익숙해진 것들과 이별하며 흘러간다
몇 달 전부터 계획한 휴가 하루 전날에 팀장이 사표를 냈다. 부하 직원들을 보호해 주면서 비즈니스에만 전념하라고 해 주는 리더는 사실 만나기 매우 힘들다. 인간적으로 말하면 인간적으로 들어주었기에 그녀에게 많이 고마웠고, 올해 초 부서를 바꾸는 것에 동의한 것도 그녀를 10년 전부터 알았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조직 내에서 떠나지 않을 것이라 생각했던 이들이 움직이고 있는 게 요즈음이다. 합병 인수 전후로 회사의 분위기가 많이 달라졌고, 그것에 결국 적응하지 못해 떠나는 거라고 생각한다. 그녀는 팀원 개개인에게 본인의 향후 계획을 말하며 팀에 남아줄 것을 호소했다. 생각이 많아졌지만 그 때문에 또 휴가 기간 동안에는 회사 일에 대해 아무 생각하지 않으려고 했다. 그녀의 발표 일주일 안팎으로 타 팀 사람들은 '다음 팀장은 누구?'냐는 질문을 내게 끊임없이 했는데, 나는 그 질문에 난색을 표하며 싫은 티를 내려 애썼다. '누가 되든 되겠지'라며.
디아스포라라는 게, 글쎄, 싱가포르는 그야말로 기숙학교 같은 나라여서 들고나는 사람들이 너무 많다. 최근 경기가 안 좋다는 말이 몇 년 동안 지속되면서 구조조정이 늘어서 그런지 귀국하는 사람들도 늘어나고, 나 조차도 종종 내가 하고 싶은 일 혹은 이직할 곳이 생겨 움직이는 상상을 하곤 한다. 이대로 얼마나 더 버틸 수 있을까? 월셋집 계약을 갱신할 때마다 나 자신에게 묻는다. 무한하게 주어진 자유이기에 책임져야만 하는 뒷감당. 영화 '어쩔 수가 없다'를 보고 그 고민이 더 깊어졌다. 아이 둘, 아름다운 아내, 두 마리 반려견 가족을 가진 만수는 어릴 적에 자신이 자주 이사를 다녔기에 '집'에 집착한다. 그는 한 업계에서 25년을 일했다. 그는 나무와 분재를 좋아한다. 그의 불행과 모험은 그의 평생직장이 미국 회사에 인수합병 당하면서 시작된다. 생산라인 인원의 20프로 감축에 대항하던 그는 결국 구조조정 1순위 대상이 된다. 그렇게 실직자가 된 이들은 아마도 회사의 배려(?)로 단체 상담을 받는 자리에서 3개월 내에 재취업할 자기 암시문장을 외운다. 원작에서 온 미국식 유머일까? 아니면 이런 모습이 한국 사회에서도 이제 빈번히 일어나게 된 것일까?
만수는 실업기간이 길어지면서 적잖이 당황한다. 그의 아내는 취미생활을 끊고, 집을 내놓기에 이르지만, 만수는 한 가지 묘책을 발견해 낸다. 바로 지역 내에서 유일하게 잘 나가는 업계 회사에 취업하기 위해, 자신과 비슷한 업력을 가진 사람들을 추려내 그들을 살해하기로 한 것이다. 그렇게 되면 그는 이전의 완벽하게 행복했던 생활로 돌아갈 수 있을 것이라고 믿으면서. 실직은 현실이다. 돈이 없으면 취미생활도, 대인관계도 가질 수 없다. 25년이나 꾸준히 일해온 가장 '만수' 또한 실업 기간 1년 남짓 가운데 자존감이 바닥을 치게 된다. 아이러니 한 점은 그가 살해할 대상을 가려내어 그들을 관찰하는 과정 속에서, 그들의 마음에 공명한다는 점이다. 연극적인 요소도 많고, 음악과 기괴한 미장센이 어우러져 탄복할만한 장면들이 이어지는 가운데, 나는 이런 메시지를 발견했다.
'내가 나일 수 있게 살아남는 것'
이것은 무엇보다 치열한 싸움이다. 내가 주저하며 일에서 한 눈을 파는 순간, 경쟁업계의 누군가가 치고 올라와 고객을 가로채 갈 수도 있다. 고객사 유치는 영업에게는 밥그릇 싸움이다. 계약 체결은 내 월급과 보너스, 그리고 생활의 질을 결정한다. 돈을 벌면 부모님을 웃게 해 드릴 수 있다. 아픈 자식을 살릴 수 있다. 이런 생각을 하면서 매일 나는 나와 싸운다. 이게 내가 가장 하고 싶은 일이 아니어도, 이제는 돌이킬 수 없다. 만약 다른 일을 해서 먹고살려고 한다면 지금의 수입 어느 정도를 보장하는 그 무엇인가를 찾아야만 할 것이다. 이런 고민들을 하다 보면 하루 일과가 지나가고, 한국으로 언제 돌아갈 수 있을까 싶다. 영화 속 만수도 그런 생각을 하지 않았을까? 피 튀기는 면접이 끝나면 일자리를 마침내 얻어, 행복했던 이전의 삶으로 돌아갈 수 있다고. 나는 영화의 마지막, 만수 아내의 대사가 참 사무쳤다. 만수가 그녀에게 이전에 하던 취미활동을 다시 시작하라고 하자, 그녀는 정색하며 말한다.
'이제 돈 모아야지'
위 대사가 오래도록 기억에 남았다. 똑바로 정신 차려야지, 무슨 일이 일어날지도 몰라. 시류에 편승한다는 말은 요즘 말로 주변 트렌드에 맞춰서 산다는 뜻이 될 것이다. 요즘 트렌드인 AI와 chat GPT 사이에서 여전히 사람들이 많이 필요한 우리 업계에서는 어떤 지각변동이 일어날 것인가? 앞으로 2-3년 안에 나는 어디에서 어떤 가치를 창출하며 살고 있을까? 그리고 과연 나는 더 행복할까? 행복보다 생존이 더 먼저이면 어떻게 할까. 내가 나를 지킨다는 건 일자리뿐 아니라 성격적인 면에서도 그렇다. 내가 맺고 있는 관계 안에 있는 사람들 속에서 내 성격대로 살아가려고 하다 보면 결국은 부딪히기 마련이다. 아주 미세하게 둥글어져 가면서 사는 건 맞겠지만, 내 성향을 존중받으며 살고 싶은 마음 또한 나이가 들 수록 더 커져간다. 지금 내가 지나고 있는 인생 구간이 그런 것이 아닐는지. 인생은 익숙해진 사람과, 제도와, 트렌드와 종종 이별하며 흘러간다. 변화는 곧 진화라고 배웠다.
삶의 이쯤에서 또 질문을 던져본다. 과연 그러한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