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극생비 7

해외에서 한식을 먹는다는 것

by 장서율

한식은 고유명사의 영어표기가 참으로 제각각이다. 비빔밥, 김밥 정도야 영어 스펠링이 비슷하고 이제는 알려질 만큼 알려졌다고 해도, 일본의 초밥 (Sushi)처럼 정형화된 고유명사의 정리가 부족하다고 느낄 때가 많다. 감자탕, 곱창전골, 들기름 막국수 같은 음식들의 표현은 어떻게 할 것인지? 최근 히트한 넷플릭스의 애니메이션 케이팝데몬헌터스에서 감독이 말하길, 식상한 한식을 표현하고 싶지 않아서 김밥, 국밥, 깍두기 등을 대두시켰다고 했는데 - 이미 한국에 관심 많은 외국인들은 알만큼 안다. 아니, 현지 한식당 어디에 무슨 메뉴가 맛있는지 다 꿰고 있다. 그래서 나는 그들을 통해 나의 현지 한식 맛집 지도를 완성해 가는 중이다.


13년 전에 처음 싱가포르에 왔을 때는 이렇지 않았다. 내가 처음 방세 들어 살던 집 싱가포르 아저씨는 나에게 자신이 인도네시아에서 일할 때 받은 북한 돈이 있는데 그걸 좀 환전해 줄 수 없냐고 물었을 정도니까, 이 나라 사람들에게 남한과 북한의 차이는 별반 없었던 듯하다. 나는 펄쩍 뛰며 말했다. 그걸 환전할 방도를 알면 나는 간첩 정도로 처벌받을 수 있다고. 그런데 웬걸. 싱가포르는 중립국에 가까워서 북한의 현지 대사관이 버젓이 구글 지도에 나오는 곳이다. 그동안 살면서 어디에서 인가는 분명히 북쪽 동포들을 만났을 수도 있지 싶지만, 일단 업계나 회사에서는 보지 못했다. 그리고 여기에는 코로나 이전에 방콕 등지에 존재했다던 평양냉면집이 없다. 그건 너무 아쉽다.


먹성이 좋고 가리는 게 없는 나이지만, 처음 몇 달은 라드를 쓰는 현지 음식이 기름져서 물갈이를 했고, 과자며 초콜릿을 너무 많이 먹어서 한국에서만큼 운동을 해도 살이 올랐으며 - 나는 여기 오기 전 6개월 정도 권투를 배웠다- 제대로 된 요리를 해서 세끼를 챙겨 먹기에는 주방의 환경이 열악했다. 처음 몇 주는 열심히 야채샐러드 밀프렙도 만들고 했었는데 바퀴벌레와 개미의 습격들에 포기했다. 그리고 처음 부모님이 오셨을 때, 가방 가득 가져다 주신 김치에 감동했던 기억이 난다. 김치 한 통 가진 게 꼭 유세 같았다. 우악스럽게 여기에 적응해 보겠다고 처음 6개월은 한식도 안 먹었던 나다. 8개월 정도는 네이버 뉴스도 보지 않았다. 그리고 초반 적응기가 지나고 나서는 거의 한식만 먹게 되었다. 몇 년쯤 지나 대기업에서 만들어 파는 김치 중에 총각김치가 없다고 동생한테 사정해서 우편으로 받았던 적이 있었다. 그게 집 앞에 도착했을 때의 감격이란. 10년이 지난 지금도 잊히지 않는다.


다행히 지금은 혼자 요리를 해 먹을 환경이 되어서 포트락 파티가 있으면 통 한가득 잡채를 가져가기도 한다



이제, 한국 식당이 밀집해 있는 시내에 가면 한인 슈퍼가 있고, 거기에는 매주 달래 같은 제철 채소도 들어온다. 한인 횟집에 가면 매주 비행기로 횟감을 실어 나른다. 싱가포르에 웬만한 한국의 유명 셰프들 프랜차이즈가 우후죽순 생겼고, 얼마 전에는 20년 전에 광화문에서 일할 때 자주 다니던 메밀국숫집 '미진'도 문을 열었다. 얼마 전에 거기에 다녀왔는데 기분이 참으로 묘했다. 2013년 그 무더운 날로부터 구석에 몇 개 없던 한식당에 가서 비빔밥이나 떡국을 먹으며 감동했던 그 마음이, 이제는 우후죽순 생겨난 한식당으로 인해서 그 생경함은 사라졌다. 그리고 코로나를 지나면서 김치도 담가먹기 시작했으니까 거기에 대한 그리움도 없다. 한식은 이제 현지에 사는 한국인들보다 외국인들이 더 즐겨 찾는 그런 음식이 되었다. 그래서 다행이다 싶다.


한식이 흥행하다 보니 중국이 비빔밥이나 김치를 자기네 본래 음식이라고 선전하는 지경에까지 이르렀다 한다. '흑백요리사' 같은 방송이 있어서 다행이지만, 이런 정치적 차원의 문제는 명확히 '한국의 김밥은 일본의 초밥과 다르다'는 차원의 명징한 성명을 내야 한다고 생각한다. 나는 외국 친구들에게 자주 김밥을 말아주고는 했는데 그걸 보고 Korean Sushi라고 이야기하는 친구들에게 일일이, 초밥은 단촛물이 밑간에 들어가는 거고 김밥은 참기름이랑 깨소금이 밑간에 들어가는 거라고 설명해 왔다. 김밥의 수출량이 폭발적으로 늘면서, 그리고 '케데헌'에도 등장하면서 이제 김밥을 이상한 단어로 부르는 외국인들은 사라졌다. 하지만, 이걸 문화적인 영향으로 풀 것인지, 정치/문화부서에서 풀 것인지에 대해서는 할 말이 많지만 하지 못하겠다. 도대체 중국에서 김치를 자기네 것이라고 우길 때까지, 정부부처에서 월급 많이 받는 분들은 무슨 시정을 하셨는지?


살다 보니 생긴 의문점들이다.



일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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