뭐든지 다 잘할 수 있을 거라고 믿었다.
힘이 부치는 날 퇴근해서는 아이스크림 반통을 먹고 배탈이 난 뒤에 알았다. 그것조차 소화시키지 못할 거면서 왜 나는 목소리를 내기 시작한 걸까. 프로젝트에 이름만 걸어두고 남에게 일은 다 넘기는 뻔뻔한 이를 회사에서 보면 너무 싫지만 가까이서는 뭐라 말도 못 하고 뒤에서만 구시렁댄다. 이건 내가 꿈꾸던 커리어우먼의 자세가 아니다. 어디서부터 잘못된 걸까?
내 목소리를 낸다는 건 회사에서 빼먹을 것만 쏙쏙 가져가고 '큰 책임을 지지 않는' 이들에게 무작정 비난을 하는 것이 아닐 것이다. 그런 이들이 내 밑에 있다면 더더욱 객관적으로 평가지표를 만들어 성과 중심의 지적을 해야 맞다고는 하는데, 그 방법들이 얼마나 교묘한지, 화가 번쩍번쩍 나기 일쑤다. 결국 마인드 컨트롤인가. 손 안 대고 코푸는 자들의 스킬을 배울 것인가, 이대로 곰처럼 일하는 중간 관리자로 남을 것인가?
온전히 내 문제로 고민하는 2024년을 시작을 맞고 싶었는데 일도 내 일부가 되었나 보다. 일 속에서 많은 인간상을 보고 배운다. 내가 그들을 만난 첫 해의 이미지를 그대로 가져가는 이들은, 회사에서는 거의 없다. 나도 내가 그런 사람의 일부이길 바라지만 그것도 받아들이는 사람 나름 인지. 한 해 두 해 지나 같이 일하다 보면 등에 칼이 꽂힐 때도 있고, 눈앞에서 성과의 가로챔을 당할 때도 있고, 브루투스 너마저 저리 가라 할 정도로 괜찮게 봤던 사람이 나중에는 영 아니었던 경우도 있다.
하지만 양은 냄비처럼 빨리 끓고 식는 내 감정선에 - 불행 중 다행인 것은 소수의 친한 이들만 알고 있는 이 모습- 후후 입김을 불어주며 'calm down'을 외쳐주는 몇 안 되는 친구들이다. 그녀의 젠틀한 어프로치 방식에, 상대가 알아채지 못하게 살살 정보를 그러모으는 커뮤니케이션 테크닉에, 그리고 욕망은 없어 보이되 상부에 자기 어필 확실히 하는 처사에 나는 많은 것을 배운다.
일하는 거랑 살아가는 거, 별 다를 거 없다. 살아가고 버텨가다 보면 좋은 일도 생기고 나쁜 사람도 만날 수 있을 것이다. 그냥 내가 좀 억울하다고 느끼는 것은, 안 괜찮은 것을 안 괜찮다고 이야기하는 능력이 내게 탑재되어 있지 않기 때문이었다. 해서 자신의 권리를 먼저 주장하는 이들을 볼 때, 나는 화가 나곤 했었다. 입장 바꿔 생각해 보면 나도 충분히 그럴 수 있었을 텐데. 원하는 것을 쟁취하는 것 또한 권리니까.
'왜 그 사람이 그렇게 미운지 자신을 들여다봐'라는 조언을 들었을 때, 그녀 앞에서는 웃었지만 집에 와서 그 말을 곱씹다 보니 눈물이 났다.
한창 마음을 다쳤을 때는 '너 괜찮아?'라는 말만 들어도 울컥하던 나였다. 그녀의 말이 고마웠다.
난 어쩌면 혼자만 꽁해서 주변에 사랑해 달라고, 날 인정해 달라고 온몸으로 외치고 있는지도 모른다. 성인이 되어 타인의 배려를 받고 있을 텐데 겉만 어른 인척하고 아이처럼 더더 무엇인가를 요구하기만 하는 내가 되면 안 될 텐데. 그래도 그런 내 모습조차 나인 걸 받아들이고, 나를 알아차리게 해 주는 주변에 감사하는 마음을 잊지 말자 생각한 요 며칠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