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린 길 위의 나

10. 느려도 괜찮다고 말하는 오르차

by 여행꽃



여행은 늘 계획보다 늦게 시작된다. 아니, 어쩌면 진짜 여행은 예기치 못한 순간부터 시작되는 것인지도 모른다.




입 짧은 나는 인도 음식을 먹을 때마다 조심을 했다. 워낙 인도는 위생문제와 관련돼 명성이 자자 했기에 늘 조심했다. 그리고 워낙 까탈입맛이라 보수적인 입맛을 고수하며 익숙하고 모험하지 않아도 되는 만만한 야채 볶음밥과 콜라를 매일 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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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르차(Orchha)에 도착하던 날, 소박하고 조용한 마을 모습에 여유가 생겼을까 처음으로 길거리에서 파는 사모사를 먹게 되었다. 향신료가 섞인 바삭한 식감에 홀려 허겁지겁 먹었고, 그것이 실수였다. 몇 시간 뒤, 배는 아프기 시작했고 열이 올랐다. 아, 이게 소문으로만 듣던 ‘인도 물갈이’ 구나, 싶었다.



계획은 무너졌다. 나는 원래 다음 날 아침에 오르차 포트와 라자람 사원을 돌고, 저녁엔 다시 기차를 타고 카주라호로 향하려 했다. 하지만 현실은, 허름한 팬 선풍기 아래에서 누워 있었다.



며칠간의 강제 휴식은 아이러니하게도 내 여행에서 가장 평화로운 시간이 되었다. 나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새벽에 강물 소리를 들으며 눈을 떴고, 정오에는 마당의 원숭이들을 구경했다. 해 질 무렵, 배가 조금 나아졌을 즈음에는 강가를 따라 천천히 걸었다. 오르차의 유적들은 그렇게 조용히, 천천히 내게 다가왔다.



오르차는 오래된 왕국의 흔적들로 가득했다. 정적 속에서도 마치 누군가의 기억이 공기 중에 머무는 듯했다. 낡은 궁전과 텅 빈 안뜰을 걷다 보면, 과거의 시간들이 조용히 내 어깨 위로 내려앉는 것 같았다.



돌아보면, 사모사는 내게 작은 교훈을 주었다. 낯선 것에 대한 호기심도 좋지만, 몸은 신중하게 대하라는 것. 그리고, 예기치 못한 멈춤이야말로 진짜 여행이 시작되는 순간일지도 모른다는 것.



아프다는 것은 내게 속도를 늦추는 방법이기도 했다.






"느려도 괜찮다"는 말은 내가 세상에 주는 말이지, 내가 나 자신에게 허락하는 말은 아니었다.



누군가가 앞서 나가면, 나도 뛸 준비를 했다. 누가 먼저 해냈다는 소식은 나를 자극했지만, 동시에 짓눌렀다. 나는 늘 비교 속에서 내 속도를 측정했다. 그저 나아가고 있어도, 남보다 늦으면 의미가 없어 보였다. 느림은 곧 뒤처짐이었고, 뒤처짐은 곧 실패처럼 느껴졌다.



내 속도는 언제나 부족했고, 그것은 나를 조급하게 만들었다. 어쩌면 나는 단 한 번도 지금의 속도를 인정해 본 적이 없었던지도 모른다.



이제는 조금 알 것 같다.
속도는 상대적인 개념이라는 것을.



누군가는 빠르게 가는 것처럼 보여도, 사실은 제자리걸음일 수 있고, 누군가는 느릿하게 가는 것 같지만, 결국에는 가장 멀리 나아가는 걸지도 모른다는 것을.


그래서 이제는 나에게도 말해주고 싶다.

느려도 괜찮아.



뒤처진 것이 아니라, 단지 나의 길을 나의 속도로 걷고 있을 뿐이라고. 조급했던 시간들마저도 결국은 나를 여기까지 데려온 한 조각이었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