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석대 한병태 VS 민요한 조동팔

그리움과 증오사이에서

by 자루

좋아했던 작가


어렸을 적에 이문열의 글을 좋아했던 적이 있었다.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부터 <사람의 아들>, <삼국지> 시리즈, <젊은 날의 초상>, 단편집들.... 하지만 지금 남아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고 머릿속에 이 4인의 캐릭터들만 남아서 현실을 보는 거울로 사용하고 있다. 한참 어렸을 때 문리가 트여서 말귀를 알아듣고 이해가 깊어지던 시절에 문구가 유려하고, 사건이 재밌으면 닥치는 대로 읽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고 인물들과 부딪히며 시대를 보기 시작하면서 그의 글이 다르게 보이기 시작했다. 특히 <삼국지>의 기본 논리들을 내 안에서 부수기 시작했다. 가장 기억나는 작가의 논리가 "정통성이 없는 권력도 능력을 보이고 백성을 사랑하면 정통성이 생긴다"였다. 작가는 이 논리를 2,000여 년 전의 <삼국지> 지배자들에게 붙였고, 맥락에 따라 70, 80년대 한국에 정통성이 없는 군사력을 앞세워 정권을 탈취한 권위주의 독재자들의 귀를 즐겁게 하는 내용이었다. 나도 한동안 그의 의견에 동조를 했으니 효과는 톡톡히 있었다고 할 수 있었고, 아직도 그를 추앙하거나 그의 논리를 체화해서 살아가는 사람도 많을 거라고 추측한다.


내가 본 현실


내가 본 대통령이 10명쯤 되니 현실에 그의 논리는 안 맞는 것을 볼 수 있었다. 대체적인 정권의 속성이 정통성이 부족하면 외세에 기대거나, 야당을 누르고, 언론에 재갈을 물리고 국민을 겁박하고, 민생을 뭉개는 것을 보았다. 특히 선거를 통해 정권을 얻었더라도 권위주의 성격의 정권 시절에 일어난 대형 참사에 대해서는 대통령은 사과를 하지 않았다. 그리고 이들은 국민을 중국말로 이이제이(以夷制夷), 영어로 divide & rule이라는 기술로 나누어 조종하는 것을 서슴지 않았다. 최신의 말로 세대포위론, "노인들은 투표하지 마라" 뭐 이런 언사들이 얼굴만 바꾸어 현실에 돌고 있는 것으로 보면 수천 년 세상을 흐리는 잡기술이 현실에도 횡행한다. 이 네 명의 캐릭터는 한국 사회의 기본 갈등 요소를 대표하는 듯해서 우울하기도 한 것이 작가의 통찰력은 훌륭하기만 하다. 근데 싫다.


엄석대 VS 한병태


어느 젊다고 알려진 보수 정치인이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을 현실에 빗대어 자기들의 정당성을 설명했던 적이 있다. 작가는 민주주의, 민중, 독재 타도 이런 거를 희망하지 않는다. 그냥 인간들을 기회주의의 화신으로 그려 이간질하고 좌절하는 글을 썼다. 어른이 돼서 이해하게 된 내용을 곱씹어보면 쓴 맛을 다시던 소설이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이었다. 이 소설은 '우리들'도, '영웅'도 없고 '일그러진 인간'만 나온다.

젊은 정치인이 스스로 '한병태의 초심'을 지키게 해달라고 웅변하며 표를 달라고 했다. 웃기고 자빠졌다. 병태는 처음엔 압제에 항거하며 고통을 겪지만 변절하고 한편이 된다. 그러다 압제하던 석대가 선생의 개입으로 독재를 종료한다. 삶에 찌든 병태는 이때를 사무치게 그리워한다. 여기에 어디 병태의 초심이 있지? 내가 소설을 잘못 읽었나? 언어를 흐리는 자들 정말 싫다. 지금도 엄석대가 한마디 하면 두려워하며 그리워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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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요한 VS 조동팔


민요한은 개신교 목사로서 부딪히는 사회 부조리와 기존 교회가 답을 못 주는 철학적 고민 때문에 치열한 삶을 살아간다. 숱한 고민과 토론 속에 동역자 조동팔과 새로운 신을 창조했다. 하지만 종교란 것이 인간의 근본적인 결핍을 해결하는 것이 아닌 걸 깨닫고 민요한은 스스로 돌이킨다. 그 과정에서 조동팔과 사이가 틀어지고 실망한 조동팔이 민요한을 살해하는 것으로 끝이 난다. 소설도 답은 없고 의문만 잔뜩 남긴 채 별다른 결말의 말이 없다.


이상을 통해 나아가는 형, 동생으로 보이던 진보 측 혹은 보수에서는 음모론 주범으로 모는 언론인들이 있다. 처음에는 한솥밥을 먹으며 돌을 함께 맞았던 이들이 어느새 반목하기 시작했다. 최근 장인수 사건과 더불어 '동생' 파트를 맡고 있던 사람이 강력한 비난을 하면서 '반명'이네 하면서 그 '형' 포지션에 있던 사람을 엄석대로 부르기 시작했다. 언론계의 독재자라는 의미로 비난을 한 것이다. 나는 일반인으로서 잘 모르기에 특히 이런 사안은 어디 한쪽에 편승하기보다 시간, 사건의 전개, 그리고 상대의 대응을 이해하고 해결하는 데 필요하다고 생각해서 우려의 눈으로 보았다.


엄석대가 누구인가? 동지의 언어를 넘어갔다고 판단했다. 순간 떠오른 단어는 '조동팔'이었다. 그 형 같은 이는 언론의 새로운 길을 낸 사람이고, 그 동생 같은 이는 비전을 따라가는 조력자였다. 소설과는 사뭇 현실이 멀지만 이 '조동팔'이라는 단어가 떠오른 이유는 뭘까 싶기도 하다.

작가의 망령 같았던 생각이 현실로 자꾸 들어오는 게 별로 유쾌하지는 않다. 내 독서량과 생각이 부족한 탓일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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