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들과 카페에서 수다를 떨고 있는데 심장박동수가 미친듯이 올라간다. 실제로 올라가는 건지, 아니면 심장박동이 빨라지는 느낌만 나는건지 분간은 안된다. 그런데 겉으로는 티가 안난다.
테이블 아래, 초당 5회 정도의 빠르기로 다리를 떨고 있다. 손가락 끝이라도 만지막 거리고 싶고, 갑자기 숨이 가빠져 겉으로 티가 날 것 같고, 가슴 속에 무언가가 꽉 차서 위로 터져버릴 것 같은 기분이다. 분명 심장은 터질 것 같이 빠르게 뛰는데 겉에 드러나는 얼굴은 웃고 있다. 친구들의 말에 맞장구도 치고 대화를 이어나간다. (과거의 그 순간을 떠올리며 글을 쓰니, 다시 불안장애가 올라온다. 역시 불안장애는 뇌의 농락이다.)
출근 길, 정류장에 정차할 때마다 전철은 칸마다 수많은 사람들을 태운다. 그러다 갑자기 숨이 가빠온다.
눈을 감고 숨을 들이마신다. 내쉬고, 다시 크게 들이마시고 내쉬고, 반복한다. 가끔은 그래도 진정이 안된다.
'두 정거장만 더 버티자. 그럼 회사 도착이니까. 지금 내려서 숨을 돌리고 다음 전철을 타면 회사에 늦을지도 몰라.'
일단 버티기. 그러면 그 순간도 무사히 지나간다.
당시 마침 코로나 백신 2차 접종까지 마친 상태였는데, 헬스장에서 운동을 하다가 토할 것 같은 기분이 들고 숨이 잘 안쉬어져서, 건강상의 문제인가 의심했다.
아빠는 심장비대증이고, 남동생은 폐렴을 겪은 적이 있으니, 엄마는 이참에 검사를 해봐도 좋겠다고 했다.
"요즘 심장이 너무 빨리 뛰는 것 같고, 의자에 가만히 앉아 있는데도 갑자기 숨이 가빠져요. 혹시 마음의 문제일까요?"
"무조건 마음의 문제라고 돌릴 수는 없어요. 혹시 모르니 정밀 검사를 해보는게 좋아요."
내과에서 진료를 받았는데 담당의는 '슬기로운 의사생활'에서만 보던 의사 같았다. 안그래도 입소문이 나 번호표 뽑고 밖에서 기다리는 환자들이 많은데, 친절했고 본인의 전문성을 동원해 답변했고, 환자의 입장을 고려해서 진료를 봐주었다. 엑스레이를 찍고 피 검사를 하고 나왔다.
며칠 후, 피 검사 결과를 들으러 재방문했다.
의사의 말.
"너무 건강해요. 저보다 건강해요."
의사 본인보다 건강상태가 좋으니 너무 걱정하지 말고 마음 편히 지내보라고 했다. 나는 '건강하다니 정말 다행이네요. 진료 잘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하고 병원을 나섰다. 나서는 순간 확정됐다. 마음의 문제가 맞았구나.
자, 이제 마음의 병을 치료하는 데 도움을 받으러 또 다시 병원에 갔다.
"다른 사람 마음 속에 들어갔다 와보면 깜짝 놀랄 거예요. 원래 마음이라는 건 이렇게까지 파도 치듯 불안한게 아니구나 하구요. 본인의 마음은 그렇지가 못하니까요."
의사는 아주 상세하게 설명을 해주었다. 공황장애와 광장공포증, 범불안장애 등이 서로 어떻게 다른지, 불안장애는 교감신경이 흥분되어 나타난다는 것, 이럴 때 호르몬이 어떻게 작용된다는 것. 불안장애가 무엇인지 이해하고 알고나면 나아지는 데 도움이 될 거라고 했다.
"공황장애를 겪으면 내가 순간적으로 죽을 것 같고, 막 큰일이 날 것 같고 그래요. 근데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아요. 죽지도 않아요. 그걸 인지하고 숨을 고르고 진정시키려고 하면 진정돼요."
그래도 나는 철저히 문제해결형 사람이라, 내가 겪고 있는게 불안장애라는 것을 안 순간, 숨을 고르는 호흡을 하며 가라앉혔다. 불안해질 때마다 불안한 이유를 1번부터 생각나는 대로 적고, 하나씩 지워나갔다.
'자, 네가 걱정하는 1번, 실제 일어날 가능성 몇 퍼센트? 5%? 그럼 지워.'
'자, 2번. 이걸 지금 걱정해서 해결될 가능성? 없음. 결국 그 상황이 닥쳐봐야 알 수 있는거니까 그 때까지 미리 생각하지마. 2번도 삭제.'
모름지기 사람은 위기에 닥치면 나도 모르는 슈퍼파워가 나오는 법이다. 영화 속 영웅들은 자신이 가진 잠재력을 발휘 못하다가 위기에 닥치거나 감정적으로 요동칠만한 큰 사건을 겪으면 그 슈퍼파워 버튼이 발동되곤 하는데, 완전 터무니 없는 설정은 아니다.
일단 나에게 불안장애가 왔으니, 이것부터 극복하는 게 우선이었다. 논문 쓰려고 책상에 앉으면 심장이 떨리는데 어떡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