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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현 Oct 15. 2021

향수의 향수_조 말론 레드 로즈

존 윌리엄 워터하우스, 나의 달콤한 장미 

 장미는 아주 덧없어서 아름답다. 그렇지 않은가? 장미가 떨어지는 모양마저도 나는 사랑한다. 꽃잎이 겉에서부터 말라가며 오그라들다가 툭, 하고 떨어지는 그 모습들을 바라보고 있으면 슬프면서도 언젠가 다시 돌아올 그 계절을 기다리고야 만다. 장미라는 꽃의 속성이 으레 그렇듯이 빠르게 사라지지만 그 향기는 영원히 남는다. 그렇게 장미를 사랑하니 자연스레 그런 향수들을 사 모으게 되었다. 조 말론 레드 로즈는 내가 성인이 되고 난 뒤, 장미를 좋아한다는 것을 깨닫고 난 다음 처음으로 구입한 니치 향수였다. 


장미를 사랑하게 된다는 것을 알게 된 계기는 부끄럽지만 한 연극을 보고 난 이후였다. 다른 시리즈에서 꾸준히 언급한 연극 <알앤제이> 의 한 캐릭터를 사랑하게 되자 그를 구성하고 있는 모든 것이 장미를 닮았다는 것을 깨달았다. 조 말론 레드 로즈의 향기는 사실 어떻게 보면 '장미 향수 중에서는 가장 특색이 없고 가볍다' 는 평가를 받을 수도 있을 정도로 플로럴하고, 달콤하다. 


장미의 이름이 꼭 장미일 필요는 없지만, 어린 시절의 나는 장미라는 이름이 매우 촌스럽게 느껴져 장미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던 것도 있다. 지금에 와서는 새로운 장미에 대한 전이가 일어나, 이윽고 장미의 이름과 그것의 본질이라 일컬어지는 것들을 분유하는 모든 것들을 사랑하게 되었다. 조 말론의 레드 로즈는 그런 의미에서 가장 '사랑스러운' 장미 향이라고 할 수도 있을 것 같다. 여리고 보드라운 장미의 잎사귀처럼 말이다. 하지만 장미 향수를 좋아하는 사람들은 짙은 장미 향을 좋아하기도 하고, 혹은 더 달콤하고 진득한 향을 좋아하기도 한다. 이렇듯 사람마다 장미에 대한 사랑의 방식은 제각기 다르다. 


탑노트 : 레몬, 민트
미들 노트 : 불가리안 로즈, 바이올렛 잎
베이스 노트 : 허니컴


조말론의 레드 로즈 노트는 다음과 같다. 레몬과 민트의 탑노트는 거의 나지 않고, 불가리안 로즈의 향기가 진하게 나면서 잔향은 허니컴(벌집)이 남는다. 처음에는 머스크인가? 싶었는데 짙고, 종종 코가 피로한 머스크의 단점 대신 달콤한 잔향을 남기기 위해 허니컴을 선택한 조말론의 향기는 지속력이 오래지 않을 지언정 마음에 든다. 장미에도 꿀은 있기에. 그 사실은 종종 우리에게 위안을 준다. 덧없는 장미처럼 향기도 사라지지만, 결국 우리가 장미를 사랑하고야 마는 이유는 각자의 가슴 속에 저마다의 장미가 있기 때문 아닌가. 


거트루드 스타인의 유명한 시 구절 Rose is a rose is a rose. 는 장미에게 그 자체 본연의 이름을 돌려주기 위한 시도였다고 일컬어지지만, 나는 어떤 객체를 기억하고 사랑하는 과정에서 사람의 마음에 있는 객체들은 모두 저마다의 방식으로 향유되어 달라진다고 믿는 사람이다. 그렇기에 세상에는 완벽한 진리라는 것은 어쩌면 없을 지도 모른다. 결국 중요한 것은 우리가 무엇을 어떻게 사랑하느냐의 방식이다.그 무엇도 부정할 수 없는 견고한 본체로서의 물질이 있다면 그건 아무도 그것을 사랑하지 않기 때문에 가능한 일일 것이다. 적어도 내게는 그렇다. 


장미에 얽힌 모든 사회적, 일상적 통념을 벗어 던지고 있는 그대로의 장미를 들여다보라. 당신에게 장미는 어떤 존재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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