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화가 걸려왔다.
'오, 해영이가 웬일이래?'
핸드폰에 뜬 이름은 오랜만에 보는 친구 이름이었다.
"웬일이야~"
"목소리 듣고 싶어서 전화했지."
"잘했다, 잘했어~"
"나 육아휴직 끝나고, 오늘 첫 출근 했잖아. 진짜 쉽지 않다, 쉽지 않아."
친구는 결혼하고 곧이어 임신과 출산을 해, 딸이 최근 만 1살이 되었다. 친구가 만삭이었을 때 마지막으로 만났었으니까, 벌써 1년이 더 흘렀다. 그동안 연락은 간간이 했지만, 친구는 육아하느라, 나는 다이나믹한 결혼생활을 보내느라 정신이 없었다.
근황 토크를 나누다가, 친구가 물었다.
"남편 하고는 잘 지내?"
"응, 잘 지내지. 남편은 왜?"
"아니, 예전에 우리 만났을 때, 네가 남편하고 생활패턴이나 생활할 때 사소한 것들이 달라서 맞춰가는 중이라고 했던 말이 괜히 떠오르더라."
"내가 그런 말도 했었나?"
당시, 남편하고 생활습관이 달라서 부딪히곤 했었고, 친구한테는 가볍게 이야기하고 지나갔던 것 같은데, 친구는 그 말이 생각이 났었나 보다.
알고 보니, 친구는 출산하고 아이의 일에 간섭하는 시어머니로 인해, 고부갈등을 겪은 데다가, 출산 후 호르몬 변화로 감정기복도 오지, 갓난아기 키우며 밤에 잠도 제대로 못 자는 좀비생활로 인해 더 예민해지지, 힘든 시간을 보냈다고 했다. 그래도 지금은, 남편이 친구의 힘듦을 충분히 이해하고 시어머니 사이에서 중간 역할을 잘 한 덕에 한숨 돌린 듯했다.
그래서 나 역시 그동안 있었던 일을 친구에게 털어놓았다. 결혼생활에 위기가 있었는데, 지금은 극복해나가고 있다고.
"잘 극복해가고 있다니 다행이다. 그러면 남편하고의 관계가 신혼 때보다 지금이 더 좋은 거야?"
"응, 맞아. 신혼 때보다 지금이 훨씬 좋지."
우리는 이런저런 대화를 나누다가, 친구가 이런 말을 했다.
"나 같으면 나에게 그런 일을 한 남편 하고는 다시 못 살 것 같은데 정말 신기하고 대단하다. 나는 무조건 이혼할 것 같아."
친구는 이혼을 통보하고 온갖 상처의 말을 퍼부었던 사람에게, 다시 감정이 생기고 신뢰가 생긴다는 것이 신기하다고 했다.
사실, 친구에게 이 말을 들었을 때, 기분이 좋지는 않았다. 그러다 문득, 나의 옛날을 떠올려 보니, 친구가 하는 말이 무슨 말인지는 충분히 이해했다.
나의 친언니는 결혼 10년 차 이다. 조카 둘을 낳아 키우며, 건강하고 끈끈한 가정을 꾸려 잘 살고 있다. 그러나 언니도 신혼 초에는 크고 작은 갈등을 겪었다고 했는데, 이는 사실 몇 년 전에서야 알게 된 사실이다. 그전까지 언니는 형부와의 충돌에 대해 이야기한 적이 없다.
몇 년 전, 이런 이야기를 들었을 때, 겉으로 표현하지는 않았지만, 속으로는 나의 친구와 비슷한 생각을 했다. '형부가 그런 말을 하고, 그런 일을 했다니! 나 같으면 그런 남편 하고는 못 살고, 이혼했을 것 같은데.'
그런데 시간이 지나고 나니, 이제는 언니의 마음을 좀 더 이해한다.
항상 그러리라는 보장은 없지만, 진심으로 사과하면 용서가 되기도, 용서를 받기도 하고, 최선을 다해 지속적으로 노력하면, 닫혔던 마음이 열리기도 한다. 그리고, 우리는 전문가의 상담이라는 방법을 병행했는데, 좋은 방법을 선택해서, 위기를 잘 극복하면, 비 온 뒤 땅이 굳는 것처럼 더 단단해지기도 한다.
물론, 내가 평생 잘 살 거라고 단정 짓는 것은 아니다. 또 언제, 나에게 위기가 찾아올지는 아무도 모를 일이다. 그렇지만, 현재는, 이렇게 극복하고, 노력하며 살아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