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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각시 Jun 07. 2017

<미씽> 모성 아닌, 여성 이야기

※ 본 포스팅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돼 있습니다.




모성이 아닌 여성의 이야기였다. <미씽>은 ‘엄마는 위대하다’며 모성을 추앙하거나 뒤틀린 모성을 풍자하는 대신, 한국 사회에서 여성이 겪는 지극히 현실적인 모습을 묘사했다. ‘유괴된 아이를 추적하는 엄마의 이야기’라는 낡은 서사가 조금은 다르게 비쳐진 이유다.

‘사라진 여자’는 누구인가

                                                                                                                  

<미씽>의 부제인 ‘사라진 여자’는 누구를 뜻하는 걸까. 직관적으로 떠오르는 건 지선(엄지원)의 아이를 유괴한 한매(공효진)다. 하지만 ‘사라진’ 건 한매뿐일까. 
     
영화에서 권력을 가진 직업군은 남성으로, 권력과는 거리가 먼 직업군은 여성으로 성별화돼 드러난다. 사건의 실체를 파헤칠 수사권을 쥔 경찰, 법정에서 판결의 당락을 좌우할 발언권을 가진 변호사, 병원에서 누구를 먼저 치료할 것인가에 대한 선택권을 지닌 의사는 모두 남성의 얼굴을 하고 있다. 
     
반면 아이를 양육하고, 환자를 돌보고, 남성에게 성적 서비스를 제공하는 일은 여성 몫이다. 보모로, 간병인으로, 성매매 종사자로 등장하지 않은 여성은, ‘OO의 엄마’ 혹은 ‘며느리’로서 호명될 뿐이다. 

                                                                                                               

권력은 부와 명예만을 의미하는 건 아니다. 권력은 말의 힘이다. 권력을 갖지 못한 여성들은 발언권이 없다. 지선은 아이가 납치된 사실을 안 뒤 경찰과 변호사에게 도움을 청했지만 이들은 지선(여성)의 말을 믿지 않는다. 오히려 양육권 소송에서 유리한 고지를 점하기 위한 쇼에 불과하다는 남편의 말을 믿는다. 

한매의 특성을 알고 있던 병원 간병인의 증언은 경찰 수사 과정에서 주목받지 못한 채 묻힌다. 한매는 딸의 주양육자인데도 병원 수속을 비롯한 딸에 대한 주요 결정권을 갖지 못한다. 여성의 말은 신뢰받지 못하고, 결정 과정에서 배제된다. ‘사라진 여자’는 한매이면서, 한매뿐이 아니다.


"대부분의 여자들은 이중의 전선에서 싸우고 있다. 하나는 무엇이 되었든 문제의 주제에 관한 싸움이 벌어지는 전선이고, 다른 하나는 애초에 말할 권리, 생각할 권리, 사실과 진실을 안다고 인정받을 권리, 가치를 지닐 권리, 인간이 될 권리를 얻기 위해서 싸우는 전선이다."(<남자들은 자꾸 나를 가르치려 든다>, 리베카 솔닛, p.25.)


지선과 한매, 차이의 횡단

                                                                                                               

지선과 한매는 다르다. 엘리트 여성과 결혼이주 여성 간 차이에서 비롯된 사회‧경제적 격차는 선명하다. 외적으로 너무나 달라 보이는 둘의 차이는, 지선이 아이를 되찾기 위해 한매의 삶을 추적하는 과정에서 흐릿해진다. 
   
남편의 외도로 이혼을 선택한 지선이 마주해야 하는 것은 전쟁 같은 삶이었다. 퇴근 후 집에 와서 아이의 얼굴을 보기도 전에 다시 일을 시작해야 했고, ‘돈 주고 애새끼까지 신경 써야 해’와 같은 상사의 폭언을 견뎌야 했다. 일과 양육 사이에서 워킹맘은 늘 죄인이다.
     
한매도 한국에 와서 전쟁 같은 나날을 보내야 했다. 그저 집안의 대를 잇기 위한 도구로 ‘돈을 주고 사온’ 한매는 이른바 사람대접을 받지 못했다. 시어머니와 남편은 한매를 때리고, 강제로 머리카락을 자른다. ‘아이가 생기지 않는다’는 이유로 한국어 교육에 대한 기회를 박탈하고, 후에는 딸을 낳았다는 이유로 아픈 아기를 무작정 엄마에게서 떼어 놓기까지 한다. 

                                                                                                                 

‘좋은 엄마’가 되고 싶었지만 주변 인물들과 환경으로 인해 지선과 한매의 모성은 무참히 짓밟힌다. 생물학적 아빠일 뿐 전혀 아빠로서 역할을 다하지 못하는 남편, 제 자식을 앞세우며 ‘여자를 잘못 들이면 집안이 망한다’는 말을 달고 사는 시어머니, 모성을 추앙하며 실상 모든 책임을 덮어씌우는 사회에서 한매와 지선의 모습이 묘하게 겹친다
     
영화 <서프러제트>에서 여성 참정권을 위해 싸운 여성 동지들이, 엄연한 계층 간 차이 속에서도 가부장제와 남성 권력에 맞서 ‘여성’으로 묶일 수 있던 것처럼, <미씽>이 그린 한국 사회에서 여성의 삶은 인종과 계급적 차이를 횡단한다.


여성 간 연대의 가능성?

                                                                                                                 

한매의 삶은 지선(여성)의 시선으로 영화 안에서 재구성된다. 아픈 딸을 치료하기 위해 남편과 시어머니에게서 도망친 김연(한매)은 병원비를 벌 목적으로 성매매 종사자 ‘목련’이 된다. 불어난 병원비를 감당하지 못하게 된 목련은 ‘몸을 팔고’ 장기를 판다. 계급‧젠더‧인종 여러 층위에서 모두 약자인 한매에게 주어진 다른 선택지는 없었다.


지선이 자신의 딸 다은이를 안고 있는 한매와 마주하게 된 순간, 내뱉은 말은 ‘차라리 내가 죽겠다’는 것이었다. 한매의 삶을 되짚어 가며 그의 마음과 행동을 이해했기에 할 수 있는 말이었다. 연민과 성찰에서 비롯된, 진심어린 것이었다.

                                                                                                              

바다에 몸을 던진 한매를 따라 지선이 뛰어드는 모습과, 지선이 한매에게 손을 내미는 장면이 억지스럽게 보이지 않았던 이유는 관객 또한 지선의 시선에서 한매의 삶을 역추적해가며 이해했기 때문이다. 여기서 모성 간 대결이 아닌 여성 간 연대의 가능성을 엿볼 수 있었다. 가부장제라는 거대한 구조에 맞서 두 손을 맞잡는 여성들의 모습을 상상할 수 있었다.
     
하지만 영화의 엔딩은 이러한 상상을, 상상으로만 그치게 한다. 걸음마를 시작한 다은이가 아무런 위화감 없이 지선에게 안기는 장면은 특히 이질적이었다. 어떤 이유에서건 범죄를 저지른 자는 스스로 목숨을 끊음으로써 처벌을 받고, 선(善)에 위치한 지선은 ‘행복하게 살았답니다’라는 식으로 마무리 되는 건 앞서 영화가 지워온 가해자-피해자의 경계, 엘리트 여성-결혼이주 여성의 차이를 다시금 선명하게 만들었다. 
     
엔딩의 아쉬움은 크지만 브로맨스의 범람 속에서 엄지원과 공효진이라는 여성 투탑을 전면에 내세운, 여성 감독의, 여성 서사를 볼 수 있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반가운 영화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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