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5. 어린 왕자를 기다리며
어린 왕자를 읽고 사하라 사막에 가고 싶었다. 사막 마라톤 다큐멘터리를 보고 몽골의 고비사막에 가고 싶었다. 사하라에서 어린 왕자에게 양을 그려주고 있는 나를, 고비사막의 은하수 아래에 서 있는 나를 상상하곤 했다. 낡은 수첩에 적혀있던 수많은 버킷리스트들 중 하나였던 사막여행을 드디어 떠나는 날이었다.
캐나다인 커플과 일본인 두 명 그리고 나. 다섯 명이 한 팀이 되어 사파리 투어를 시작했다. 17세 정도로 보이는 가이드가 여섯 마리의 낙타와 자신보다 더 어려 보이는 낙타몰이꾼 2명과 함께 등장했다. 작고 깡마른 낙타몰이꾼 아이들은 날렵하게 몸을 움직였고 낙타를 능숙하게 잘 다뤘다. 낙타 한 마리에는 짐이 한가득 실려 있었고 관광객 5명은 각자 안내받은 낙타에 올라탔다. 생각보다 너무 어린아이가 내가 탄 낙타를 담당해서 놀랐다.
TV에서 보던 낙타는 순진한 눈을 깜박거리는 온순한 이미지였는데 막상 낙타를 보니 너무 무서웠다. 냄새도 역했고 낙타 혹이 한 개라서 또 놀랬다. 혹 두 개의 낙타만 영상에서 봤기 때문에 혹이 한 개라서 낯설어했다. 온통 편견 덩어리였던 나였다.
내가 너무 낙타를 무서워 하자 몰이꾼 아이가 나를 진정시켰다. 아이는 자신을 ‘라훌’이라고 소개했다. 나의 호들갑이 낙타를 놀라게 한다며 조심하라고 말한 후 내 앞자리에 앉았다. 아이는 너무 마르고 작아서 내 앞에 앉고도 충분한 자리가 남았다.
“몇 살이야?”
“12살”
“학교는 안 가?”
“여기 학교 가는 사람 없어. 난 운이 좋아! 낙타몰이꾼이니깐.”
“안 힘들어?”
“일해서 빵 사야지!”
열악한 환경에 어릴 때부터 일을 해야 했던 라훌은 낙타몰이꾼인 것에 굉장한 자부심을 갖고 있었다. 만약 내가 학교도 못 가고 어릴 때부터 일해야 했다면 아마도 가난을 원망하고 분노했을 텐데 라훌은 현재 자신이 가진 것에 만족하며 작은 것에 감사할 줄 아는 아이였다.
여행하기 전, 공정여행을 하겠다고 마음먹었는데 지금 나는 조금이라도 더 싼 여행상품을 찾았고 나에게 그리 큰돈도 아닌 몇천 원을 아끼려고 흥정을 했다. 내가 깎은 몇천 원은 어쩌면 라훌의 하루 일당이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내가 그를 불쌍히 여겨도 되는 걸까? 그저 나의 편견으로 라훌이 불행할 거라는 막연한 짐작으로 안쓰럽다고 단정 짓는 것이 아닌지 생각이 많아졌다. 나의 잣대로 라훌의 삶을 평가하고 있는 스스로에게 놀랐다. 사람들이 자신들의 잣대로 내게 참견하는 것이 그토록 싫고 버거웠는데 내가 라훌에게 그러고 있었다.
지금 내가 해야 하는 일은 라훌을 있는 그대로 보는 것.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 지금 눈앞의 그에게 충실히 응대하는 것이었다.
낙타는 한없이 사막을 걷고 또 걸었다. 끝없이 이어지는 지평선이 신기했지만 이내 지겨워졌다. 느린 낙타 걸음으로 사막을 아무리 걸어도 목적지에 도착할 것 같지 않았다. 적막 속을 그저 걷다 보니 하늘이 붉은빛으로 물 들기 시작했다. 가이드는 낙타에서 내려 일몰 사진을 찍으라고 했다. 살짝 언덕진 곳에서 일몰을 다 같이 감상했다. 일몰은 예상대로 아름다웠다.
가이드와 낙타몰이꾼은 낙타의 짐을 모두 내리고 모닥불을 피웠다. 그들이 준비한 저녁은 따뜻한 수프와 빵, 바나나 등과 같은 간단한 야외식이 었다. 사막 한가운데 피운 모닥불 주위에 둘러앉아 사파리 투어 일행들과 간단한 인사를 했다. 투어를 시작한 지 4시간이 지나서야 겨우 말 한마디 나눌 수 있었다. 식사를 마무리하고 나니 저 너머를 가리키면서 화장실을 다녀오라고 한다. 다국적의 사람 4명이 엉덩이를 까고 함께 볼일을 보는 아주 웃픈 상황이 전혀 어색하지 않은 곳이 인도였다.
다시 돌아오니 잠자리가 마련되어 있었다. 낭만 가득한 사막 캠핑을 상상했는데 그냥 바닥에 담요 하나 깔고 노숙을 한다고 한다. 사막에 텐트라도 있는 줄 알았던 내가 참 순진하다고 생각했다.
물티슈로 대충 얼굴을 닦은 후 담요를 덮고 바닥에 누웠다. 멍석처럼 딱딱하고 빳빳한 느낌의 담요였다. 붉은빛으로 온통 물들이던 해는 어느새 사라졌고 짙은 어둠이 서서히 차오르더니 바로 코앞에 별 무더기가 쏟아졌다. 도시에서는 볼 수 없는 별천지에 입이 저절로 벌어졌다. 바로 내가 그렸던 사막의 모습이었다.
그 시절 나는 사막 한가운데에서 어린 왕자를 기다렸다. 생떼쥐베리가 만났던 어린 왕자를 나도 만날 수 있기를 기대했다. 순수한 유년시절의 자신과 조우했던 그처럼 나 역시 꿈을 꾸던 순수한 나를 만나고 싶었다.
한껏 작아진 나를 위로해주는 어린왕자를 만날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