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4. 벽돌 두 장?
결국 시외버스를 찾아 아지메르행이 맞는지 몇 번이나 확인 후 버스에 올랐다. 정해진 좌석 따위는 애초에 없었고 바닥에는 두세 개의 큰 구멍이 나 있었다. 버스 지붕과 내부는 이미 많은 사람으로 발 디딜 틈조차 없었지만 여성이란 이유로 운전사 뒷자리에 남은 공간을 챙겨 주었다.
비포장도로를 달리며 엄청난 양의 흙먼지를 만드는 인도 버스는 롤러코스터처럼 출렁거렸고 몇 번을 입구 기둥에 머리를 박아야 했다. 배낭을 잃어버리지 않도록 꼭 껴안은 채 주변을 경계하며 얼른 이 시간이 지나가기를 바라며 잠을 잤다.
“마담, 마담.”
'마담?' 나를 부르는 소리였다. 휴게소에 도착했다며 나를 깨웠다. 까만 눈동자들이 반짝반짝 빛내며 잠든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속으로 ‘마담이라니? 내가 아줌마로 보이나?’ 생각했는데 알고 보니 인도에서는 여성의 존칭어로써 아가씨, 아줌마 상관없이 마담으로 불렀다. 영국 식민지 영향으로 ‘레이디 퍼스트’ 문화가 잘 정착되어 있는 덕에 종종 인도사람들로부터 챙김을 받았다.
휴게소는 그냥 허허벌판이었다. 담벼락 하나 만들어 놓고 화장실이라고 우겼다. ‘인간은 적응의 동물’이라고 하더니 자연스럽게 나도 인도 사람들과 섞여서 줄을 섰다.
황당무계, 기상천외 화장실은 벽돌 두 장이 나란히 놓여 있었고 돌담이 가림막 역할을 하는 것이 다였다. 정화시설이 아닌 하수구만 있었고 볼일 본 후 바로 옆, 양동이에서 물을 한 바가지 떠서 뿌리고 나오는 것이 뒤처리의 끝이었다. 벽돌 두 장에 각각 한 발씩 올려놓고 일을 보다니, 하하하 그래도 담장이 있는 게 어디냐며 위로했다.
‘닥치면 하게 된다.’라는 인생의 진리를 인도 명상 센터가 아닌 벽돌 두 장뿐인 화장실에서 깨달았다. 긴 이동시간의 고단함과 지루함을 잊고 불안을 잠재우는 나의 유일한 방법이 잠이었다. 그래서 애써 잠을 자고 또 잤다. 자다 깨면 잔뜩 신경을 곤두 세우고 ‘어딘가로 팔려 가지 않을까? 내 배낭 도둑맞지 않을까?’ 주변을 살폈다.
운전기사 옆 요금을 받는 이를 계속 쳐다보았다. ‘이곳이 내가 내리는 곳인가요?’라는 눈빛을 보내면 절레절레 고개를 흔들며 기다리라는 손짓을 했다. 무서워 보였던 인도 사람이 이젠 조금은 친숙해졌는지 그들의 관심과 친절이 불편하지만은 않았다.
마을에 도착하니 어느새 해가 졌다. 또 숙소를 구할 생각에 걱정이 앞섰지만, 델리만큼 더럽지 않았고 사람들이 더 이상 무섭지 않았다. 처음 계획한 대로 되지는 않았지만 어찌 됐든 아지메르에 무사히 도착했다. 우여곡절이 많았던 나의 여행이 이제 시작되었다.
인도 힌두교 문화에서는 사람의 용변을 더러운 것이라 여겨 더러운 화장실을 집에 만들지 않았다. 그래서 사람들은 일을 보기 위해서 들판으로 거리로 나가야 했다. 내가 여행했던 옛날과는 달리 도시와 유명관광지의 화장실 상태가 많이 좋아졌지만 시골이나 하층계급의 상황은 지금도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고 한다. 위생의 문제로 집에 화장실을 보급하려는 정부의 끊임없는 노력에도 인식과 금전적인 이유로 잘 시행되지 않고 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