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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현 Mar 15. 2022

한 여자의 일생_ 재;시작

첫 번째 이야기 : 외할머니 (1)

    

PHOTO BY 정현 


 *서문

이 기록은 나의 외할머니, 친할머니, 엄마의 인생을 톺아갈 예정이다. 내가 사랑해 마지 않는, 그러면서도 종종 밉기도 했던 그녀들에게, 나를 만들어준 그녀들에게 이 모자란 글을 바친다. 그리고 나와 마찬가지로 그녀들이 종종 미우면서도, 지겹도록 싸우면서도, 결국 그녀들을 생각하면 눈물이 터지고 마는 여자들에게 위안이 되기를 바란다.      


“할매 생? 내 생도 억수로 파란만장했데이.”     


그의 고된 삶을 증명하는 깊은 주름과 달리 활짝 웃으며 해탈한 듯이 말하는 내 앞의 이 사람은 김영연, 나의 외할머니다. 내 머리카락을 아주 자연스럽게 쓰다듬으면서, 왜 이렇게 여볐노?(*야위었다의 경상도 방언), 서울서 고생을 마이 했는갑다. 하고 돌아온 나를 품에 안아주는 그녀는 나의 돌아갈 곳 중 하나였으며, 나를 출발케 해준 사람 중 하나였다. 내가 서울에 있는 대학에 합격했다고 했을 때, 마치 서울대에 붙은 것처럼 기뻐하던 사람. 늘 그녀에게 언젠가 잘 되면 보답해야지, 나의 가족을 잘 돌보아야지, 하는 마음은 숙제처럼 어느 한 켠에 남아 있었다.     


어느 날 동생에게 전화가 왔다. 엄마가 외할머니랑 싸워서 기분이 안 좋대. 싸운 이유는 그녀의 생일, 엄마가 전화를 하지 않았다는 이유였다. 그러나 그것만으로 싸운 것은 아닐 터였다. 나는 그 전화를 끊고 잠시 생각에 잠겼다. 나와 엄마의 사이에 해소되지 않은 골이 있는 것처럼, 그녀와 엄마 사이에도 어떤 강이 흐르고 있을 것이다. 태어나서 가장 가까운 여자, 그런데 그 여자들에 대해서 나는 아무것도 모르고 있다는 것을 깨닫고 나는 짐을 꾸렸다. 그 여자들에 대해서 나는 알아야 할 필요가 있었다.   

   

나는 종종 가족이 족쇄 같다고 느낀 적이 있다. 늘 그들을 책임져야 할 것 같은 환상에 시달렸기 때문이다. 그들에게 늘 짐을 지운 것 같은 죄책감에 몸서리치며, 내가 누워 있는 이 집의 따스함도 그들의 고혈을 쥐어짜 만든 것 같은 마음에 쉽게 잠들지 못했던 밤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그녀가 어떻게 살았고, 무슨 생각을 했고, 어떤 세상을 살아왔는지 알아야 했다. 우리는 왜 자꾸 서로를 미워하면서 다시 사랑한다고 붙들고 울고야 마는지는 그녀들의 인생에 달려 있는 것 같았고, 그것을 알아야 어느 쪽으로든 한 걸음 나갈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녀는 그 시대 치고는 꽤 큰 키에, 지금도 꼿꼿한 허리로 일을 하러 나가곤 한다. 코로나 이전에는 온갖 계모임에 참석하며 여행을 다녔고, 노래도 춤도 곧잘 추는 흥 많은 여자. 나는 그것을 제외하고는 그녀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기 때문에, 사실상 완벽히 타인을 인터뷰하는 느낌으로 그녀의 앞에 앉았다. 서울말에 익숙해졌다고 생각했는데, 그녀의 앞에 앉으면 자연스럽게 사투리가 나왔다. 꼭 잊어버린 옛날의 말을 사용하는 것 같았다. 나는 그 말들이 내가 하는 것인지, 남이 하는 것인지 낯설었다.      


그녀는 부끄럽다는 듯 웃다가, 꼭 남의 이야기를 하듯이 말문을 터놓았다.     


영연 : 태어나기는 경주시 광명2리 골안동. 43년하고 2월 18일. 골안동은 빼라. 그냥 광명 2리라 캐도 된다. (그녀는 광명 2리-를 광맹2리. 라고 발음했고 나는 그 울림이 좋았다.)

클 때는, 집에서 너무 어려워서. 열한 살에 아화 이모집에서 7-8년 살았다.


 : 이모 집에서 키워주신 거야?


영연 : 어언제.(*아니라는 뜻의 경상도 방언) 이종 동생들 키워줬제. 살림을 해줬는데 그 집이 완전히 부자가 되었다. 19살 되어서 돌아왔다. 시집 갈 때도 됐고야. 보살님이 우리 어마이를 보시더니만 그 딸이 복인데 그 딸을 와 남의 집에 갔다 놨노, 하고 책망을 해서 다시 데려왔다. 


 : 그럼 할배랑은 열 아홉 살에 바로 결혼했어?


영연 : 2년 있다가 스물 한 살에 결혼했지. 선을 봤는데, 외할아버지가 영천서 친척집에 놀러왔다. 스물 일곱이었지. 할매는 그때 스물 한 살이었고, 논으로 영천서 단마지기를 모량에다 사가 놨다.  


 : 할배 어땠어? 좋았어?


영연 : 억수로 좋았지. 키도 크고 인물이 좋았다. 할매는 논 단마지기 사놓은 거 보고 결혼했다. 가 보니까네 무슨 산골짜기에 살드라. 느그 할배는 그때 고등학교도 나왔고, 삼청고등학교. 글씨도 억수로 잘 썼고, 학생 때는 육상부였다. 일도 야무지게 잘 했고. 


 : 그래도 좋은 데 시집 갔네.


영연 : 시집 갔더니 아부지는 돌아가셨고, 집 안에 3년상 한다고 상을 차려놨더라. 9월에 시집가가 시어마시가 편찮아서 힘들었다.  시집 가자마자 다음 해 3월에 시어마시 돌아가시고 내도 참 힘들었데이. 혼백 때문에 밥을 두 그릇씩 일 년 내내 차렸다. 할매 동서는 영천서 살고잡다 캤는데, 할아버지가 아직 어린 조카 데리고 어예 나가냐고 겨서 나와 살았다. 같이 나왔으면 할아버지가 안 돌아가셨을라나 모르겠다. 방에 나오면 못이 커다란 게 있었다. 공부를 못해서 그게 너무 속상했다. 신랑은 좋은 걸 만났는데 집이 별로였다. 


 : 그럼 할배랑 그렇게 해서 시골에서 나와서 살았구나.


영연 : 느그 할배가 부산에 가가 공장에 취직을 했다. 부산에서 7년 살았다. 큰이모를 모량, 작은이모는 골안에서, 느그 엄마를 부산에서 낳았지. 말표 비누 회사에서 창고로 지어서 영업직 소장으로 있었다. 나중에 대전 지점으로 옮겼는데 3년 살고 할배 돌아가셨잖아. 서른 일곱에 갔지.  


 : 할매랑 11년밖에 못 살았네.


영연 : 할매가 어예 살았겠노? 딸자식 셋이랑 배 안에 있는 자식이랑...  할아버지가 대전에 집을 지으려고 사놓은 땅으로 가게를 차리려고 했었다. 말표 비누에서 나온 잡화도 팔고 그러려고 했는데 가버렸다. 그 땅을 팔아서 나온 돈으로 어떻게 살았다.  


 : 왜 갑자기 돌아가신 거야? 그건 알아. 할매가 할배한테 소 팔아 오라고 소 줬더니 술 먹고 들어온 거. 술 많이 먹어서 갔다고 할매가 그랬잖아.


영연 : 그 소 판 것도 아니다. 나무에다 아무데나 매놓고 술 퍼마시고 들어왔다. (우리는 이 때 한참 웃었다. 그것은 우리 외가의 오래된 보물같은 이야기였다. 몇십 년을 오래도록 회자되는 옛이야기는 분명 이런 식으로 시작되었으리라.)


그러다 그녀는 잠시 말을 멈췄다. 목이 메는 듯 했다. 말문이 막힌다고 했다.  


영연 : 할아버지가 할머니 외가에 초상이 났는데, 내가 임신을 해가지고(*막내 외삼촌) 대신 갔다. 7월에 초상 치러 가가 아마 친척들을 다 그때 처음 봤을 거다. 내 가지 말라고 했는데, 그래도 사위라고 간다 하더라. 숙모들하고 초상집에 가가 밤새도록 염병할 술을 얼마나 처묵고 얼마나 놀았는지, 사위들도 느그 할배밖에 없었으니까. 거기서 자고 초상 치고 나서 그때 와서부터 몸이 아파 누웠다. 넉 달만에 돌아가셨다. 11월 22일날 아파가 갔다. 내 사연 이야기를 하려니까 입담이 없어서 못하겠다. 그마이 아들, 아들 하더니 아들 얼굴도 못 보고... 느그 엄마 노미라고 부른 것도 할배였다. 


노미는 엄마를 부르는 또 다른 호칭이었다. 셋째딸이었던 엄마에게, 다음 자식은 아들이길 바라며 놈아, 놈아, 하고 부르던 것이 그대로 굳어 노미가 된 엄마의 또 다른 이름. 그것은 누구도 아닌 외할아버지에게서 나온 것이었으며, 그의 죽음이 외할머니의 삶에 스며들어 그의 자식들에게까지 영향을 미치고 있음을 나는 체감했다. 그녀의 손등을 뒤덮은 주름과 습진의 자국들이 괜히 나온 것이 아닐 것이다. 나는 그녀의 삶에 대해서 더 물으려고 하던 도중, 갑작스럽게 온 전화에 잠시 인터뷰를 멈추었다. 그녀는 또 내 자랑뿐이었다. 우리 손녀, 손녀가 경주에 왔다고. 그 오랜 시간동안 그녀가 무엇을, 어떤 것을 좋아하는지 그 누구도 물어봐주지 않았다. 나는 이 전화가 끝나면 그녀에게 꼭 그녀가 좋아하는 것과 싫어하는 것을 물어보리라 결심했다. 그녀의 인생에서 가장 빛나는 조각들이 무엇이었는지 물어보겠다고. 그녀가 내가 온다는 말에 급히 데운 찐 붕어빵을 입에 밀어넣으며, 나는 다음 인터뷰를 준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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