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오는 했지만 돌아와서 일한 첫 이틀은 미친 듯이 이메일들을 쳐냈고, 밀린 업무 관련 통화를 했다. 이렇게 하지 않으면 불안했다. 내 자리가 혹여 사라질까 봐. 기우였다. 감사하게도 나의 자리는 건재했다. 상사는 내가 돌아와 줘서 기쁘다고 말했다. 화요일 저녁, 나는 귀국하고 공항에서 집에 들어와 정확히 45시간 만에 집 밖을 나섰다. 냉장고에는 냉동식품 밖에 없었기에 신선한 토마토가 먹고 싶어서였다. 턱선이 둥글어진 나를 거울에 비춰보며 당분간 반강제적 키토 제닉 다이어트를 해야겠다고 다짐했다.
수요일에도 친구가 나를 불러내지 않았다면 계속 그렇게 집에 틀어박혀 있을 것 같았다. 우스운 건 피곤한대도 그동안 놓친 드라마 '우리들의 블루스'를 8편이나 정주행 했다는 거다. 모자의 갈등을 그린 에피소드를 보며, 어린 시절의 상처가 얼마나 오래갈 수 있는지, 그리고 그것을 알아차리고 표현하고 해소하기가 얼마나 힘든지 - 그러나 계기가 있다면, 놀랍게도 한 순간에 가능할 수도 있는- 에 대해 공감하고 감탄하며 감상을 했다. 문득 엄마 생각을 했다. 가족들이랑 한 달을 같이 살다가 오니 가족들도 나도 다시 '원래대로의 생활'에 적응하는데 시간이 좀 필요했던 것 같다. 그래 이게 내 삶이었지. 끝없이 끝없이 혼자인 공간에서 브라운관만 이야기하는, 벽 보고 밥 먹고 일하다 혼잣말을 하는. 편할 때도 있고, 외로울 때도 있고, 귀찮을 때도 있는 공간.
한 끼 식사를 대화하며 먹을 수 있다는 건 행복한 일이다. 스트레스 수치도 낮춰주고 내가 세상에 연결되어 있다는 느낌을 준다. 오늘 저녁에는 고객과의 약속이 있었다. 그녀는 그러나 고객이라기보다는, 회사 거래처로 만나지 않았다면 친구였을 사람이다. 외국어로 대화를 하니 한계는 있지만 신기하게도 서로의 이야기를 잘 이해하고 교감할 수 있었다. 서로 보통은 영화 이야기를 할 때 그러한데, 그녀는 뉴욕에서 영화 공부를 한 적이 있다고 했다. 나는 내 경험을 섞어 영화를 본 소감을 쓰는 부캐를 지난 7년 동안 무상 (?!)으로 가지고 있다. 가끔 시사회 티켓이나 공연 티켓이 떨어지는 일은 있지만, 금전 보상이 없어도 길게 할 수 있는 일은 정말 내가 좋아야 할 수 있는 일일 것이다.
그녀와의 만남도 그렇다. 피곤한 일상에 고객과의 저녁 약속이 싫다면 어떤 식으로든 점심에 만나자고 했을 거다. 아직 내 컨디션은 완전히 돌아오지 않았지만, 오늘 저녁 한 자리에 앉아 우리는 세 시간 동안 사는 이야기와 일 이야기를 했다. 그리고는 나는 다시 텅 빈 집에 돌아와서, 현저한 온도차에 적응하며 자리에 누워있다가 하나의 깨달음이 머리를 스쳐서 노트북을 켜게 되었다. 오늘의 대화에서는 개인적인 이야기들도 많이 나왔다. 하지만 나는 내 감정을 표현하는데 주저하지 않았고, 그녀가 내게 솔직한 만큼 솔직하려 했다. 편안하고 따뜻한 순간이었다. 고객을 대하는, 이전의 날카롭던 내 모습이 아닌 거 같았지만, 듣지 않고 너무 많이 말하는 건 아닐까 했지만, 이전보다는 오늘이 더 좋았기에 그 분위기에 취해있었다.
그녀가 물었다.
지난번에 자신과 같은 회사 부장이랑 저녁 식사했었냐고. 함께 초대했었지만 그녀는 따로 나를 만나고 싶어 했다.
만났었죠. 둘이서 소주 2병에 맥주 11병을 마셨다는 이야기는 하지 않았지만, 그 만남이 꽤 즐거웠다고 받아쳤다.
그녀는 말했다.
당연하지. 그 부장이 이야기하기에 편안하지 않은 자리에 나가서 그렇게 저녁 먹을 사람이 아니거든.
나는 이야기하기에 편안한 사람이었구나. 다행이다.
그녀는 가끔 내게 이제 진지하게 만나는 이가 없냐고 묻는다. 자신도 늦게까지 혼자 있다가 아이를 낳고 싶어 결혼했기에 좋은 남편이 될 사람인지만 봤다고 했다. 그래서 나이가 들어 혼자 있으면 아플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혼자 늙어갈 수도 있을 거라는 불안감에 대해 잘 알고 있었다. 그런 맥락의 이해를 해 주는 사람은 드물다. 문득 생각해 보니 내 주변에 이혼하고 재혼한 지인들은 있어도, 이혼해서 혼자 사는 사람은 많이 없다. 나는 뭐든 이렇게 더딘 사람인가 봐.
그녀는 물었다. 그럼 나는 어떤 사람을 만나고 싶냐고.
대답했다. 나처럼 나 자신에게 혹독한 사람은 아니었음 한다고. (이건 주변 사람들의 공통된 의견이다. 그런 기대치와 혹독함에 내 밑에서 오래 일한 사람이 많이 없다) 나는 아닌 척 하지만 주변 사람들은 이미, 다 알고 있단다. 그런 걸 숨기려고 하는 내 모습까지도 말이다. 그녀는 웃으며 또 물었다. 인생에서 제일 충격을 받은 영화 TOP 3에 대해서.
생각을 해 보니, 내가 최초로 많이 좋아했던 영화는, 사운드 오브 뮤직이었다. 나는 형제자매가 많은 그 집이 너무 부러웠다. 많이 외로운 아이 었나 보다. 두 번째 영화는 '아이다호'다. (https://brunch.co.kr/@aileensoyeonjan/21) 기면증이 있는 남창 마이크가 어릴 때 자신을 떠난 엄마를 찾아 여행하는 영화다. 난 이 영화를 열한 살 때인가 열두 살 때 보았는데, 끝없이 길을 떠나는 마이크의 모습이 어딘가 나와 닮아 있다는 생각을 하곤 했다. 엄마가 있지만 그녀는 없었다. 나는 그녀가 필요할 때 어떻게 도움을 청해야 할지 모르는 채, 그러나 그녀에 대한 애정과 그리움은 항상 가진 채 있었다. 세 번째 영화는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이다. (https://brunch.co.kr/@aileensoyeonjan/26) 이누도 잇신 감독이 한국에 왔을 때 기자 회견장에 갔던 일을 떠올리며 내가 했던 문답에 대해 말했다. 감독은 그냥 사랑의 처음과 끝을 정중하게 그리고 싶다고 했었다. 나는 그 영화를 세 번인가 봤다. 한 번은 그때 꽤 오래 만나던 남자 친구랑 봤는데, 사랑해도 맞지 않으면 내가 그를 떠날 수 있다는 걸 처음 알게 된 친구였다.
거꾸로 강을 오르는 연어는 아니지만, 그녀와의 대화를 복기하다 알게 된 것들을 적고 싶었다. 내 안에는 늘 사랑의 끝맺음을 잘하고 싶은 갈망이 있었달까. 꺼진 불도 다시 보자는 것처럼, 도망가는 연애가 아니라, 헤어짐의 이유를 설명하고 서로 잘 납득하는 그런 이별을 하고 싶었다. 그건 이번 여행에서 비로소 매듭 지을 수 있었던 첫사랑과의 만남 덕분에. (https://brunch.co.kr/@aileensoyeonjan/128 ) 나는 용기를 내어 그에게 사과를 하려고 문자를 보냈었다. 그는 기억도 못할 일이지만 나는 한 번은 둘이서 통화를 하고 싶었다. 안부를 묻고 나서 그에게 내가 한 첫마디는 '우린 사실 (제대로) 헤어진 적이 없잖아'였다. 그런 말을 하려고 계획한 적은 없었다. 그냥 마음에 있던 말이 튀어나와 버린 거다. '그러네'하며, 그도 납득했다. 순간 마음에서 무거운 짐 하나가 떨어져 나간 기분이라면 비약일까. 그 통화의 여운은 생각보다 오래갔다. 그리고 이제는 후련하다. 그가 행복하게 잘 살기를 바라는 마음뿐.
아이다호와 사운드 오브 뮤직이라는 영화들을 보던 열 살~ 열두 살 시절의 나는 더 이상 책임감 넘치는 어른이 되고 싶지 않다는 생각을 하고 있는 아이 었다. 나는 그런 생각을 했던 순간을 꽤 또렷하게 기억한다. 아이 주제에 아이답지 못하게 뭉뚝한 책임감만 있어서, 지긋지긋한 착한 아이 코스프레에 익숙해져서, 이미 지쳐있었는지도 모른다. 남들이 보면 아무런 문제가 없을, 괜히 징징댄다고 손가락질받을 그런 류의 고민이었는지도 모르겠지만, 나에게 그런 숨 막힘은 아주 어릴 때부터 시작되어 최근까지 나를 괴롭힌 게 맞다. 엄마와의 관계에서 정말 많이 고민하고 멀리 돌아왔는데, 이번 여행에서 마지막으로 그녀와 동네 산책을 하면서 나는 그녀에게 말했다. 매거진의 첫 글에서 썼던 사건을, 내가 울어야만 했던 그 순간을. (https://brunch.co.kr/@aileensoyeonjan/124) 엄마는 나한테 미안해야 한다고. 그런 상황으로 나를 밀어 넣은 과거를 미안해해야 한다고. 그런 말을 할 수 있을 만큼 단단해진 나를 발견했고, 한편으로는 한 달이라는 긴 시간에도 그녀와 잘 지낼 수 있다는 걸 알게 되어서. 그래서 오늘의 대화에서 나는 내가 여행 전과는 좀 달라진 걸 스스로 느꼈나 보다. 이제는 내 인생이 풀릴 것 같다는 설레임이 느껴졌다.
결국 사람과의 대화 속에서 깨닫게 되는구나. 말은 해야 상대가 아는 거구나. 마음에 걸리면 표현해야 하는 거구나. 이번 여행이 말짱 놀러만 다닌 여행은 아니었다. 공간을 바꾸어 나를 거기에 넣어보니, 멈춰진 공기 속의 주변이 환기가 되면서 그동안 보지 못했던 것들이 신기하게 보였다. 그것이 인생의 맛은 아닌가 싶다.
추신 : 나는 서울서 만난 친구에게 드라마 '나의 해방 일지'를 추천했었다. 정토회에 속한 그녀는 그것을 보고 난 후 흡사, '나의 수행일지' 같다고 말했다. 부처님 말씀하신 불법에 '감정의 노예에서 해방되자, 내가 만들어 놓은 과거의 상처에서 해방되자'는 내용이 있다고 말했다. 그제야 비로소, 나야말로 너무나 오랜 시간을, 내가 만들어 놓은 과거의 상처에서 해방되지 못한 채 전전긍긍했던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스스로 만든 도랑 속에 빠져서 허우적댔지만, 헤맸지만 이렇게 빠져나와 햇볕을 본다. 감사하고 또 감사한 일이다.
가능하다면 나에게도 타인에게도 선한 영향력을 내뿜는 사람 되고 싶다. 혼자만의 껍데기에서 갇힌 사람이 아니라 타인과 소통하고 교감할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 하지만 그전에 혼자서도 충만하고 행복한 내가 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