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면서 어느 구간의 기억이 없는 경험을 해 보셨는지 모르겠다. 살면서 어떤 시간 속의 경험이 너무 고통스러웠을 때, 몸이 '살려고' 그 안의 기억을 지우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결국은 좋은 기억만 남기고 사는 것이 인간이라고. 하지만 나는 마음 편한 현재에서도 부단히 과거 속 어느 지점들의 나쁜 기억을 떠올린다. 종종 아직 거기 덩그러니 서 있는 내가 안쓰럽고 처연하다. 힘들고 지치면 그냥 주저앉아 쉬기라고 해 볼 것을, 그 안에서 왜 그렇게 열심히도 빠져나오려고 애썼는지. 그런 힘들의 작용 때문에 내가 지금 여기에 떠밀려 와 있는 거겠지만, 츠나미 같던 급류 속에서 그냥 가만히 몸을 맡겼으며 어땠을까. 그냥 그런 생각을 해 보는 거다.
어젯밤에 꿈을 꾸었다. 즐거운 저녁을 먹고, 깔깔거리며 화투를 치고, 밥을 너무 많이 먹었다며 아름다운 저녁 길 산책을 하며 크고 둥근달을 본 뒤였다. 내 마음은 편안했고, 현재에 감사했다. 조건 없이 주어지는 선물 같은 순간들에 대해 이것들을 당연하게 받아들이지 않으리라 마음으로 다짐했는지도 모른다. 조용히 남겨진 밤의 시간들이 찾아들면, 외로움을 느낄 새 없이 포근하게 잠드는 밤을 얼마나 꿈꿨는지. 그리고 꿈을 꾸었다. 내가 유일하게 함께 여행을 다닌 남자인 전남편의 꿈을 꾸었다. 나는 그와 싸우고 있었다. 먹는 것에 대해서, 살림에 대해서, 산책에 대해서, 일상의 모든 것에 대해서. 별거를 위해 신혼 짐을 정리할 때 요리사였던 그는 주방 서랍을 열어 자신이 가져온 가재도구들부터 챙겼다. 같이 밥 먹는 시간이 별로 없어 늘 늦은 시간까지 그를 기다렸는데. 그가 아프다고 하면 따슨 밥 차려주고 삼계탕도 끓여주고 했는데. 그는 그게 다 맘에 안 찼었나 보다. 살면서 유일하게 라볶이만 두 번 정도 만들어준 그 사람. 집에 와서 요리는 쳐다보기도 싫다면서 구시렁대었었는데, 그 꿈에서 나는 또 라볶이를 먹고 있었다. 우리는 칼붙이들을 만지작대며 싸웠고 마음속으로 나는 무서움이 느껴져서 그에게서 도망쳐야겠다고 생각했다.
만 3년 상 치르듯이 그만큼의 시간이 지난 일이다. 내 마음에 많은 상처를 준 기억들을 묻어두다가 살만해 지니까 다시 수면 위로 올라오는 것 같다. 이렇게 글로서 애도하고 나면 이제는 그만 떠나 주길, 하고 바라본다. 그래도 꿈에서 나는 집에서 벗어나는 것에 성공해서 어느 버스에 올랐다. 먼 곳으로 달리던 그 버스에서는,
큰 짐가방을 든 나를 보고 시비를 거는 남자들이 있었다. 정신을 차려보니 나처럼 한국어를 하는 외국인은 8명 남짓, 나머지 사람들은 피부색이 다른 외노자같이 보였다. 그들은 마치 인도의 달리는 버스에서 연인과 함께 있었던 여성을 강간해 사망케 만든 무리들처럼, 작은 소리로 소곤대며 버스를 점령할 계획을 세우고 있었다. 내 눈앞에는 남장을 한 듯한 한 명의 여성이 눈에 들어왔고, 그녀는 커다란 쇠 손잡이가 달린 우산을 들고 있었다. 버스가 주유를 위해 들어섰을 때 나는 재빨리 그 우산을 낚아채서 버스에서 내려 반대방향으로 무조건 걷기 시작했다. 비가 내리기 시작하고 반대 방향으로 바람이 몰아치기 시작했지만 나는 우산에 의지해 열심히 걸었다. 그리고 무심코 뒤를 돌아보았다. 총구를 겨눈 외노자들의 우두머리가 외국인들을 겁박하여 일렬로 세우는 중이었다. 나는 그냥 무시하고 걸었다. 꿈속에서의 내 마음이 어땠는지는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멍한 기분으로 아침을 먹고, 비가 오는 창밖을 내려다보고 있다. 사실은 많이 사랑했던 그 사람은, 세상에서 내게 제일 큰 상처를 안겨두고 떠났다. 헤어짐은 두 사람이 동의한 것이지만, 내가 받은 상처에 대해 나는 외면하려고 무던히 애썼다. 외노자로 살려고, 내가 가진 것들을 놓치지 않기 위해서, 커리어가 성공하고 월급이 오르는 걸 보며 자위했다. 술이 없으면 잠들지 못했던 최초의 6개월을 지나서, 갈기갈기 헤진 마음을 어디서부터 추슬러야 할지 모르는 시간들을 지나서, 잘 흐르고 흘러 지금 여기에서 그 시절의 나를 본다. 고난은 사람을 자라게 한다는데, 비 온 뒤에 땅은 더 굳어진다는데. 묻어둔 것들이 새순처럼 솟아오르는 지금 그것들을 잘 다스려, 큰 나무처럼 만들고 싶다는 생각을 해 본다. 이사 온 집 냉장고 위에 좋은 말이 적혀 있었다.
"Life begins at the end of your comfort zone"
내 삶은 온실 속 화초였을까, 아니면 들판 속 잡초였을까. comfort zone에서 벗어나 보려는 노력을 해야 하는가 아니면, 아직 거기에 다다르지 못한 걸까. 내 마음에 벨을 울리는 어구였다면 지금 내게 가장 필요한 것일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