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eet Joe Black
사랑의 여러 가지 얼굴들
한동안 긴 여행을 다녀왔다. 아주 오랜만에 집에 다녀왔다. 코로나를 겪고 나서 비행기를 타는 것이 처음이었기에, 페이스 실드 마스크에 라텍스 장갑까지 답답하게 끼고 몇 시간 내내 음식을 먹는 것도 무서워서 그냥 가만히 앉아만 있었다. 공항 검역소를 통과해서 자가 격리 면제를 위한 설명을 듣고, 앱을 설치하고, pcr 검사를 3주 동안 다섯 번 했다. 사실은 코로나라는 것이 너무 무섭고 귀찮아서, 집에 갈 수 있는 방법이 있다고 해도 약간 꺼려졌다. 행여나, 걸려서 현업에 복귀 못하면 어떻게 하나, 그럼 앞으로는 무엇을 하고 살아야 하지? 이런 기우들에 울면서 고민했었다. 하지만 정말로, 집에 다녀오길 잘했다. 감정적이나 육체적으로 힘들었지만, 시간과 공간을 쪼개어 되도록 많은 사람들을 만났고, 내적인 작업과 외적인 집안 청소도 많이 했다. 그래서 집에서 가족들과 있을때는 이상하게, 단 한글자도 쓸 수 없을만큼 지치고 고갈되어서 혓바늘이 돋아있었다. 피로회복제를 쏟아부으며 아프지 않으려고 애썼다. 코로나가 무서워서 그랬다.
부모님을 다시 뵙는 것도 사실 너무 오랜만에 뵈면, 그분들의 나이 드심을 깨닫고 나 자신이 상처 받을까 봐 두려웠던 이기심도 있었다. 내가 집에 오는 꿈을 꾸었다는 엄마. 엄마와의 여러 가지 복합적인 감정들이 솟아오르면서, 집에 도착했을 때, 말할 수 없는 답답함을 느꼈었다. 하루 만에 돌아오고 싶다는 생각도 했었다. 짐을 풀어놓을 곳도 없이 좁은 공간. 그간의 세월 속에서 모인 짐들에 집이 눌려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백 개들이 라텍스 장갑을 갈아 끼우며 5박 6일은 정신없이 집 청소를 한 것 같다. 마치, 내 마음속 앙금들을 게워내려는 듯이, 버리고 또 버렸다. 아주 오래된 일기장들은 손댈 수 없었다. 예전에 쓴 글들도 많이 찾았다. 사진들도 마찬가지였다. 그리고 그것들을 읽으며 느낀 한 가지가 있었다. 나는 참, 글쓰기를 좋아했구나. 영화를 좋아했구나. 소설가를 꿈꿨었구나. 많은 풍랑을 겪으면서 포기하지 않은 한 가지가 있다면 그게 바로 글쓰기였구나.
그렇게 반짝반짝 빛나던 예전의 내 모습을 상기시켜 준 것은 밤늦게라도 집 앞까지 나를 보러 찾아와 준 어린 시절 친구들이었다. 그들의 이야기와 추억들을 통해 나는 내가 아주 오래 잊고 있었던, 당당하고 긍정적인 나를 기억해 냈다. 그리고 내가 얼마나 사랑받는 사람이었는지도 다시 한번 상기시킬 수 있었다. 한 친구는 이렇게 말해주었다. 시험 범위에 없는 문제가 나오면 당황하기 마련인데, 나는 '뭐 어때, 그냥 외워버리면 되지' 하던 고등학생이었다고 했다. 해외에서 사는 동안 나는 많이 외로워서, 실수도 많이 했다. 외로워질 때를 늘 경계하고 내가 늘 사랑받았다는 걸 기억해야지 싶었다. 부모님과의 매일도 마찬가지였다. 예전 같으면 함께 지내며 또 투닥거리고 했을지도 모르는데, 이제는 부모님 뵈면 짠하고, 더 잘해드리고 싶고, 그분들도 내게 그런 마음이라는 걸 알게 되니 그간의 미움이 봄눈 녹듯 풀렸다고 해야 하나. 매일의 나를 발견하는 것이 새롭고, 그리웠고, 자아가 확장되어가는 그런 느낌이 들어서 기뻤다.
어느 날 밤에 아버지와 둘이 앉아서 EBS에서 방영하는 Meet Joe Black (조 블랙의 사랑)이란 영화를 보았다. 브래드 피트가 아직 솜털이 있을 때 찍은 영화인데, 영화 초반에 등장하는 조와 영화 중반에 등장하는 조는 다른 존재이다. 조가 영화 첫 장면에서 커피숍에서 만난 의사 수잔에게 귀여운 끼를 발산하며 호감을 표시하는 장면에 이어, 둘이 헤어지자마자 그는 차에 치여 즉사하고 만다. 따라서 영화 중반에 등장하는 조는, 죽은 그의 육신을 빌어 나타난 저승사자다. 그리고 그는 둘째 딸 수잔을 끔찍이 예뻐하는 윌리엄에게 사자로서 등장한다. 삶의 뒤안길에서 생을 정리하는 윌리엄을 따라다니며 조는, 세상의 모든 것들을, 감정과 사람들을 처음 대하는 백지의 상태에서 수잔과 윌리엄, 그리고 그의 가족들에게 큰 울림을 준다. 인생을 단순하게, 가장 큰 덕목 하나에 초점을 둔 그의 태도에 윌리엄은 조금씩 변화한다. 또 저승사자인 조가 수잔과 나누는 사랑 속에서, 모든 것이 처음이라는 설렘을 가득 안은 브래드 피트 배우의 모습을 보니, 새롭기도 했다. 영화의 클라이맥스는 윌리엄의 65세 생일 파티다. 조는 이 파티 후 윌리엄과 황천길을 건너가기로 약속했다. 조가 수잔에게 하는 마지막 작별인사와, 윌리엄의 인사는 너무나 아름답고 감동적인 삶의 진실, 또 감정들로 가득 차 있다. 윌리엄을 연기한 배우 안소니 홉킨스의 연기가 물흐르듯 자연스러워서 그의 역할에 한참 빠져있었다.
나는 내 아버지와 엄마의 나에 대한 사랑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하고 감사하게 되었다. 오래전 사진들 속에서 발견한 아이인 내 모습 속에는, 내가 기억하는 침울하고 어두운 내가 아니라, 밝고 유쾌하고 장난기 있는 내가 있었다. 동생을 베고 나를 안고 계시는 엄마와, 그 엄마를 안타깝게 보시는 외할머니가 있었다. 엄마는 부쩍 내게 미안하다는 말씀을 많이 하신다. 고맙다와 미안하다가 공존된 감정은 어떤 사랑일까? 그냥 그건 엄마의 나에 대한 사랑이라고 정의했다. 엄마와 나의 유대관계는 다소 역기능 적이다. 엄마에게 끊임없이 잔소리를 해대는 나와, 내게 칭찬받고 기뻐하는 엄마의 모습이 있다. 하지만 한 가지 사실은 분명하다. 엄마와 아버지, 부모님은 내 행복만을 바라신다는 걸. 아무리 멀리 떨어져 있다가도 돌고 돌아 찾아가야 할 곳은 집인 것을. 사랑하는 아버지와 이별하는 수잔의 모습을 보며 그녀는 아버지의 사랑을 기억하고 행복해할 것이라 확신했다. 이별은 언젠가는 찾아들겠지만, 마음을 확인하고 감정을 표현했다면, 충분히 행복한 기억으로 남아 삶을 더 윤택하게 해 줄 것이다. 이번의 내 여행이 그러했다. 따라서 나는, 많이 충만하고 기뻤다.
잃어버린 나의 모습을 되찾아준 순간의 영화를 기억하며, 게으른 나의 글쓰기를 다시 시작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