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witnessing my own becoming
편안하고 따뜻한 기억들을 쌓아 올리기
매거진의 제목을 변경해야 할 때가 온 것 같다. 브런치로 치면, 2020년에 시작된 다소 거친 순들을 2021년에는 가지치기하고 거름 주고 다듬는 단계에 이르렀다고 해야 할까. 읽어주시는 구독자님들에게 감사하다. 자주 두서없이 내질렀던 내 마음속 이야기들에 공감해 주시고 대가 없는 응원을 주신 것에 대해 마음속으로 따뜻한 위로가 되었다고 말씀드리고 싶다 그리고, 오늘 제안받은 '행복 통장 쌓기'에 대한 글을 써 보려고 한다.
이전의 나의 기록들을 돌아보면, '나는 이렇게도 힘이 들었어. 하지만 지치지 않고 나아가다 보면 반드시 행복해지는 순간들이 올 거야, 나는 이기고야 말 거야'라는 내용들이 주를 이루었다. 과거의 어느 순간 아팠던 나를 되새김질하는 글 이외에, 지금 느끼는 행복과 편안 감이 막막해서, 익숙지 않아서, 때로는 가족들에 대한 죄책감도 들어서, '나는 이제 괜찮아. 안전하고 행복해. 여유롭고 충만해'라는 글은 쓸 수가 없었다.
'괜찮니?'
라는 내 입버릇은 일본어를 배우기 시작할 때 익힌 '다이죠부?'라는 표현을 한국어로 바꾸어 쓰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스트레스의 역치가 한계에 다다를 때마다, 내가 관심 가는 상대에게 나를 투사해 '괜찮니?'라는 질문을 수도 없이 던졌던 것 같다. 주체적인 이들은 그 질문을 싫어했다. 고마워, 미안해라는 말들을 입에 달고 사는 내 진심 이면에 '괜찮니?'라는 질문을 듣고 싶어 하는 나 자신을 봐주지 못했다. 돌이켜 보면, 내가 착각했던 건 아마도, 내가 나 자신을 돌보지 않아도 내 마음이 진심이라면, 그 대상이 나를 돌봐줄 거야라는 안이함이거나, 혹은 세월이 갈수록, 상처가 쌓일수록 눈덩이처럼 불어난, '나의 바람'이었을 것이다. 내가 원하는 걸 스스로 알지 못하면, 누구도 내 마음을 헤아려 주기 어렵다. 언어라는 도구는 그렇게 갈고닦아서 인간 사이의 원만한 소통을 하기 위해 쓰는 것임을 다시 한 번 깨닫는다.
지금의 나는 평안하고, 여유롭다. 아니, 여유로우려고 노력한다. 안전하다고 느끼는 곳에서, 편안하다고 느끼는 이들과, 함께 살면서 내 마음이 지쳐서 숨겨왔던 목소리들을 들어보려고 한다. 20여 년의 시간들이 머릿속을 헤집고, 마음속을 날아 돌아간다. 그 시간 속에는 외로움과 괴로움을 잊으려고 부단히 노력했던 내가 있다. 성취감이나, 행복감이 느껴질라치면 나는 그것들이 언제 끝날지 모른다는 불안감에, 혹은 건방지다는 이야기를 들을까 봐 충분히 즐기지 못했다. 요가를 시작한 이유는 힘든 동작들을 배우는 과정 가운데, 억지로라도 내 마음의 소리를 찾고자 했던 최소한의 안전장치였던 것 같다.
어제의 두 시간, 5분 명상이 순간 같았고, 땀을 흘리던 모습들이 즐거웠다. 마음속으로는 계속해서 내 심연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전과는 다른 목소리들이 들렸다. 내가 누구인지 꾸준히 고민해 온 덕분에, 좋아하는 것들을 몇 가지 포기하지 않았던 덕분에, 나 자신을 돌아볼 수 있었다. 얼마나 많은 시간이 흘렀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과거로 자꾸 회귀되는 내 마음을 붙잡고 안온한 현재로 자꾸 되돌려놓으려고 한다. 든든하고 안전하고 따뜻한 나 자신이 나무처럼 뿌리내리는 과정을 적어나가고 싶다. 나의 감정들의 실타래를 차근차근 아름답게 풀어나가는 모습들을 적어나가고 싶다.
I am witnessing my own becoming.
고등학생 때부터 좋아했던 싱어송 라이터의 가사이다. 내가 나의 성장에 가장 가까운 목격자가 되어줄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