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심히 일한 당신 떠나라. 과거 한 카드사 광고에서 히트를 쳤던 문구다. 실제로 많은 사람들이 열심히 일한 대가로, 보상차원에서 휴가를 떠난다. 현실의 고단함을 잠시나마 피하기 위해, 어떤 영감을 얻기 위해 여행을 떠나는 이들도 있다. 여행은 그 목적이 도피든 쉼이든 공부든 간에 반복되는 일상에서 벗어나려는 욕구에서 비롯된다.
김영하는 <여행의 이유>에서 여행이 ‘나를 알아가는 과정’이라고 말했다.
“기대와는 다른 현실에 실망하고 대신 생각지도 않던 어떤 것을 얻고 (...) 그러다 문득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조금 더 알게 되는 것, 생각해보면 나에게 여행은 언제나 그런 것이었다”(p.51)
실제로 김영하는 중국 푸둥공항에서 추방당한 경험에서 운동권 학생의 좌절과 혼란을 떠올렸다(추방과 멀미). 호텔에서의 환대를 유독 반기는 이유를 유년시절 겪은 잦은 이주에서 찾기도 했다(상처를 몽땅 흡수한 물건들로부터 달아나기). 낯선 곳에서 맞닥뜨리는 새로움들이 자기 몸에 축적된 경험과 기억들을 꺼내놓게 하고, 이를 되새기게 만들어, 내가 어떤 사람인지에 대한 이해로 이어지는 셈이다.
또한 여행 도중에 무수히 마주하는 타인들과 ‘환대와 신뢰의 순환’을 경험하며 나라는 존재에 대한 이해를 넓히기도 한다. 여행지에서 ‘나’는 개별성을 잃은 아무도 아닌 존재(nobody)라는 것을 새삼 느끼게 되고, ‘나’의 정체성은 다른 사람의 인정을 거쳐야만 안정적으로 유지된다는 사실을 알게 되기 때문이다.
“철학자 가브리엘 마르셀은 인류를 호모 비아토르, 여행하는 인간으로 정의하기도 했다. 인간은 끝없이 이동해왔고 그런 본능은 우리 몸에 새겨져 있다”(p.87)
김영하가 말했듯 “여행은 일상의 부재”다. 낯섦 속에 내던져지는 경험을 겪고 나면 일상으로 복귀했을 때 익숙했던 것들도 문득 새로워지고, 전에 느끼지 못했던 감각들도 되살아난다. 반복되는 일상에서 벗어나려는 욕구는 곧 나를 알기 위한 욕망이다. 그래서 우린 시간과 돈을 들여 끊임없이 여행을 떠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