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상 잘하던 아이 8

기억 속 음식과 문화

by 장서율

2025년 10월 6일 월요일은 한가위다. 싱가포르에서는 이를 Mid autumn festival, 中秋节(Zhōngqiūjié)라고 부르는데, 계란 노른자가 통째로 들어가는 월병을 먹는 풍습이 있어서 홍콩에서는 月饼节 (Yuèbǐng jié), 즉 Moon cake festival이라고도 부른다. 동그란 모양의 월병은 보름달을 상징하기도 하고, 완성된 모습, 가족 간의 화합, 사업 번창 등을 나타내기도 한단다. 재미있는 것은, 한국과 중국은 추석 명절에 긴 연휴가 있고, 홍콩은 6일 다음날인 7일을 공휴일로 지정하지만, 싱가포르는 이 추석 명절이 공휴일이 아니다. 다인종이 사는 나라답게 크게 중국의 영향을 받지 않으려 하는 것일까?


그런 것 치고는 나는, 매년 고객사에 월병세트 상자를 전달해 왔다. 이 시기는 주변의 감사한 사람들에게 이것을 전달하며 관계를 확인하는, 중요한 시기이기도 하다. 싱가포르의 월병 시장은 매우 크다. 큰 호텔이나 베이커리에서는 1년 중 많은 매출을 거두는 시기이기도 하다. 올해도 어김없이 시내 중심인 오차드에 있는 타카시마야 백화점 지하 2층에는 많은 업체들이 참여해 월병을 판매했다. 이 행사는 2013년에 처음 가 보았는데 매년 일본 백화점에서 중국식 월병 팝업을 보는 것은 신기한 경험이라고 생각한다. (일본에는 추석 대신 오봉- お盆이 있다. 백중과 비슷하지만 일본에서도 오봉 때 선물을 전달하거나 한다) 싱가포르에 와서 지금까지 매년 추석이 다가올 때마다 주변 싱가포르 사람들에게 내가 주지 시키는 것이 있다.


월병 박스와 그 종류, variation은 해가 다르게 진화해 나가고 있다. 사진 출처 : discoveriest.sg


'한국도 추석은 큰 명절이고, 우리는 월병 대신 송편이라는 떡을 먹어' 더불어 거의 매번 말한다.

'한국 김밥은 김밥이지, 스시가 아니야. 스시는 식초가 들어가는 거고 김밥에는 깨소금이 들어가.'


식문화는 우리 생활과 아주 밀접하게 맞닿아 있다. 하지만 위 차이를 아는 외국인들은 많이 없었다. 그나마 요즘 넷플릭스에서 흥행한 '케데헌 (K pop demon hunters)' 덕분에 한국 분식에 대한 관심이 커졌다. 매우 고무적인 일이라고 생각한다. 2025년과 1995년, 차이는 얼마다 더 컸을까? 그것도 식도락의 나라인 홍콩에서 말이다.


한국에 패스트푸드가 처음 들어온 게 1990년 대 초였고, Wendy's나 KFC, 압구정에 맥도널드가 있었다. 하지만 의외로 자주 접하는 음식들은 아니었다. 한창 폭풍성장하던 시기에 홍콩에서 많이 먹었던 건 KFC와 맥도널드였다. Central에 위치한 건더지(肯德基- KFC의 차음), 마이당라오(麦当劳- 맥도널드의 차음)는 학교 끝나고 혹은 주말에 친구들을 만날 때 가장 만만한 곳이었고 제일 맛있었던 곳이었다. 홍콩의 유명한 아이스레몬티랑 맥치킨세트에 치킨 너겟까지 추가해서 먹고는 했던 우량아가 바로 나다. 오전 11시까지만 판매하는 아침 핫케이크 세트가 먹고 싶어서 일부러 학교에 지각한 적도 있다. 나의 먹부심은 패스트푸드뿐 아니라 학교에서 오전 10시 반 경 20분 정도 있는 브레이크 타임에 매점에 가서 먹던 연잎찰밥찜 (Lo Mai Gai)와 새우만두 (Hakau) 사랑에서도 두드러졌다. 기름진 음식들을 간식으로 먹고서도 12시가 되면 어김없이 교내 식당에서 밥을 먹고는 했으니까 음식에서 큰 기쁨을 얻는 학생이 나라는 건 맞았다. 그러고도 하교할 때쯤 되면 배고파져서 에그타르트 하나씩 사 먹고 돌아오고는 했다. 나는 어릴 때부터 부엌에 들어가서 뭘 하는 걸 좋아했었다.

싱가포르에서도 자주 보이는 딤섬 디쉬 중 하나인 로우 마이 가이.


만두피는 비칠 듯이 얇아야 하고, 새우는 통통해야 한다는 핫카오 딤섬.


일고 여덟 살 때 아파트로 이사 가기 전에 빌라에 잠깐 전세 들어 살 때, 부엌에는 가스레인지 대신에 전기 곤로가 있었다. '응답하라 1988'에 나오는 덕선이네 부엌 같은 그런 느낌. 나는 거기서 라면을 끓여서 동생이랑 같이 먹고는 했다. 엄마가 부엌에서 나가라고 해도 굳이 설거지하겠다고 덤벼서는 그릇을 깨 먹기도 했지만, 나는 음식 냄새가 나는 부엌을 좋아하는 애였다. 홍콩 사택에 살 때 부엌은 외식을 자주 하는 더운 나라 부엌답게, 좁고 길었고, 개수대는 하나밖에 없어서 두 사람만 들어가도 꽉 차는 그런 느낌이었다. 3년 좀 안 되는 기간 동안 친척 친지들의 방문이 참 잦았는데, 그 좁고 더운 부엌에서 엄마는 상다리 휘어지는 밥상을 차려내곤 하셨다. 갈비찜부터 시작해서 누가 애호박이나 깻잎이라도 고이 가방에 담아 가지고 오는 날이면, 애호박을 되도록 얇게 썰어 전을 부치시곤 했다. 사택에 모여사는 아주머니들이랑 하시는 김장은 연례행사였고, 가끔 바닷가에 가서 단체로 바비큐 모임을 갖기도 했다.


정육점에 가면 우족, 소꼬리 같은 건 현지 사람들이 안 먹고 버렸던 시기라 그런 걸 LA갈비 살 때 같이 얻어 와서 한 솥 가득 끓여 먹기도 했고, 당시 소고기가 한국보다 싼 편이라 많이 먹을 수 있었다. 시장에 가면 생물 새우 1kg 정도가 그 시절 홍콩 달러 50불 정도 했던 것 같은데, 덕분에 우리 가족은 새우 까먹기의 달인이 되기도 했다. 내 동생은 갈비, 새우, 후식으로 망고를 잔뜩 먹고 살이 쪘다가, 중학교 3학년이 되던 1997년에 20cm나 자랐다. 나는 중학교 입학 시점에 이미 163cm 정도였어서, 그 시절에 아주 잘 먹고도 5cm 밖에 안 자란 것이 슬펐다. 아버지 덕분에 점보 식당 가서 랍스터도 먹어보고, 중국 심천 여행 가서는 머리까지 같이 구워져 나오는 비둘기를 맛보기도 했다. 그때는 그 모든 주어지는 것들이 감사한 줄 많이 몰랐다. 커 가면서 그것들이 기억 속 어딘가에 좋은 기억으로 남아, 내가 혼자 싱가포르에 와서 같은 음식들을 발견하고는 얼마나 반가웠는지 모른다.


지난주에 홍콩에서 같은 학교를 다니던 일본인 친구 Y가 주재원으로 발령받아 싱가포르에 왔다. 와인을 마시며 회포를 풀면서, 그녀가 예전 홍콩 집에서 내 생일날 우리 엄마가 해 주신 김치전이 너무 맛있었다며 이야기를 하는 거였다. 30년 전의 그 맛을 기억해 주고 감사해하는 친구의 마음이 고마웠다. 그녀와 드문드문하기는 하지만 일본을 다니며 꽤 자주 만났었다. 하지만 이런 이야기는 처음이었다. 우리는 함께 아는 동창들의 이야기를 하고, 그 시절을 추억하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기억 속의 음식들은, 함께 먹으며 즐거웠던 시간들은 얼마나 기억에 오래 남는지. 1994년에 처음 비행기에 오르며 바리바리 김치를 싸들고 가던 엄마의 마음은 얼마나 막막했을지. 세월이 많이 지나 이제 엄마가 굳이 김치를 담그시지 않아도 주변에서 가져다주는 이들이 많다는 이야기를 들을 때 나는 슬쩍 웃음 지으며 생각한다. 이제는 나도 김치를 담가먹을 줄 아는 나이가 되었으니 걱정하시지 말라고. 그 시절에 우리를 먹이고 입히신 그 마음은 이제 기억 속 저편에 아름다운 유산이 되어 우리의 현재 삶을 지탱해 주고 있는 중이라고 말이다.


잘 자고 일어나서 마음이 따뜻한 일요일 점심. 일어나서 밥을 안치고 냉동실을 뒤져 지난번 한국에 다녀오며 챙긴 건취나물을 불려 무쳤다. 콩, 파로, 가지랑 쪽파를 넣고 양념 간간하게 한 밥에 들기름 넣어 무친 취나물은 외국에서는 충분한 호사이다. 집밥을 먹으며 추억하는 그 시절의 나와, 지금의 나. 음식은 몸뿐 아니라 마음에도 평안한 안식을 줄 수 있다.


이제 사람들이 싱가포르에서 뭐가 제일 맛있냐고 물어보면, 나는 집밥이라고 당당히 말한다.



일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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