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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각시 Jun 07. 2017

남성만을 위한 애니메이션, <너의 이름은>

<너의 이름은>은 눈과 귀가 즐거운 영화다. 사실적인 배경 묘사와 입체감을 불어넣는 명암 대비는 영화에 대한 몰입도를 높이기에 충분했다. 특히 혜성이 수놓은 밤하늘을 볼 땐 영상미가 주는 감동에 벅차올랐다. 서사를 이어주는 매개체로 중간 중간 흘러나오는 OST도 애니메이션 효과를 극대화했다. 신카이 마코토 감독의 명성에 절로 고개가 끄덕여졌다.

     
하지만 영화를 보면서 즐겁기만 한 건 아니었다. 시각적‧청각적 재미도 뛰어넘을 만큼 불편한 요소가 있었기 때문이다. 영화는 남학생 타키와 여학생 미츠하의 몸이 우연한 계기로 뒤바뀌며 이야기가 시작된다. 서로의 몸이 바뀌는 상황은 서사를 이끌어가는 주된 소재다. 그런데 이 과정을 그리는 방식이 지극히 전형적이면서도 일본스러웠다.


남성의 시선은 관객의 시선으로

                                                                                                             

감독은 ‘몸의 변화’를 철저히 남성의 시선에서 재현한다. 남성 영혼이 여자의 몸으로 들어갔을 때, 첫 번째 반응은 굴곡진 몸을 응시하는 것이다. 여성의 몸이라는 걸 인지한 뒤에는 호기심에 가득 차 몸의 이곳저곳을 더듬기 시작한다. 

여성 영혼이 남자의 몸으로 들어가는 반대의 경우엔 분명한 차이를 보인다. 호기심은 두려움이 된다. 탄탄한 가슴과 굵은 목소리로 이상하다는 걸 눈치 챈 미츠하는 몸의 변화를 ‘훑어보지’ 않는다. 만지는 것도 차마 조심스러워 소변을 볼 때 당혹스러움을 감추지 못한다. 


영화는 타키가 미츠하의 가슴을 만지는 모습을 지겨울 정도로 반복해서 보여준다. 꿈을 매개로 서로의 몸과 영혼이 연결되는 만큼, 타키와 미츠하는 잠에서 깨어났을 때 변화를 알아차린다. 미츠하가 된 타키는 서로의 몸이 뒤바뀔 때마다 가슴을 주물 거린다. 미츠하의 동생이 언니를 깨우러 방문을 열었을 때 이러한 광경을 목격하며 ‘언니가 미쳤다’는 식의 서사가 몇 번이고 되풀이된다. 

                                                                                                                  

거침없이 변화를 탐닉하는 쪽과 어쩔 줄 몰라 하는 데 급급한 쪽이 성별로 나뉘는 셈이다. 바라보고 만지는 주체는 남성, 보여지고 터치되는 대상은 여성이다. 


영화에서 타키가 처음으로 미츠하의 몸으로 들어간 걸 보여줄 때, 카메라 앵글은 위에서 아래로 비춘다. 타키의 시선에서 잠옷 사이로 보일 듯 말 듯 한 가슴을 내려다본다. 관객은 그 시선 그대로 대상화된 여자의 몸을 ‘바라보고 느낀다.’ 남성의 시선은 관객의 시선이 된다. 여성에 대한 성적 대상화는 자연화된다.
     
남성이 여성의 몸을 응시하고 만지고자 하는 욕망을 당연하게 그리는 건 <너의 이름은>뿐만이 아니다. 일본 애니메이션에선 여학생의 교복 스커트가 바람에 날리는 장면이 자주 등장한다. 이는 이른바 남성 독자들을 위한 ‘서비스 컷’이다. 

애니메이션 속 남성 캐릭터가 여성 캐릭터에게 ‘팬티 좀 보여 달라’며 농담을 건네는 장면이 적지 않게 나오는 걸 보면서 경악을 금치 못했던 기억이 있다. 상대를 당황스럽게 만들고, 예의에 어긋나는 일이 ‘서비스’가 되고, 아무렇지 않은 농담이 된다. <너의 이름은>은 일본스러우면서 동시에 전형적인 남성중심적 시각을 담고 있다.


영화는 현실을 얼마나 반영하나


남성이 여성의 몸이 되었을 때, 현실을 반영한다는 영화가 보여줄 수 있는 게 고작 가슴을 주물럭대는 일밖에 없을까. <오마이뉴스> 시민기자 강은하씨가 쓴 글을 보면 ‘여성이 된다’는 게 무얼 의미하는지 보다 현실적으로 체감할 수 있다.   

                                                                                     

<학교선 여성, 밖에선 남성 이 생활을 끝내기로 했다>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2049369
<가슴이 나오기 시작했다, 난 용감해져야 했다>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2049811
  <'성 전이', 수술 성공…아주 신비로운 경험이었다>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2051246&CMPT_CD=SEARCH  

                                                                                                                

강은하씨는 남성에서 여성으로 성전환 수술을 한 트렌스젠더다. 그(여기서 ‘그’는 she/he가 아닌 사람을 지칭하는 뜻으로 씀)는 ‘어느 트렌스젠더의 여정’이라는 제목으로 총 3회에 걸쳐 쓴 글을 2014년 11월 <오마이뉴스>에 기고했다. 생물학적 남성으로 태어났지만 본인이 겪은 정체성의 혼란, 수술을 결심하게 된 계기 등 수술 전과 후의 경험, 그리고 그가 느낀 감정들이 기사 안에 담겨 있다.


"나를 힘들게 한 것은 지난 삶 동안 겪어본 적 없었던, '여성의 일상'에 숨어 그녀들을 찔러 온 께름칙한 시선들이었다. (중략) 한여름 땡볕에 더워 죽겠어서 얇고 짧은 옷을 입고 돌아다닐 때면, 내 몸을 대놓고 위아래로 훑는 아저씨들의 끈적한 시선이 나를 괴롭혔다. 그렇지 않아도 이제 갓 착용하기 시작한 브래지어의 갑갑한 착용감을 온종일 느끼느라 적잖이 스트레스를 받고 있던 나에게 그 끈적한 시선은 매우 짜증나는 것이었다."

                                                                                                               

2번째 기사 <가슴이 나오기 시작했다, 난 용감해져야 했다>는 여성이 되어가면서 겪는 문제들에 대해 논한다. 담배를 피울 때도, 데이트 비용을 낼 때도, 거리를 걸어 다닐 때도 남성과 여성은 다른 시선에 놓이게 된다고 말한다. 누군가에게는 당연한 일이, 다른 누군가에게는 당연하지 않은 일이 되는 것이다.
     
강은하씨가 쓴 글을 보면 일상 속에서 여성들이 얼마나 많은 통제와 억압을 겪고 있는지 알 수 있다. <너의 이름은>을 비롯한, 여성과 남성의 몸이 바뀌는 흔한 설정에서 간과되고 있는 건 단순히 다양성 차원의 문제가 아니다. 남성중심적 콘텐츠를 끊임없이 재생산하는 동안 부당한 현실을 끌어안고 살아가는 여성의 현실과, 여성의 목소리는 지워질 수밖에 없다. 재현되지 않은 현실은 현실이 아니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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