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평선 너머, 고요의 시간

11. 강렬함과 평온이 공존하는 곳, 카주라호

by 여행꽃


며칠 뒤, 아픈 몸을 추스른 후 다음 여행지인 카주라호(Khajuraho)로 향했다. 먼지가 이는 시골길의 단순한 풍경들이 묘한 편안함을 주었다.



19금 사원으로 알려진 카주라호 사원은 상상초월의 경험이었다. 사원의 외벽 전체에 수많은 미투나상(性愛 조각상)이 조각되어 있는데 낯 뜨거울 정도로 적나라했다. 보수적인 성 문화권에서 자라난 나는 이토록 개방적일 수 있나 놀라워했다.



고대 인도인들이 사원 외벽에 미투나상을 만든 이유는 "욕망(카마)을 극복하고 내면의 신성과 만나기 위해" 사원의 내부로 들어가야 한다는 정신적 여정을 상징하고, 욕망을 이해하고 초월함으로써 해탈(모크샤)에 이를 수 있다는 메시지라고 한다. 그리고 그 당시 문맹률이 높아서 보다 쉽게 삶과 쾌락을 알리기 위해 조각했다고 한다.



사실 이해가 되지 않았다. 어디에서 인간의 삶, 욕망, 고통, 기쁨을 읽을 수 있는지 잘 몰랐다. 그저 쾌락만 좇는 유희의 인간만 보일 뿐이었다. 나는 그저 '민망함'과 '호기심' 사이에서 카메라만 들이댔다.



가이드 북의 설명을 다시 찬찬히 읽어 보았다.


욕망과 사랑, 유희와 의식의 경계가 없이 조화를 이루는 모습들. 단지 에로티시즘으로만 읽히지 않는다. 그곳엔 성(性)이 아니라 생(生)이 있다.


끝내 나는 생(生)을 읽지 못한 채 사원을 나왔다.



카주라호 사원을 본 것으로 나의 여행 일정이 끝났지만 며칠을 더 그곳에서 보냈다. 식당에서 만난 현지인의 추천대로 자전거를 빌려 들판으로 나갔다. 아무것도 없는 공간. 지평선은 먼 하늘과 맞닿아 있었고, 햇빛은 황금빛으로 들녘을 물들이고 있었다. 가도 가도 끝나지 않을 것 같은 지평선은 처음 보는 풍경이었다.



아침이면 산책을 하고 자전거를 탔다. 들판에 앉아 쉬고, 짜이를 마시며 하루를 보냈다. 그리고 그런 하루들이 쌓이면서 마음은 조금씩 풀리고 그늘은 조금씩 걷혔다.



여행은 어디를 가느냐보다, 어떻게 머무느냐의 문제였다. 오르차에서 멈추었고, 카주라호에서 쉬었으며, 나는 그 사이에서 나를 다시 걷게 했다. 진짜 여행은 그렇게, 멈춤 속에서 천천히 시작되었다.





여행은 종종 목적지보다 그 중간에 피어나는 감정이 중요하다고, 이곳에서 배웠다. 강렬했던 미투나상의 경험도, 하릴없이 거닌 모든 시간도 좋았다. 인도 여행 중 가장 좋았던 카주라호, 나를 충만하게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