분 정도 항상 먼저 현장에 도착해서 준비한다고. 나와 마찬가지로 역시 아버지로부터 배운 습관이라고 했다. 그런 태도가 기본인 사람은 어딜 가서 무엇을 해도 성공할 수밖에 없다는 걸 하지원 배우는 보여주고 있었다.



아빠를 많이 닮은 나도 시간에 대해서만큼은 까다롭게 구는 편이다. 나를 두고 매번 약속에 늦던 상대와는 결국 연이 끊어졌다. 항상, 어쩜 그렇게 항상, 늦는 건지. (이건 MBTI의 P와 J 논쟁이 아니다. 상대에 대한 존중과 기본 예의를 논하는 것이다.) 본인을 기다리게 만드는 나의 시간은 왜 준비과정에 포함하지 않는 건지 나의 서운함은 결국 길지 않았던 그와의 우정을 지우게 했다.


새해에는 ‘~를 새로 해야지’라는 계획과 다짐을 하게 된다. 올해는 절대로 시간 약속에 늦지 않겠다!라고 다짐하는 사람도 있을까? 무언가를 이뤄야겠다는 결단을 해도, 가장 기본을 지켜야 한다는 생각은 좀처럼 하지 않는 것 같다. 말 그대로 ‘기본’이라서 새로운 리셋이 없다면 어느 한켠에서 그 중요성이 잊히기 쉬운 듯하다. 하지만 정말 대단한 사람은 그 기본을 꾸준히 지켜내는 사람이라 본다. 나의 주변을 늘 깔끔하게 유지하고, 남의 시간도 내 시간처럼 소중히 여기고, 받는 만큼만 하겠다는 소심한 반항 대신 일터에서도 내 진심을 보이며 계산적이지 않은 흔적을 남기는 사람.


답답하다고만 생각했는데 우리 아빠가 이렇게 대단한 사람이었다. 그걸 이제야 깨달은 나도 참 답답하다. 답답한 사람은 아빠가 아니라 나였던 걸까.


2024년 새해, 용돈만 받던 그 일을 하던 아빠는 새로운 곳에서 일하게 된다. 이제는 용돈이 아니라 월급을 받는 곳으로 갔다. 벌이에 따라 태도가 바뀐다는 말이 아니지만, 벌써 새로운 곳에서도 열심일 아빠의 모습이 그려진다. 나의 책임감과 열심은 아빠에게서 왔나 보다. 그 아빠의 그 딸, 나는 올해 ‘물 만난 물고기’처럼 일하고 싶다. 아빠가 보여준, 나에게 전해준 책임감과 열심이 있으니 가능하지 않을까 소망해 본다.



매거진의 이전글 파도 위에 올라타는 자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