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켓북을 들여다보다가 나도 참 덕질에는 일가견이 있었나 싶은 순간. 어떤 영화가 좋다고 그걸 2주 안에 세 번이나 보는 호사를 누렸던 적도 있었구나.. 내 기억에는 이명세 감독의 '형사 Duelist'랑 츠마부키 사토시가 나오는 'water boys',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만 그렇게 세 번씩 영화관에서 관람했다고 생각했는데.. 여기 이 영화가 있었다.
드라마 노다메 칸타빌레의 '치아키 선배'로 유명해진 배우 타마키 히로시가 주연한 '다만 널 사랑하고 있어'..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너의 췌장을 먹고 싶어' 같은 아주 나중에 나온 일본 멜로 영화의 선배 격인 영화였었다. 2007년 즈음의 당시의 나는 대학에서 일본어랑 일본 문학을 전공 후에 졸업하고, 일본어 통역을 하면서 먹고살았을때라서 자연스럽게 일본 문화에 관심이 많아 한국에서 개봉하는 웬만큼 유명한 영화라고 하면 다 보러 다닐 때였다. 그런데 이 날짜를 보니 기억이 나는 것은, 그 무덥던 여름에 우울증이 너무 심하게 와서 인생 최초로 저체중에 근접한 몸으로 있었다는 것이다.
대학 졸업 후 첫 직장을 나가면서 인간관계며 모든 것이 힘들어 찾아간 정신의학과에서 만성 우울증 진단을 받고, 그래도 2년 정도는 버티다가 못 견디고 사표 쓰고 나와 하루 종일 방천장만 보고 드러누웠을 즈음이 이 해의 여름이었다. 삶에 아무런 의욕이 없었고, 식욕도 없었고, 그러다가 이렇게 마음에 드는 영화가 있으면 영화관으로 도망치듯이 현실 도피를 했었던 시기였다. 왜 그랬어야만 했을까. 하고 싶은 것만 하고 예쁜 연애만 해도 모자랐던 시절에 나는 영화관 스크린을 보며 '이뤄지지 못했기에 아름다운' 정서를 가진 일본 영화의 사랑을 동경했었다. 그렇게 꿈속에 있는 것이 아픈 현실보다 상처를 덜 받는 걸 어렴풋이 알았기에 본능적으로 거부했던 것 같다.
자세한 이야기를 기억해 내면 여전히 아프지만, 인생의 스승이라고 믿었던 사람에게 배신을 당하고, 가족들에게는 우울증이라고 말하지 못하고 혼자 끙끙 앓고, 2년간 일하면서 모은 돈으로 그나마 여가 생활을 할 수 있었던 그 해 여름. 남들이 학교에 가고 일을 할 시간에 혼자 심리학 서적을 들고 영화관에 가서, 티켓을 사고 근처 커피숍에서 밥을 먹거나 했었던 시절. 여전히 나는 방황 중이었다. 내가 누구인지 몰랐고, 왜 이렇게 예민하고 대인관계가 힘든 것인지 대책이 없었다. 지난번 글에서 고등학교 시절의 첫 상실에 대해 잠시 썼었는데, 그 상실을 겪은 이후로 굉장히 피상적인 대인 관계만 맺으면서 직장인이 되었던 것 같다. 가족들과의 관계도 그러했는데, 특히 엄마와 대화가 거의 없었다. 엄마가 원하는 삶에는 내가 없는 것 같아서 다가가기 힘들었다. 마흔이 넘어서 생각해 보면 그녀도 자아실현을 위해 애썼던 것 같지만, 어린 시절의 상처받은 내가 마흔 언저리까지 내 마음속에서 절규하고 있었던 걸 돌이켜보면, 나는 누구도 볼 수 없는 어둠 속에서 혼자 눈물 흘리고 있었던 것 같다.
자가 치유가 가능했던 영화관. 대책 없이 말랑한 이야기. 헌신적인 연인, 아름다운 사랑. 나는 무던히 그런 사랑을 동경했지만, 그걸 얻기 위해 어떤 과정을 거쳐야 하는지 미처 보지 못했다. 부단히 읽었던 심리학 책 속에도 그런 것을 가르쳐 주는 건 없었다 (혹은 내가 깨닫지 못했을 수도 있다). 그렇게 혼자 있는 시간 속에도 다가오는 사람들이 있었건만, 내 표정은 그저 '혼자 두세요' 였던 듯하다. 수많은 시간이 흐른 지금은 그렇게 혼자 있고 싶지는 않지만, 연락할 수 있는 사람이 많이 줄어들었음을 느낀다. 어제는 일이 끝나고 보고 싶은 영화를 저장한 휴대폰 캘린더 알람이 울렸음에도, 몸이 힘들어서 집에 와 쉬었다. 그런 것이 달라진 것일까. 방향을 모르는 열정으로 나를 불태웠던 젊음이, 이제는 조용히 돌이켜 보는 시간을 가지는 장년이 되어 가는 것이. 내 마음속의 설렘이 사라지지를 바라지는 않지만, 무모한 방향으로 휩쓸리지는 않을 나이가 되어 가는 것이 좋다. 어쨌든 그때의 시간들이 쌓여서 지금의 나를 만든 것이니 특별히 부정할 필요도 없다. 그저 내가 나 자신을 알아주기만 하면 되는 것을. 그렇게 기껍게 앞으로 나아갔으면 되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