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ad to Rights (2025)를 보고
난징대학살에 대한 내용을 담은 영화나 드라마 중에 내 인생 최초의 기억은 1991년도 MBC 대하드라마 '여명의 눈동자'일 것이다. 그때 그 음악만 들어도 전율이 오소소 돋는다. 일제 강점기, 위안부, 태평양 전쟁, 난징 대학살, 731부대.. 그중에 몇 개 기억에 남는 장면 가운데, 최재성 배우가 연기한 한국인 병사가 징집되어 난징까지 가고, 폐허가 된 거리가 나온다. 민가마다 비밀 은신처에 숨은 가족들을 찾아내서, 갓난아기, 늙은 시부모, 남편은 사살하고, 아내는 강간하고 죽이는 그런 장면이 있었다. 한국인 병사는 우는 아기 앞에서 망설이지만, 결국 그가 속한 일본 군대에서 발포해 버린다. 당시의 나는 아직 어려서, 그 역사의 시점이 어디쯤이었는지, 이게 실제로 있었던 일인지, 혼란스러웠다. 하지만 36부작 대하드라마에서는 대한민국의 초창기 아픈 역사로부터 근대사까지 다루고 있다.
중국 공식 발표에 의하면, 난징이 포위되었을 당시 피란 가지 못했던 민간인은 30만 명에 달하며, 1938년 12월 중순께부터 6주에 걸쳐 온 거리에서 군인들이 다양하고 잔인한 방법으로 그들을 사살했다는 기록이 있다. 2009년에 발표된 드라마 '난징! 난징! (City of life and death)', 2011년도 영화 '진링(金陵)의 13 소녀'에도 자세히 대학살과 윤간에 대한 장면들이 등장한다. 대동아통일이라는 염원을 가지고 상해를 거쳐 중국 국민당 수도에 도달한 일본군은 이미 인간의 모습을 상실하는 중이었다고 어디선가 읽었다. 도시를 점령하고 무기를 든 군인들이 무기를 들지 않은 민간인들을 약탈, 강간, 살해하며 승리를 자축하는 모습은, 사람을 사람으로 대하지 않고 짐승처럼 다루는 모습이 많다.
2025년 7월, 중국 전승절 80주년을 앞두고, 역사적인 고증과 실제 생존자의 증언을 토대로 제작했다는 영화 '난징사진관(Dead to rights)이 개봉을 했다. 나의 싱가포르 지인은 이 영화가 중국의 프로파간다(Propaganda)라고 말했다. 지난 9월 초 홍콩에 홀연히 다녀왔던 주말, 이 영화를 보았는데, 영화적으로도 상당히 담담하게, 극한의 상황 속에서 살아남으려는 사람들의 절절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고 느꼈다. 군인 대 군인의 전투 모습이 아니라, 그 안에서 어떻게든 사랑하는 가족들을 살리려 고군분투했던 친일파(로 위장할 수밖에 없었던) 중국인들과, 자신을 희생한 사람들과, 소신을 지켜 싸운 군인과, 힘없이 스러져간 아이들 그리고 여인들과, 아름답던 도시가 폐허가 된 후의 허탈함을 보여주며 관객들에게 묻는 영화라고 생각한다.
'과연 이런 큰 아픔을 기록하지 않고 잊는 게 후대의 몫인가?'
역사를 잊는 자에게 미래는 없다고 어디선가 들었다. 나는 일본 문화와 홍콩에서 학창 시절 만난 친구들의 영향으로 일본어를 독학하다가 대학에서 전공했고, 졸업 후에는 일본어 통역사로 일했던 적도 있다. 대학에 다닐 때, 내가 모르던 일본의 역사와 사회에 대해 많이 배웠다. 그리고 대학생일 때 방학 동안 일했던 교내 부서 가운데 '한국어 문화교육센터'가 있었는데, 거기서 일본 교환학생들의 방과 후 활동 통역 아르바이트를 했다. 우리는 전쟁 기념관에 갔었고, 거기서 위안부의 역사를 처음 접했다는 한 재일교포 여학생은 흰 수건을 목에 두른 채 한참을 울었다. 그들은 이런 학살과 약탈의 역사를 몰랐다고 했다.
'여명의 눈동자' 이후 몇 편의 항일 드라마와 영화가 있었다. 2012년 KBS 드라마 '각시탈'에는 일본에서의 한류 열풍이미지를 염려한 나머지 많은 남자 배우들이 출연을 고사했다는 이야기도 있다. 아이러니하게도 이러한 드라마들이 일본으로 역수출되며 젊은 세대들이 학교에서 배우지 않았던 '전쟁의 역사'가 알려졌다는 기사도 본 적이 있다. 2018년 드라마 '미스터 선샤인'이 글로벌 OTT 플랫폼인 넷플릭스에 서 발표되었을 때, 아마 전 세계는 알게 되었을 것이다.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릴 수 없다는 것을. 개인적으로는 2017년 즈음 개봉한 '귀향' '눈길' 같은 영화도 아팠지만, 나문희 배우님이 열연하신 '아이캔 스피크'를 보고 펑펑 울었던 기억이 난다.
2021년 일본의 유명 감독 구로사와 기요시는 우리에게도 친숙한 여배우 '아오이 유우'를 캐스팅해, 전쟁 시 731부대의 만행을 고발하려 한 일본인 사업가의 양심을 그린 영화 '스파이의 아내'를 제작하기도 했다. 봇물 터지듯 밝혀지는 2차 세계대전 당시 전쟁이라는 이름 아래 일본이 저지를 만행들 (전쟁 시 인도주의적 대우를 하도록 규정된 제네바 협약을 어기고 전쟁 포로들을 고문/학대/사살하는 등) 그리고 생체 실험, 주권 찬탈, 합법적 윤간에 대해 아시아의 피해국들은 합당한 사과를 받았는가? 나치의 홀로코스트와 생체 실험에서 영감을 얻었다는 일본의 군인들은 아직 생존해 계시는 피해자에게 사과했는가? 731부대를 창설한 군의관은 그 실험 정보를 미국에 팔아넘김으로써 전쟁 재판에 회부되어 사형당하지 않고 성공한 노후를 보냈다고 읽었다. (출처 : https://ko.wikipedia.org/wiki/%EC%9D%B4%EC%8B%9C%EC%9D%B4_%EC%8B%9C%EB%A1%9C) 천인공노할 만 하지 않나.
전쟁 당시 일본이 항복한 이유도 히로시마/나가사키의 핵폭탄이 이유가 아니라, 다음의 타깃은 왕족일 수 있기 때문이었다는 이야기도 있다. 난징 대학살의 주범 마츠이 이와네 일본군 사령관은 전쟁 후 군사 재판에 회부되어 민간인 신분으로 사형당했지만, 그 후임을 대신해 거리의 모든 포로 (민간인 포함)를 사살하라 명한 장본인은 왕족인 아사카 야스히코였다고 한다. 그는 황족이라는 이유로 전범재판에서 처벌받지 않았다. (출처 : https://ko.wikipedia.org/wiki/%EC%95%84%EC%82%AC%EC%B9%B4_%EC%95%BC%EC%8A%A4%ED%9E%88%EC%BD%94)
영화 '난징사진관'은 본업인 사진사인 남편이 갓난쟁이 아들, 그의 아내, 어린 딸과 함께 사진관 안에 은닉해 있다가, 일본군 사진병 이토에게 사진관 직원으로 오인받아 살아남게 된 우편배달부 아청, 그를 돕는 가족을 지키기 위해 친일파(행세를 한) 통역사 왕가, 그의 연인이자 여배우 아화, 그리고 탈영병 1명이 일본군의 눈을 피해 그곳에 머물게 되며 벌어지는 이야기를 다룬다. 이토는 참살 현장을 기록하고 일본군의 전쟁 사기 고취를 위해 본인이 찍은 필름 현상을 맡기려 길상(吉祥) 사진관이라는 곳을 이용하고자 한다. '길상'이라는 뜻은 운수가 좋을 조짐이라는데 역설적으로 슬픈 의미도 지니는 게 이 영화의 아픈 장치다. 살아남기 위해 아청은 거짓으로 본인이 사진 현상을 할 수 있다고 고했고, 이토가 군으로 복귀한 뒤에 집안에 숨어있던 진짜 사진사 주인을 만나 모두가 '살아남을 수 있을' 시간을 벌기 위해 사진 현상을 배우게 된다. 거리마다 학살이 다양한 방법으로 자행될 때마다, 사진을 찍은 필름통은 늘어나게 되고, 사진이라는 매체를 통해 사진관 밖 전쟁의 참상을 접하게 된 7명. 그들은 무엇이 후대를 위한 선택인지, 죽게 된다면 어떻게 선택을 해야 값지고 소신 있는 죽음일지를 고민하게 되는 것이 줄거리이다.
영화에서 가장 감명 깊었던 부분은, 가까스로 구한 난징 탈출이 가능한 통행권을 어린아이에게 양보하고 그 아이를 떠나보내면서, 아버지가 보여주는 사진관 촬영 배경 신이다. 사진관에 가면 있는 배경으로 등장한 중국의 자금성, 만리장성, 우한성 황학루.. 아이의 눈이 초롱초롱 빛나며 자국의 아름다움을 잊지 않겠다고 말하는 모습이었다. 가족은 재회를 약속하며 헤어지고 결국 죽음의 도시를 탈출하여 후대에 사진의 기록을 전하는 이는 누구일까. 어떤 양심의 선택이 인간을 가장 인간답게 하는가. 풍요롭고 평화로운 시대에도 인간들은 서로 경쟁하는데, 죽음과 삶이 교차하는 절체절명의 순간에 서로를 살리고자 했던 마음이 제일 아름답게 느껴지는 영화였다.
안타깝게도 전쟁은 2025년 지금 이 순간에도 세계 어디선가 일어나고 있다. 속절없이 스러져가는 목숨들에 대해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전쟁의 역사를 반복해서는 안 된다. 내가 살고 있는 싱가포르에 상륙한 이 영화에 대해 한 직장인 동료가 말했다. 우리 할머니가 어렸을 때, 일부러 더러운 행색을 하고 얼굴에 검댕을 묻히고 다녔다고. 일본인이라면 질색하신다고. 일본이라는 나라를 무턱대고 미워할 게 아니라, 매체와 기록을 통해 역사에 대한 인식을 바로 잡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독일의 홀로코스트를 따라 학살을 행한 게 일본이었다면, 독일처럼 인정하고 사과하면 안 되는 걸까. 아직 한국에는 위안부 생존자 분들도 계시고, 국가에 귀속되지 않은 친일파 재산들도 많다는 다큐멘터리를 보았는데. 해외에 사는 동안, 아시아의 역사에 더 많은 관심을 가지게 된 시기가 요즘이어서 남겨보는 한밤중의 기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