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박각시 Feb 05. 2021

좋은 질문이란..뭘까

(책 읽으러 카페 왔다가 책은 안 읽고 지인의 브런치를 보고 생각나서 쓰는 글.)


2018년인가 2019년인가, 실무시험을 볼 때의 일이다. 제시어는 기억이 잘 안 나지만 고민을 하다 나는 강남역 사거리로 달려갔었다. 35미터 관제탑 하늘 위에서, 그리고 바로 밑 땅 아래에서 농성 중인 삼성 해고노동자를 만나기 위해서였다.


당시의 기억은 내게 부끄러움으로 남아 있다. 해고노동자 이재용씨에게 어떤 질문을 했었는지 정확히 기억나지는 않지만, 그에게서 느낀 것은 언론에 대한 불신과 어떠한 권태 속에서도 붙잡을 수밖에 없는 절박함이었다. 같은 질문과 답을 수십 번도 더 기자 앞에서 말했을 그에게, 나는 '다른' 질문도 고민이 담긴 생각도 준비하지 않은 채 시험에 임해야 한다는 급급한 마음으로 똑같은 질문을 물었었다. 그가 어떤 마음으로 나를 대하고 내 질문에 답했을지 헤아리기 어렵다. 이 기억은 당분간 나를 쿡쿡 찌르며 나라는 인간을 싫게 만들었다.


기자가 되고 매체 특성상 이씨와 같은 장기투쟁에 내몰린 노동자를 만나는 일이 많다. 특히 지난해 말과 올초에는 김진숙 지도위원 복직투쟁을 취재하며 그와 대화를 나눌 기회도 짧지만, 있었다. 인터뷰를 준비할 때 그가 수십, 수백 번도 더 답했을 질문을 빠트리지 않을 수 없었다. 왜 복직을 해야 하는지. 복직이 되면 가장 먼저 무엇을 하고 싶은지. 복직이 어떤 의미인지.. 등등.


사실 다른 질문에 대한 욕심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최초 여성 용접공'이란 타이틀이 무색하게 '여성 노동자'로서 정체성은 크게 부각이 되지 않아 왔다(고 생각한다). 그의 투쟁은 분명 여성, 여성 노동자로서 함의하는 바가 있었기에 이에 대해 집중적으로 묻고픈 마음도 컸다.


하지만 인터뷰에 주어진 시간은 고작 10여분에 불과했고, 이 시간 동안은 '같은 질문'을 묻기에도 바빴다. 같은 질문이라는 건 그만큼 꼭 해야 할 질문이라는 의미기도 하기에.


실제로 그는 복직을 왜 해야 하냐는 질문에, 이런 질문은 하도 많이 답해서.. 라며 잠시 웃었다. 전화 인터뷰지만 엄청난 긴장을 했던 터라 혹여 내가 인터뷰이 마음을 상하게 한 것은 아닌지 그 짧은 새 식은땀이 흐르고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그와 통화를 마치고 어떻게 써야 할까를 계속 고민하며 기자의 질문에 대해 다시 생각했다. 꼭 해야만 하는 질문을 안 할 수는 없는 노릇이고. 같은 질문을 하더라도, 다르게 쓸 수는 있지 않을까. 사람마다 느끼는 바가 다른 만큼 같은 질문을 하더라도 같은 기사가 나오는 것은 아니니까. 다만 기자가 질문을 던질 때 두려워하지 않는 태도는 분명 필요하지만(내 경우엔 두려움이 너무 크다), 동시에 인터뷰이가 이 질문을 수십 번도 넘게 받고 답했겠구나 하는 것을 잊지 않고 조심스러워하는 태도도 필요한 것 같다. 두려움 없는 것과 상대를 존중하며 배려하는 태도는 공존이 충분히 가능할 테니까. 이 줄타기를 잘하는 게 좋은 질문을 하는 기자의 준비자세 같은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최근 김 지도위원 도보행진에 동행하며 그에게 다시 질문할 수 있는 기회가 있었다. 전화보다 대면이, 앉아서 할 때보다 경보 수준으로 걸으면서 할 때가 더 어려웠다. 글은 이렇게 다 아는 것처럼 써놨지만 좋은 질문이 무엇인지, 가닿을 수 있는 것인지는 아직 모르겠다. 그냥 취재와 기사를 떠나서 그와, 또 그를 따라 걷는 200여 명의 노동자들과 함께 걷는 시간이 좋았다. 함께 걷는 이들이 연결되는 하나의 장에 함께 할 수 있던 것이 좋았다.


작가의 이전글 세상이 왜 이래, 왜 이렇게 힘들어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