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6. 나의 오아시스
소년아, 저 모든 별들은 너보다 먼저 떠난 사람들이 흘린 눈물이란다. 세상을 알게 된 두려움에 흘린 저 눈물이 이다음에 올 널 인도하고 있는 거지
-마왕 신해철 님의 '해에게서 소년에게' 중에서
방랑자는 어두운 밤하늘의 별빛이 밝혀주는 그 길을 따라 길을 떠나고 그 길 끝에서 방랑자는 새로운 길을 찾게 된다. 이것이 내가 꿈꾸는 환상 속의 사막이었다.
뜻밖에도 사막은 내게 오랜 추억을 건넸다. 나의 소울메이트 완과 함께 했던 수많은 밤이 떠올랐다. 우리는 술만 마시면 학교 운동장을 심장이 터질 것처럼 뛰었다. 우라사와 나오키의 만화 <미스터 키튼>과 <몬스터>에 푹 빠져있던 우리는 만화와 영화 이야기가 마냥 좋았다. 해도 해도 끝나지 않는 많은 이야기들을 나눴고 함께 꿈꾸고 웃었다. 늘 함께 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내가 학교를 그만두면서 우린 조금씩 멀어졌다.
“졸업은 해야지.”
“대학 졸업장 같은 거 필요 없어. 그냥 돌아올 곳을 남겨두면 왠지 비겁한 거 같잖아.”
“너무 쉽게 결정한 거 아니야?”
“마음이 시키는 대로 하려고...”
“나중에 후회할지도 모르잖아!”
“그럼, 그때 후회하지 머!”
나와 완은 사막의 낮과 밤처럼 온도가 달랐다. 불나방처럼 무모하게 불에 뛰어드는 나와는 달리 완은 제대로 현실을 직시하고 미래를 계획했다.
나의 2년간의 도전은 결국 실패로 끝났고 다시 학교로 돌아가야 했다. 하지만, 호기롭게 떠났던 내가 쪼그라진 채로 학교로 돌아가기 싫었고 곧 졸업 하는 완, 그녀 없이 학교생활을 할 자신도 없었다. 나는 꿈도 잃고 친구도 잃었다. 갈 곳이 없어 도망치듯 온 인도 사막에서 완을 몹시 그리워했다.
피웠던 모닥불이 꺼진 새벽쯤 한기에 잠이 깼다. 내 몸은 바들바들 떨렸고 이가 부딪혀 달그락 소리를 냈다. 너무 추워서 나도 모르게 입에서 신음 소리가 새어 나왔다. 나의 로맨틱 사막은 한순간에 사라졌다. 더 이상 밤하늘의 별들이 아름답지 않았고 그리운 추억은 그대로 얼어 버렸다.
사막여행은 일몰과 별을 보던 그 순간 이외에는 온통 고행뿐이다. 사막의 더위를 이겨내야 하고 모래의 따가움도 견뎌야 한다. 씻지 못하는 불편함을 감내하고 밤의 추위와도 싸워야 한다. 기다림과 지겨움을 버텨야 찰나의 아름다움을 만날 수 있는 곳이 사막이다.
얼음장처럼 차가웠던 사막도 해가 뜨니 곧 따뜻해졌다. 사막에서 맞이하는 아침은 전혀 아름답지 않았다. 가는 모래가 입안에서 계속 씹혔고 선크림에 달라붙은 모래 알갱이가 두 뺨을 콕콕 찌르고 있었다. 머리카락은 헝클어져 산발이 되었고 온몸은 찌뿌둥했고 삭신이 쑤셨다. 한 10년은 늙어버린 기분이었다.
당장 숙소에 가서 씻고, 자고 싶은 생각만 들었다. 다시 피운 모닥불에 짜이 한 잔을 라훌이 만들어 주었다. 따뜻한 우유에 홍차와 생강, 설탕, 향신료가 들어간 인도의 짜이는 입 짧은 내게도 맛있었다. 짜이는 내 몸 구석구석으로 빨려 들어가듯 흡수돼 금세 내 기분을 편안하게 진정시켜 주었다. 사막은, 인도는 힘들다 싶으면 또 언제 그랬냐는 듯 사람의 마음을 사르르 녹여버렸다.
좋다가도 힘들고 싫다가도 너무 매력적인 곳, 나도 모르게 어느새 인도에 점점 빠져들고 있었다.
‘내 맘을 들었다 놨다’ 하는 인도에 정말 환장하겠다.
사막에서 붉게 저무는 선셋과 별빛이 가득한 밤하늘을 만났다. 친구와의 추억들, 고요한 새벽에 마신 따뜻한 짜이 한잔, 인생이 건네는 작은 위로들이었고 나의 오아시스였다.
오아시스는 나에게 말한다.
“맞아, 너 잘 가고 있어.”
나는 그 오아시스를 기억하며 다시 걷는다. 또다시 모래 언덕을 넘고, 뜨거운 태양 아래에서도 한 걸음 내딛는다. 언젠가 또 다른 오아시스를 만날 것을 알기에.
그리고 무엇보다,
그 오아시스를 만날 자격이 나에게도 있다는 것을 알기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