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마음의 고향 같은 락밴드 '자우림'
친구와 외식과 수다를 통해 한껏 달아오른 기분 끝에 홀로 집에 돌아오는 길, 13일의 금요일 밤. 귓가를 맴도는 노래는 오랜만에 듣는 자우림의 노래 '망향'이다. 'Spotify'라는, 몰랐는데 한국 밖에서만 접속할 수 있다는 유료 음악 스트리밍 앱을 열면 내가 고이고이 아르바이트비 모아 샀던 CD들의 음원이 고스란히 존재한다. 가지런히 정리된 좋아했던 (주로 밴드 음악들의) 연대별 음반들. CD의 정서가 살아 있진 않지만 그래도 앱에서 재생되는 노래 자체에는, 지나간 세월을 기억하게 하는 힘과, 그 시절의 향기가 있다. 가사를 적어보면 다음과 같다. 노래의 영문 제목은 앱에는 'homesick'라고 표현되더라. 뭐라 할 수 없는 위화감이 아주 잠깐 감돈다.
망향 (2002) 자우림, 4집 앨범 수록
새는 날아서 그곳을 향해가고, 바람 따라서 또 나를 스쳐가고, 떠나 왔어도 남은 그리움, 잊은 듯 기억하는 듯 또 나를 울게 하고. / 후렴 : 아, 이맘 이맘 이다지도. 아, 알아주길 잊지 못할, 아, 이맘 이맘 부서지는 아, 그댈 그댈 언젠가 다시 볼 수 있을까 / 별은 남아서 그곳 하늘에 뜨고, 구름 멀리서 고요히 눈을 감고, 보낸 뒤에도 남은 서러움, 살아도 눈을 감아도 또 너를 묻게 하고. (후렴 반복)
'자줏빛 비가 내리는 숲'이라는 묘한 제목의 밴드 '자우림'은 보컬 김윤아 님을 메인으로 베이스 김진만 님, 기타 이선규 님, 그리고 지금은 탈퇴한 드러머 구태훈 님으로 1997년 데뷔했다. 내 기억에 밴드가 유명해진 노래는 영화 '꽃보다 남자'에 수록된 'hey hey hey'였지만, 역시나 내 귀를 사로잡았던 노래는 '밀랍 천사 (일명 'Boxing Helena')'라는 노래였다. 권위를 세상 무엇보다 싫어하던 그 시절 고등학생에게 세상에 펀치 한 방 날려버릴 수 있을 것 같은 그런 노래. 그 해 노래방에서 참 많이도 불렀던 노래. 내게는 왠지 가슴이 먹먹하게 아름다웠던 '사랑' 노래. 김윤아 씨의 보컬은 아름답고 시원하고 아이처럼 청초할 때도 있고, 형용하기 힘든 매력이 있지만, 오랫동안 들어온 지금은 집에 온 것처럼 편안하다.
I just feel 'home'.
많은 대중 매체를 통해 그녀의 사연을 접하면서, 막연히 그녀처럼 나도 심리학 공부를 하고 싶다고 생각하기도 했고, 그녀처럼 자신의 의견과 감정을 표현할 수 있는 한 사람의 당당한 '여성'이 되고 싶었다. 데뷔 초 어떤 인터뷰에서 그녀가 자신의 첫사랑을 회고하며, 참 아름다운 사람이었으나 어느 날 갑자기, 자는 것처럼 세상을 떠났다고 했던 말이 기억난다. 초창기의 우울하고 처절한 '새'와 같은 노래들이 탄생한 배경은 그러했을까. 냉소적일 때도 또 대책 없이 달콤할 때도 있는 가사들은 잘 들어보면, 내 안의 어둠에 노크하는 듯한 다정함이 느껴진다. 적어도 내게는 그랬다.
고3을 마무리하고 나의 대학 입학이 확정되었을 때, 김윤아 님 목소리를 함께 마음에 들어하셨던 아버지가 온 가족을 위해 자우림 콘서트 티켓을 사주셨던 적이 있었다. 그 콘서트의 제목은 '천재일우(千載一遇) ' 였다. 좀처럼 오지 않을 기회, 대학교 강당의 지정석에서 보던 1부의 공연이 끝나고 2부의 스탠딩이 이어지는 순간, 윤아 님의 도발이 시작되었다. 그 순간 너무 앞으로 뛰어나가고 싶었던 나. 그런데 가장 가까워야 할 가족들에게, 특히 아버지에게 그런 모습을 보이는 것이 너무 꺼려졌다. 스탠딩 공연에서 뛰고 소리 지르고 헤드뱅 하는 걸 누구보다도 좋아하는데, 한 마디로 어색해서 나를 누르고 있었다. 그 순간이 지금도 후회된다. 가족에게조차 순수한 나를 내보이지 못하고 숨기기만 했던 것이. 그냥 그게 내 모습이고 나는 스탠딩 락 공연이 무엇보다 가슴 뛴다고 얘기할 수 있었다면, 좋았을 걸. 지금 생각해 보면, 누구도 나한테 나가지 말라고 하지 않았을 텐데. 가족이니까... 지난 시절을 그리워하며 고향을 생각하는 걸 보면, 가족에 대한 애증도 이제는 거진 다 사라지고 없는 내가 되었나 싶어 뒤돌아보면, 여전히 그 노래들 속에 박제된 아픈 나의 성장통이, 혼자서 무릎을 껴안고 울던 내가, 거기 있다. 이제는 곧, 그 아이에게 이제는 그만, 잘 가, 안녕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자우림의 몇 개의 공연들이 생각나는데, '미드나잇 익스프레스'라는 연말 카운트 다운 공연에서는 김윤아 님 당시 남자 친구이었던 분이 디제잉을 하며 분위기를 달궜던 기억이 난다. 내 친구와 나는 스탠딩 공연에서 마치 클럽에 온 것처럼 춤을 췄었다. 세종 문화회관에서 열렸던 김윤아 님 솔로 공연 '공작부인의 비밀화원'에서 나는 제일 앞 줄 티켓을 구매할 수 있었다. 아이러니하게도 세종 문화회관 바로 건너편 언저리에서 일했었는데, 저녁에 시작하는 공연에 늦기 싫어서 굳이 연차를 냈던 기억이 난다. 얼마나 그 날을 고대하며 기다렸는데, 내 책상 한 면에는 그 당시 공연 신문 광고가 오려져 한동안 붙어 있었다. 그리고 그 공연을 보면서 나는,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다. 그냥 그녀의 목소리와 이야기가 공기 속에 울려 퍼지는 것 만으로, 그 가사를 듣고 한 공간에 있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따뜻해졌달까. 지금 생각해도 소름 돋는 카타르시스를 경험했었다. 나는 가슴이 벅차서 어떤 말도 할 수 없었다.
투어 '카니발 아무르' 서울 공연은 올림픽 공원 안 야외공연장에서 열렸었다. 계단식 좌석에 앉아 있다 어느 순간 나는 일어나서 춤을 추기 시작했다. 마치 도미노 효과처럼 내 친구도, 주변 사람들도 일어나 몸을 흔들거리기 시작했다. 아직 벌건 초저녁이라 그런가, 서먹해하는 관객들도 보였지만, 공연 가서는 음악에 어울려 같이 뛰노는 게 제일 즐겁고 기억에도 오래 남는다. 나중에 그 친구가 그러더라.
'내가 춤추던 거 우리 회사 직원이 봤대, 어떻게 해'
그래서 나는 말했다. '그러면 어때, 어차피 사람들 금방 잊어버려'
마지막으로 자우림 공연을 한국에서 봤던 건 아마도, 우리 집 근처 실내 공연장, 스탠딩이었다. 그때 나는 동생과 둘이 공연을 보러 갔었는데, 집 앞이라고 늑장 부리는 동생에게 조금 더 서두르자고 강하게 말할 수가 없었다. 나는 그때 아팠을 때라, 몸무게가 저체중에 가까웠다. 뭐랄까 뭘 해도 매사에 힘없는 상태라고 하면 이해가 될까. 동생이 매일 놀렸었다. 기아 체험하는 사람 같다고.. 스탠딩은 줄 선 순서대로 서는 위치가 정해지는, 즉 선착순 입장인데, 더 가까이 볼 수 있었으면 정말 좋았을 걸. 언제 들어도 가슴이 뭉클한 노래 '샤이닝'과 'Scarborough Fair'라는 영국 노래를 부르던 그녀의 모습을 잊을 수가 없다. 멍청할 만큼 노래에 취해 있던 내게 동생이 한 마디 했다.
'누나, 이럴 줄 알았으면 좀 더 일찍 올 걸 그랬네..'
그 말이 묘한 위로가 되었다. 내 취향과 감성을 인정받은 것 같아서 말이다.
그 후 10년 정도 후에도, 지금도 감사하게도 밴드 '자우림'은 우리 곁에 있어 주었다. 하지만 나는 그 마지막 공연 이후 대부분을 해외에서 지내면서 공연에 갈 엄두를 내지 못했다. 한 번쯤은 한국 갈 때 시간 맞춰 예매하고 갈 수도 있었을 텐데, 아마도 삶의 초점이 다른 곳에 맞춰져 있었나 보다. 신기한 건 요 몇 년 다시 우울해졌을 때 다시 그녀의 목소리를 떠올렸다는 것이다. 많은 부침이 있었을 때 듣지 못했던 그간의 발매된 노래들도 들어보고, 이전 노래도 들어보면서, 지난 사랑도 떠올려보고,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혼자서 마음의 문을 닫고 살았던 내 모습도 떠올려본다. 살면서 상처 없는 사람이 어디 있겠냐만, 굳이 '안 겪어도 될 일'들을 겪고 난 후 회복이 되고 나니 세상이 다르게 보인다. 그 '잃어버린 시간들'이 너무 아쉽다. 하지만 내게는 지금 느끼는 이 마음과, 밝아야 할 '미래'만이 남아있다. 모르긴 몰라도 풍랑 속을 지나면서 마음에 많은 잔근육들이 생겼을 것이고, 앞으로 또 어떤 경험을 하면서 살게 될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내 모습이 아닌 채로 살지는 않겠지. 이제는 적어도 내 취향 정도는 존중받으며 살 거야. 살면서 울고 싶을 때는 '마음껏 울고' 그 순간 흘려보내는 정직한 내가 될거야. 꼭 그렇게 살 거야 난.
얼마 전 인천 펜타포트 록 페스티벌 (정확히 10년 전에 갔던 그곳! 그게 마지막이었는데)을 온라인으로 생중계해주는 바람에 해외에서도 즐겁게 자우림의 공연을 볼 수 있었다. 큰 화면으로 틀어두고 맥주를 한 잔 마시며 노래를 따라 부르려니 위층 사는 하우스 메이트가 '너 지금 노래 부르는 거야?' 라며 한 마디 한다. 내가 시끄러웠다면 미안하다고 하니 '노래하는 게 어때서, 그냥 그렇게 스트레스 푸는 거지 뭐' 하더라. 고마우면서도 계면쩍은 감정이 들었다. 얼마 뒤 한국에서는 '자우림'의 단독 공연이 열린다고 한다. 가을과 너무 잘 어울리는 '잎새에 적은 노래'라는 제목의 서정적인 공연. 코로나 블루로 힘들었던 이들의 마음에 자주색 비를 내려줄 공연 같아서 너무 가고 싶다. 시공간을 초월할 수 있다면 좋겠지만 나, 그냥, 내려놓고 잠시 서울 다녀올까. 아, 2주 남았다.
샤이닝 (2006, 자우림 앨범 'ashes to ashes' 수록)
지금이 아닌 언젠가 여기가 아닌 어딘가
나를 받아줄 그곳이 있을까
가난한 나의 영혼을 숨기려 하지 않아도
나를 안아줄 사람이 있을까
목마른 가슴 위로 태양은 타오르네
내게도 날개가 있어 날아갈 수 있을까
별이 내리는 하늘이 너무 아름다워
바보처럼 나는 그저 눈물을 흘리며 서 있네
이 가슴속의 폭풍은 언제 멎으려나
바람 부는 세상에 나 홀로 서있네.... (중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