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것이 아닌 기쁨과 슬픔에 동화되는 순간, SNS를 하는 순간이다. 한 편의 글을 작성하고 발행하는 시간도 '그분'이 오시면 빛의 속도로 흐르지만, 그와 비례하게 SNS를 하는 시간 또한 삶에서 꽤 많은 부분을 차지한다. 내 뇌는 정보를 능동적으로 받아들이지 않고 있다고 해도, 결국 내가 취해야 할 것 같은 삶의 방향성은 SNS에서 즐거운 한 때를 보내고 있는 이들의 사진 속 이미지와 겹쳐지는 게 사실이니까. 그 괴리감에 사실 잠들지 못하는 밤도 요즘 많다. 그걸 나는 친구와의 짧은 대화 끝에 이렇게 명명했다. '넌 (아이를 낳고 결혼하는) 숙제를 다 했잖아' 사실, 그런 말을 하고도 친구에게 미안했다. 숙제는 끝난 게 아니라 시작이라는 걸 잘 아니까. '나'라는 사람의 아이덴티티가 사라지고 내 자아를 바쳐 아이를 평생 책임져야 하는 게 엄마라는 생각이 이제는 드니까. 그럼에도 나보다 훨씬 '어른이 된' 친구는 말한다. 지금 있는 그대로의 내가 행복하다고, 혼자 있어도 괜찮다고.
지난 주말에 오랜만에 만난 사람들과 엄청난 과음을 했다. 저녁 식사부터 시작된 와인이 8병 정도 비어갈 무렵 시계를 보니 새벽 5시였다. 집에 와서 그다음 하루 동안은 아무것도 하지 않고 침대 속에 웅크린 채로 있었다. 그러면서 요가를 가지 못한, 단 한 글자도 쓰지 못하고 하루를 망쳐버린 내가 싫었다.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야 하는 순간에도 술이라는 건 늘 사람의 발목을 잡아끌고 굳이 굳이 지난 일들을 곱씹게 만든다. 해서 만 이틀을 침대에서 벗어나기 싫어 발버둥 치며 싫어도 해야 할 일과 그래도 영 하기 싫은 일 사이의 경계에서 춤을 추는 어른 아이처럼 살았다. 그 이틀이 엄청 길었다. 매일 해야 할 일을 하지 않으니까 속에서 불안한지 - 이제는 생체리듬이 깨져버리면 다시 되돌리기가 너무 힘들다 - 악몽들을 꾸었다. 가슴속에 영 자라지 않은 아이 하나를 안고 가만히 감정이 올라오는 걸 느껴보았다. 술 취하기 전 이틀간 나는 화가 나 있었다.
하나는 소시오패스에 가까운 사람임을 알면서도 사랑한 '그'에 대한 기억과 또 하나는 나와 직접적인 관련이 없는데도 내게 일을 시키는 권위적인 사람에 대한 화. 또래들과의 대화 끝에 권위적인 사람에게 '우아한' 거절은 하지 말자고, 싫으면 싫다고 딱 잘라 이야기하자고 다짐한 끝에, 그 술자리에 이르렀을 때, 권위적이지만 그렇지 않은 척하는 사람을 두둔하는 듯한 선배 앞에서 나는 폭발했다. 솔직히 말해, 꼰대 짓도 모자라 후배들의 외모 평가를 일삼고 성희롱을 대놓고 하는 그들에게 더 이상의 기대는 없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그런 사람들은 어디에나 있고, 관련이 없는 사람들도 심지어 닮아 있다. 그것도 성별과는 관계없이. 내가 제일 싫어하는 '시어머니' 유형으로 말이다. 이런 내가 어떻게 같은 한국인과의 결혼 생활을 꿈꿨을까 싶기도 하다. (그렇지 않은 남편분들 계시다면, 이 자리를 빌어 죄송합니다)
그리고 월요일 하루는 점심 요가 저녁 8 천보 걷기로 마무리하고, 오늘은 이상하게 새벽부터 잠을 설쳤다. 혼자 있으면 제대로 잠을 자는 것도, 섭식도 리듬이 깨져버리면 아주 괴로워진다. 일을 하는 둥 마는 둥 하루가 어떻게 지나갔는지 모르겠지만, 그래도 몸을 일으켜 요가를 하고 (울리는 전화기를 무음으로 내리누른 채) 아주 오랜만에 요가원 근처 도서관에 와 보았다. 도서관이 생긴 건물은, 내가 처음 이 도시에 왔을 때 막 준공되고 있었다. 완공되고 나서 이렇게 큰 규모일 줄 몰랐는데, 그때는 저 건물이 다 올라갈 때까지 나 여기에 살고 있을까 궁금했었는데. 내 마음 혹은 내 사회적 스테이터스(status)만 빼고 주변이 아주 빠르게 변하는 것이 불안하기도 했다. 준 사서처럼 학생 시절 3년이나 공강 때마다 일했던 도서관인데, 이제는 책 반납 로봇이 돌아다니는 새로운 환경에 주눅이 들어 책이며 시청각 자료를 빌리는 방법을 하나하나 물어봤다. 친절한 안내원 덕분에 손쉽게 내가 원하는 섹션에서 원하는 책을 찾을 수 있었다.
그 순간 아주 자연스럽게 대학원에 진학하기 전 만성 우울증 진단을 받고 교보 문고의 심리학 섹션을 휩쓸고 다니던 내 모습이 겹쳐졌다. 그때는 책 속으로 도피하고 세상 모든 우울증 극복기를 찾아서 읽을 양으로 내 안의 세계 속에 침잠했었고, 하루 종일 침대에 누워 멍하니 천장을 바라봤고, 하루 종일 굶다가 하루 한 끼 폭식하고 다시 멍해져 있고의 반복인 생활을 했다. 직장을 관두고 대학원으로 갈 때까지 유학과 진학 사이에서 반복된 6개월이 더 길어졌으면, 내 몸은 더 망가졌을 것 같다. 그래도 그때 원 없이 많은 책들을 읽고, 많은 영화를 보고, 혼자만의 시간을 가졌던 걸 후회하진 않는다. 내가 미처 알지 못한 내 안의 심연들을 가늠해 볼 수 있는 시간이었다. 그냥 그 우물의 뚜껑을 닫고 계속 삶을 영위했던들, 나는 행복하지 못했을 거라고 단언한다. 어딘가 꼭 부서진 사람처럼 불완전한 채로 살았을 것이다.
그래서 비슷한 순간이 온 오늘도, 내 몸이 그걸 기억하고 있나 보다. 자연스럽게 이르른 심리학 섹션에서 정말 자연스럽게 내가 한 번에 집어 든 책은, 나와 비슷한 덕후의 책이라고 할 수도 있겠다. 소설가 제인 어스틴의 '오만과 편견'은 중학생 시절부터 영문판 국문판 영화 BBC 드라마까지 달달 욀 정도로 봤던 나인데 (심지어 회사에서 잘릴 것 같은 위기감이 들 때도 이 드라마를 밤새워 보면 기분이 좋아지기도 했다), 2019년 출간된 'Be more Jane'이라는 이 책의 저자 소피 앤드류스라는 여인은 '오만과 편견'의 백 개도 넘는 에디션의 소유자라고 쓰여 있다. 책 속에 나오는 주인공들을 통해 삶의 위기를 극복해 나가자는 취지와 옆집 언니가 해 주는 듯한 충고에 따스한 위로를 받으며 새삼 생각했다. 외국인한테 혜택도 없이 세금 많이 낸다고 이 나라 정부에 뭐라 할 게, 아니라 밖에 나오면 이렇게 요가원 옆에 시설 좋은 5층짜리 놀이터가 있는데, 나는 왜 그렇게 작은 방에 처박혀 침대 속에서 우울해했을까? 내 삶이 어딘가에 처박혀 있는 기분이 들 때, 나를 기다리는 책들이 이렇게나 많은데. 매일의 루틴에서 벗어나지 못해 괴로웠다면, 다시금 인생을 어디로 항해해 갈지 몰라 괴롭다면 이젠 다시 책으로 돌아가야 할 때인가 보다.
솔직히 말해 나의 현재 연애사는 정말 노답인데 오늘로서 나는 그걸 그냥 내려놓고 마음이 편해져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SNS 프로필을 보고 이래 저래 연락을 하는 사람들이 있지만, 온라인으로 만나는 그들은 결국 그 사진으로 판타지를 키우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자, 결국 아무도 믿을 수 없게 된다. 나는, 보이지 않는 실체와 '알아가는 게' 여전히 무섭다. 보이지 않고 닿을 수 없는 연애는 할 수 없다. 매일매일 만날 수 없는 사람이라면, 참 힘들구나. 그렇게 눈이 멀어 실수했으면서. 다만 한 가지만 결심했다. 삶에 '밀려둔 숙제를 해야겠다는 생각'으로 다시 내 인생을 심판대에 세우지 않으리라고. 차라리 결혼 안 하고 마흔 하나에 저 세상으로 간 제인 어스틴이 훨씬 멋지다고 생각했다. 적어도 그녀는 자기가 원하는 대로 원하는 사람들과 살았으니까 말이다. 그렇게 제인 어스틴에게서 위로받고 돌아가는 길, 이런 생각이 들었다. 혼자 사는 법은 매일매일 터득해도 매일매일 새롭구나, 그래도 나, 잘 살고 있구나,라고 말이다. 외로울 땐 내게는, 언제든 갈 수 있는 요가원도, 도서관도, 영화관도 있다. 같은 공간 속에 있는 타인들과 같은 가치를 추구하는 것만으로, 유대감을 느낀다. 그리고 내게는 소수이지만, 꼭 얼굴을 보고 술이 아닌 차 한잔을 하고 싶은 친구도 몇 명 있다. 삶은 이렇게 좋아질 수 있는데, 침대를 박차고 나가는 용기만이, 내일 아침에도 제일 먼저 내게 필요한 것이다.
그래도 책을 읽었으니, 거기서 좋은 구절 하나를 가져와본다. 자세한 내용은 인스타그램에 있다. 다행이다. 나는 본문 그대로의 영어책도 일어책도, 한글책도, 읽을 수 있어서. 동시에 단어 공부도 할 수 있어서. 백지상태로 열심히 단어를 외우던 중학생 때로 되돌아 간 것 같아서 기뻤다. 결국 그때도 지금도, 내 삶은 내가 제일 잘 알고 내가 결정해야 한다는 건 변함이 없지만, 과거의 나는 수많은 권위에 둘러싸여 숨도 쉬지 못했다. 그리고 지금은 참으로 모순되게도 나는 완벽한 자유인이건만, 권위의 그림자 속에 스스로를 옥죄는 바보 같은 일을 저지르며 세월을 낭비하기도 한다. 하여 잊지 말기로 하자. 오늘의 즐거운 지적인 유희를, 내가 내 인생의 주인이라는 사실을, 내 목소리를 내야 한다는 사실을 말이다. 모든 사람에게 친절한 나는 이제 안녕.
제발 나만을 위해 살자.
Learn from Jane
Advice can be good, but if it doesn't feel right for you, then make up your own mind. Only you know what is truly right for you. Don't expect to sail through smooth waters all your day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