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메일 속도와 반비례하는 삶
싱가포르에 와서 처음 속했던 부서는 하나의 글로벌 커피체인 클라이언트만 담당했다. 그 고객사의 동남아시아 지부는 나의 유년 시절을 얼마간 보낸 홍콩에 있었다. 나는 홍콩에 있었던 그 고객사 담당자 분과 매주 통화를 했다. 고객사 법인 판매 간 물품 운송 대행 업무 전반을 처리하는 부서여서 고객사와 한국/일본의 마켓을 이어주는 것이 내 주된 업무였는데, 홍콩에서 일을 하는 사람들의 이메일 답변 속도가 얼마나 빠른지 나름 타이핑 속도에 자신 있던 나도 눈이 돌아갈 지경이었다. 어디 가서 일 못한다는 말, 공부 못한다는 말이 제일 수치스러웠던 20대를 지났었기에, 오기가 생겼다. 홍콩, 거기에 한국과 일본 마켓이라니. 왜 이 포지션에 사람이 안 구해졌는지 일을 시작하고 나서 3개월 월 후 정도가 되었을 때, 알 것 같았다. 그때는 수습 기간이 끝나 있었기에, 되돌리기가 어려웠다. 그래서 나는 계속 더 일해 보기로 했다.
첫 해 겨울 즈음, 앉아서 일하는 시간이 길었고 열대 기후에 적응해 나가던 시기여서, 왼쪽 무릎에 물이 차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으나 곧 걷는 것이 불편해지기 시작했다. 그래서 여러 곳을 수소문해 림프 마사지 같은 걸 받으러 다녔다. 매끈하고 하얗던 다리에 실핏줄이 터지는 게 관절마다 보이기 시작했지만 일을 그만둘 수가 없었다. 속이 상했다. 기미가 올라오고, 살이 찌고, 눈이 퀭해질 때까지 일을 하는 게.
한국에 있는 친한 친구에게 보낼 크리스마스를 샀었고, 그녀에게 선물과 함께 카드를 보냈다. 예쁜 카드였는데, 내가 얼마나 정신이 없이 그것들을 챙겼었는지 나중에 그녀가 보낸 핸드폰 사진으로 알게 되었다.
'서율아, 카드 안에 메시지가 하나도 없어. 속지가 있었는데 떨어진 걸까?'
나는 그녀에게 안부를 전하고 크리스마스 인사를 전하는 것에 급급해, 5분 정도 진득하게 앉아서 몇 마디 안부를 적는 것을 잊은 것이다. 그때 처음 내가 살고 있는 삶의 속도가 잠시 무서워졌다. 한국에서도 일 할 만큼 했는데, 여기서의 업무 강도는 점심 먹고 화장실 가는 시간 빼고 정말 '열심히 일해야' 제 때 퇴근할 수 있구나 싶었다. 그래서 점점 점심시간에 밖에 나가는 빈도가 줄고, 같은 책상에 앉아서 아침, 점심, 때로 야근할 때는 저녁까지 해결하는 날이 생겨났다. 하루 종일 눈과 머리와 엉덩이, 그리고 손가락과 목소리를 꺼내어 일을 했다. 그리고 두 번째 겨울에 법인의 물건을 대량 실어야 하는 항구에서 대규모 파업이 일어났다. 물건 수급이 안되면 일본 내 체인점 판매 정책에 이슈가 크게 생길 지경이었다. 3개월 정도였나 매일 야근이 이어졌다. 매일 회사에 나가서 밤 11시에 들어왔다. 다리의 붓기가 심해졌고, 주말에는 도망치듯 일과 멀어지려고 했었다. 그리고 한 헤드헌터와 연락이 닿아 소리소문 없이, 이직이 진행되었다.
나는 지금도 두 번째 회사에 출근하던 첫날, 회사 정문에서 나를 반기던 검은 고양이 한 마리의 눈이 생각난다. 고양이를 키워본 적은 없지만, 나는 고양이를 동경했다. 그리고 묘하게 불안하고, 위로가 된 그 고양이의 등장처럼 이직을 하고 첫 몇 달, 보직을 영업으로 옮긴 덕분에 고된 텃세를 겪었다. 나를 뽑아준 매니저가 정말 마음에 들었었는데 그도 8개월 만에 건강상의 이유로 퇴사 후 좀 더 편한 직종으로 자리를 옮겼다. 미팅 때마다 불특정 다수의 질문들을 받아야 하는 입장이 되어서 한동안은 위정장제 같은 걸 처방받아서 먹기도 했다. 그때의 나는, 참 열심히였다. 모든 것에 지나치게 빠르게 대응하려고 했다. 뒤쳐지는 게 두려웠던 것도 있고, 살아남아 직장에서 자리를 잡는 게 중요했던 시기이니까 당연하다고 느꼈지만, 하루 종일 그렇게 달궈진 쇠처럼 일하다가 집으로 돌아오고 나면. 참을 수 없는 적막이 나를 엄습했다.
그것은 배고픔, 고됨, 외로움과는 전혀 다른 감정이었다. 전장에서 싸우다가 잠시 나무 그늘 아래 들어와서 숨을 고르고 있지만, 머릿속으로는 다음 날 어떻게 싸워야 하는지 고민하는 그런 심정? 혹은, 많은 사람들과 대화를 하다가 갑자기 꿀 먹은 벙어리가 되는 심경? 뭐가 되었든 그 감정은 너무나 생경했다. 때로는 무서웠다. 그 시절의 나를 견디게 한 것은 사랑하는 사람과 잘 살아보고자 하는 희망, 그거 하나였을지도 모르겠다. 그런 의미로 과거의 경험들이 모두 헛 된 것들은 아니었지만, 여전히 이메일 속도와 반 비례하는 나의 저녁의 삶이. 글을 쓰고 책을 읽기 시작하면서 조금씩 색채가 들어간 나의 회색 밤들이 조금은 낯 설 때가 있다. 그런 십 년을 살고 나서야, 이제야 말로 내뱉어보는 그런 감정. 이메일과 반비례하는 삶의 속도. 나는 당당히 멍 때리고 휴식을 취할 권리가 있다. 쉬는 법을 모르면 다음 날 다시 달릴 수가 없다. 삶이란 그렇게 끊임없이 싸워나가야 하는 곳이다. 부단히 일해야 하는 곳이다.
다행인 건 이제 아프지 않은, 내 마음 그거 하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