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면 네가있는 곳이 더 잘보일 거야
어렸을 때, 성우들의 대사를 필사까지 해가면서 좋아했던 만화의 여주인공이 있었다. 프랑스 대혁명을 배경으로 귀족 신분에서 민중의 편으로 돌아서는 이념(이데올로기)의 변화를 겪으면서, 자기 자신의 본질(아이덴티티)도, 직업도, 사랑도 모두 재정비했어야만 했던 그녀. 아주 어린 마음에도 나는 만화 속 그녀가 억압과 착취에 대항하고, 정의를 위해 나름의 노력을 하며, 변화하는 시대 속에 자신의 자리를 찾아나가는 모습이 너무나 멋있었다.
이쯤 되면 아시는 분들은 아실 그 만화 영화, 나뿐만 아니라 그때 이 순정만화 속 캐릭터에 빠져서 많은 영향을 받았을 그와 그녀들이 계시지 않을까 싶다. 나는 이 만화 영화로 혁명이라는 단어를 알았고, 프랑스 역사에 대해 공부해 봤고, 마리 앙투아네트라는 여성에 대한 자서전도 읽어봤고, 더 나아가 한국어 판의 모든 대사를 필사한 뒤 일본어를 배우기 시작할 때 경어/존경어를 위한 교재로 이 만화 영화를 활용하기에 이르렀다. 내가 배웠던 바이올린과 피아노로 주제곡을 악보 없이 연주할 수 있고, 단행본 한정판을 소장 중이다. 유럽 배낭여행을 갔을 때 루브르 박물관은 입구만 찍고 나왔어도, 베르사유와 트리아농 궁전은 꼭 가봤어야 했던 나다.
설명이 길었지만, 만화 영화 속에서 삶에 대해 쉬임 없이 나아가던 여주인공이 했던 대사, '정신없이 달리고 있을 때가 좋아'라는 말이 생각나는 한 주를 보냈다. 그 와중에도 '망중한 (忙中閑)' 이 찾아들면 부조리함 앞에서 타협하는 내가, 어떨 때는 한없이 무기력한 내가, 너무 많은 생각으로 잠들 수 없는 내가 있었기 때문이다. 내 안에서 무엇인가 변화하는 시간, 그 밤과 밤 사이에 앉아 생각하는 '이제 나는 어떻게 살아야 할까'에 대한 고민을, 30여 년 전 만화 속 주인공도 했었던 건 아닐까 싶어서.
돌이켜 보면 살아오면서 이유 없이 무엇인가에 강하게 끌리는 적은 없었던 듯하다. 그게 어떤 대상이든지 간에, 나는 늘 내가 결핍되어 있다고 믿는 걸 가진 상대에게 자석처럼 매료되었다. 대상과 나를 동일시해가며 그런 나 자신에게 매일 속아주면서, 눈 옆을 가린 경주마 마냥 열심히 달렸다. 멈춰서 내가 있는 곳을 바라보고 있자니, 그간의 일들과 감정들이, 내가 나 자신을 지켜나가려고 했던 여정이, 자꾸 밟혀서 잠들지 못하는 걸 안다. 고통의 시간들이 나를 성장시켰고 덜 건방지게 했고, 지금을 감사하게 만들었다. 하지만 천둥 번개가 치고 잠시 주위가 환기되면, 달리다 멈춰 선 그 여주인공처럼 내 인생을 자꾸 복기하게 된다.
그 여주인공은 그런 과정 후에, 혁명군 측에 섰고, 자신의 믿음을 지키며 장렬히 전사했다. 나는 아직 그렇게 불꽃처럼 스러져 가기는 싫고, 무엇인가 자꾸 변화하는 나를 계속 관망하고 싶다. 과거의 내가 삶의 순간순간들에 상처 받은 나를 보는 것이 아니라, 현재의 내가 그 순간의 나를 바라보는 느낌은 신선하고 따뜻하다. 힘이 들 때는 잠깐 쉬었다 가도 괜찮다. 그러면 지금의 내가 보인다. 과거의 나는 할 수 없었지만, 지금의 내가 할 수 있는 것들이 있다. 그만 고민하고 그냥 열심히, 하고 싶은 거 하면서 건강히, 생각만 하지 말고 실천하면서 살 수 있는 힘이 지금의 내게는 있다. 참으로 감사한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