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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서율 Mar 10. 2023

덕질에 담긴 추억들

팬덤에 열광하는 이유는 결국

어릴 때부터 집에서 독립하기 전까지, 나는 엄마가 집에 안 계시면 잠을 자지 못했다. 충분히 칭얼대지 못했던 건 늘 바쁘게 움직였던 엄마를 생각해서였을까, 어른 흉내를 내고 싶었던 것이었을까.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아이는 그저 사랑을 받고 싶어 했던 거다. 아가페라는 무한대의 사랑과 관심을. 아주 많은 시간이 지나서 내 안의 그 아이를 '데리고' 살아나가야 함을 아는 지금. 나는 엄마에게 틈만 나면 툴툴댄다. 존재만으로도 감사해야 할 그 분과 나는 전생에 무슨 연으로 엮었을까 가끔 생각해 본다면, 우습다는 이야기를 들을까?


덕질은 나의 성장통을 완화시켜 준 고마운 활동이었다. 상실의 기억을 대신 치유해 준 것이 음악이기도 했고, 최근에 다시 구매한 시디 플레이어로 음반 한 개를 다 들을 수 있는 시간이 허락되면, 나는 열몇 살의 그때로 돌아가곤 한다. 작은 내 방과 은은한 불빛과 조용히 시디가 돌아가며 음악이 흘러나오던 순간.  그 속에서 받았던 말 못 할, 장엄한, 음악. 클래식 선율과 드럼의 선율 속에서 전율을 느끼던 어린 날의 나는 그저 무릎을 껴안고 울기만 했다. 그 시절의 나는 원거리 전학이 가져온 내 '최애' (이건 사실 일본식 표현이라 지양하고 싶지만, 최근의 팬덤에서는 많이 사용되는 단어이다) 친구와의 이별을 표면적으로 받아들이는 것 외에는 다른 저항을 할 수 없었기에. 그 친구가 소중했던 이유는, 엄마에게 시시콜콜하지 못했던 내 일상의 이야기와 생각들을 자유롭게 표현할 수 있어서였는데. 그때 나는 유일하게 세상과 소통하던 숨구멍이 막힌 기분이었다. 


계속 물속에서 헤엄치고 있다가 수면으로 나오는 기분이 든 건, 음악을 듣거나 공연 영상을 보며 환호하는 순간들 속에서였다. 혹은 새로 사귄 친구들과 공통분모인 음악 이야기를 하고, 그 기성 음악을 카피하는 학교 밴드의 공연을 보러 다니고, 아르바이트를 해서 용돈을 모아 시디를 사모았던 경험들 속에서 나는 성장했다. 그런 순간들을 제외하고 나는 줄곧 잠을 자고 있는 것 같이 매사에 시큰둥했다. 고 3 때는 케이블 티브이가 없던 집에서 볼 수 없는 공연 실황을, 독서실 사무장님께 부탁해 녹화본을 떠 달라고 했을 정도다. 매일 새벽 2시까지 공부했던 그 독서실을 대입 시험이 끝나고 짐 정리해서 나올 때 기분이란. 그 안에서 보낸 수많은 시간들 속에 내가 기억하는 순간은 공연 실황 녹화 테이프를 건네받던 순간뿐일 거다. 나의 학창 시절을 가득 채운 덕질이라는 활동은 취미를 넘어서 나를 성장시키는 원동력이 되었다. 대한민국의 험난한 수험생 시절을 겪은 세대들은 누구나 이렇게 자신이 쉴 수 있는 곳들을 하나 둘 쯤은 남겨 두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요즘 세상에서 대두되는 케렌시아(주 : 스페인어로 케렌시아(Querencia). 피난처, 안식처를 의미한다. 투우 경기장에서 투우사와 마지막 결전을 앞두고 소가 잠시 쉬는 곳을 뜻하며, 최근에는 바쁜 일상에 지친 현대인들에게 나만의 휴식처를 찾는 현상으로 불리어지고 있다.- 출처 초록창 국어사전)를 말이다. 그런 팬덤 속에서 나와 비슷한 영혼들을 찾고, 교류하면서 느꼈던 일체감의 기억들은 다 성장하고 나서도, 내 자존감의 원천이 되었다. 


음악이 가성비가 좋은 추억의 매개체인 건, 위에 적은 경험처럼, 그것을 듣고 있는 3-4분 안에 추억의 그때 그 장소로 회귀가 가능하다는 거다. 더 열광한 공연에서 일수록 나는 꼭 굿즈를 하나는 구입했다. 나중에 그것을 착용하거나 사용할 때, 찰나이지만 열정적인 순간들의 환호성이 들리는 것만 같아서 (환청은 분명히 아니다. 은유일 뿐) 힘든 날에도 빙그레 웃음이 지어졌다. 지금도 나는 그런 경험들을 쌓아나가고 있는 중이다. 할 수 있는 만큼 조금씩 조금씩 쌓아 올려 훗날 꺼내볼 기억의 서랍들 속에 소중한 추억들을 켜켜이 쌓고 있다. 음악에 빠져 있을 때는 일상에서 흐트러지고 깨진 내 마음의 잔이 서서히 채워지는 기분이 든다. 채워지고 비워지는 순환들 속에 눈물이 흐르기도 하고 웃음이 터지기도 한다. 흘리는 눈물만큼 마음이 맑아지기를 기도했던 열몇 살의 나는 그저 많이 외로웠던 아이였다. 이제는 스스로를 돌볼 수 있을 만큼 성장했기에 외로운 것을 이겨내는 일도 수월해졌다. 내가 사모은 시디들의 숫자는 외로움에 비례하는 건지도 모르겠지만, 학창 시절부터 소문난 수집가였던 건 사실이고, 요즘은 있는 당근 같은 어플 없이도 수많은 거래를 트고 살았다. 세대가 변해도 너무 변해 팬덤 속의 언어들이 변모 (예를 들어 티미포 플미, 거파, 쿨거가 등등..) 하고 있는 것도 자주 본다. 팬덤은 타인이 모르는 어떤 종류의 문화를 함께 향유하는 고유의 즐거움이 있다고 보는데, 그래서 업계 용어처럼 자주 사용되는 걸 바라보며 씁쓸한 웃음을 짓는다. 아직도 나는 손편지랑 예쁘고 정확한 단어의 사용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람이라.. 마음은 그렇지 않은데 언젠가 이렇게 기성세대가 되어 버렸다. 


작가 소개에 '설렘이 사라지면 나는 죽는다'라고 적었었는데, 그때 내가 의도한 설렘은 아마도 이 모든 기억들을 향한 추억과, 현재 진행형인 호기심 일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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