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0자 리뷰 03]
폭염은 재난이 됐다. 28~30도가 선선하게 느껴질 만큼 지난해 여름은 지독히 더웠다. 에어컨이 더 이상 사치재가 아닌 필수재란 말에, 절로 고개가 끄덕여지는 계절이었다.
95년 미 시카고시는 지난해 한국의 여름만큼이나, 아니 그 이상으로 더웠다. 온도는 41도를 찍고 체감온도는 52도에 달했다. 예기치 못한 기상으로 사회는 혼란에 빠졌다. 전력수요가 급증하며 곳곳에서 정전사태가 벌어졌고, 더위를 피하러 거리로 나온 이들이 소화전 뚜껑을 열고 물줄기에 몸을 적시기도 했다.
재해에 가까운 더위에 사람들이 속수무책으로 아프고 죽었다. 7일 사이 485명이 폭염으로 사망했다.
저자 에릭 클라이넨버그는 이 죽음들에 대해 질문을 던진다. 짧은 기간 이렇게나 많은 사람이 죽은 이유를 그저 '기상학적 사건'에 의한 것이라고 볼 수 있느냐고 말이다. 실제로 죽은 이들에겐 공통점이 있었다. 그들은 가난하고, 늙고, 사회적 유대관계가 없었다. 같은 지역에 살아도 가난한 이보다 부유한 이가, 노인보다 젊은 세대가, 가족들과의 왕래가 꾸준히 있어온 경우가 '기상이변'을 잘 견뎌냈다. 저자가 시카고 폭염을 "사회적으로 조직화된 재난"이라 명명한 이유다.
책은 취약계층이 왜 자연재해, 기상이변에 더 취약할 수밖에 없는지 데이터를 통해 증명해낸다. 뿐만 아니라 재난에 대처하는 정부의 태도, 사건을 보도하는 언론의 자세에 대해서도 다룬다. 이 파트를 읽을 땐 '자연스레' 세월호 사건이 연상됐다. 정부의 총체적 무능과, 본질보다 단편적 현상에만 집중하는 무책임한 언론 보도는 사회적 재난에서 빠지지 않는 문제인듯하다.
99년의 시카고는 95년만큼 더웠지만 사망자는 95년에 비해 4분의 1로 줄었다. 95년 사건을 기억해 대응체계를 마련해둔 덕이다. 올여름은 다행히도 지난해만큼 덥지 않았지만 폭염은 내년, 내후년에 더 지독하게 돌아올지도 모른다. 이 반복될 재난에 우리 사회는, 개개인은 무엇을 해야 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