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 별 일 없이 살고 있습니다. 어느덧, 별 일 없이 살아간다는 게 얼마나 행복하고 감사한 일인지 알아버린 나이가 되었네요. 아니면, 별 일들을 겪으면서 그렇게 됐는지는 모르겠습니다.
'결과'만 놓고 말하면, 이혼 위기를 극복하고 결혼생활을 유지하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협의이혼 확인서를 받아온 후, 구청에 이혼 신고를 하지 않은 채 3개월이 흘러, 자동으로 협의이혼 확인서는 효력을 잃었습니다.
그렇지만, 이혼을 하지 않고 결혼생활을 유지하고 있어 '잘' 살고 있다는 뜻은 아닙니다. 이혼을 했더라도, 잘 살고 있었을 테니까요. 누군가에게 이혼은 좋은 선택일 수 있고, 반드시 결혼생활을 유지한다고 해서 해피 엔딩이라는 법도 없습니다. 이혼이 결혼의 실패라고 단정 지을 수도 없습니다.
이혼을 극복하는 과정에서 느낀 것 중 하나는, '나는 이혼을 해도, 이혼을 하지 않더라도 잘 살아갈 수 있는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여전히, 남편이 숙려기간 끝나기 직전에 사과를 해 온 것은 아직도 얼떨떨합니다. 여전히 어떤 것이 남편의 마음을 그렇게까지 정반대로 움직였는지는 다 알 수 없는 일입니다. 그렇지만, 이유를 다 헤아릴 수 없는 일은 뒤로 한 채, 현재를 살아가고 있습니다.
1년 365일이라면, 365일 내내 좋은 일만 일어날 수는 없겠죠. 심지어 하루 24시간 안에도, 즐거운 일, 당황스러운 일, 고마운 일, 화나는 일, 여러 가지가 일어나니까요. 결혼생활도 같은 선상에 놓고, 그렇게 보내고 있습니다. 서로의 신뢰를 깨는 일이라던가, 아니면 누구 한 명을 파괴하는 일을 벌인다던가 하는 게 아니라면, 말 그대로 희로애락을 함께 보내면서요.
지금 와서 돌아보니, 제가 가장 힘들었을 때 사주를 봐준 스님이 떠오릅니다. 결혼은 현대시대에 와서 사람들이 만든 제도일 뿐, 명리학에서는 결혼이라는 개념이 없고, 인연이 만났다가, 그 인연이 끊어지는 것의 반복이라고 했던 말이 달리 보입니다.
남편과 저는 이미 작년 가을, '소 닭 보듯, 닭 소 보듯'하는 관계가 되어 이미 인연이 끊어지고도 남음이 있었던 것이 사실입니다. 그리고 우리의 인연이 끝났다는 것을 받아들인 것이 올해 봄이었던 것 같습니다. 가정법원에 서류를 제출하고 숙려기간을 보내며 새로운 출발을 준비하고 있었으니까요.
그리고 최근 새로운 집으로 우리는 함께 이사를 했습니다. 각자 살 집을 알아보고, 가계약까지 했던 시점에, 그런 것들을 다 무르고 말이죠. 이혼 위기를 지나고 보니, 새로운 집에서 새로운 사람과, 새로운 인연을 시작한 기분입니다. 또 미래에는 어떤 일들이 벌어질지 모르지만, 우선 오늘은 이렇게 살아가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