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건과 세종의 불편한 진실
고려 태조 왕건과 조선 4대 왕 세종
한반도 역사상 최고의 위대한 왕을 꼽으라면 고려 태조 왕건과 조선의 4대 왕 세종이다. 혼란했던 후삼국을 통일하고 신라하대와 전란기의 한반도에 백성들의 삶의 안정을 가져온 왕건은 25남 9녀를 후손으로 보았고 조선 4대 왕 세종은 아버지 태종이 터를 단단히 만든 기반에 한글 창제와 실질적인 민권 시장과 과학 기술 발전 및 영토 확립등을 이루고 18남 4녀를 후손으로 보았다. 다산 측면으로 복일 수 있는데...... 자녀가 많아서 다복했는가? 국가가 안정하는 계기가 되었는가?
한반도판 왕좌의 게임
미국 HBO채널의 왕좌의 게임이 고려와 조선 전기에 벌어졌다. 고려 왕족은 지배층의 기득권 혈통적인 정통성을 위해 왕 씨 집안 딸들은 거의 왕 씨 왕족에게로 시집을 갔고, 딸들 공주들은 어머니의 성을 따르기도 했다. 그리고 무수히 현대의 시각으로 보면 무수한 불륜과 근친혼으로 점철되어 있는 역사였다. 그리고 신라의 대호족이기도 했던 왕건이 자신의 통치기반을 다지기 위해 각 지역 호족들의 딸과 수십 번 정략결혼으로 자신은 단단했을지 모르는 왕권은 아들 대 손자 대 까지 피바람을 부르는 일이 잦았다. 형제간, 모자간 혈투는 고려판 왕좌의 게임이 나와도 손색이 없었다. 혜종 정종 광종 경종 목종 현종에 이르는 시대 동안 숱한 사람이 죽었다. 하지만 이 시기에 노비안검법(노비해방), 과거제 실시(신분상승을 막는 족쇄 일부 풀림)등으로 민권이 신장이 되는 측면도 있었고, 고려거란전쟁에서 서희 양규 강감찬 등도 활약하던 시기였다. 근 100년간 왕건의 후손들은 민생과 국가를 볼모로 권력 투쟁을 했다.
단종과 세조
불세출의 성군이라고 불린 세종의 자손들은 더욱 드라마틱하고 연대기적인 역사를 만들었다.
장남이 일찍 죽고(문종), 이은 단종을 작은 아비(세조)가 찬탈하고 사육신 그리고 그의 형제들의 오랜 기간을 죽고 죽인 역사로 끝나는 것만 아니었다. 세조와 함께 쿠데타를 일으킨 한명회 등의 세력은 안정되어 가는 조선에 대표적인 불만 세력이었다. 같은 형제의 난을 치렀던 태종과 비교하기도 하지만 결적적인 차이가 있었다. 태종은 효과적으로 자신의 반대세력을 제거했고, 실질적으로 정도전이 꿈꾸었던 유교적 이상 사회를 실천하는 전진하는 정권이었다. 왕은 군림하지만 유능한 관료들이 패도정치가 아닌 민본 하는 것을 의미한다.
세조의 게유정난이 없었으면 세종과 문종의 성정을 볼 때 조선판 마그나 카르타가 가능하지 않았을까 자문도 해본다. 그 시대에 등용된 유학자 정치가들이 세종 대의 번영을 담보하기도 했다. 실제로 세조의 가정사도 그의 끝도 불행했다. 세조와 그 패거리는 이 안정화되어 가는 조선을 일거에 뒤엎고 패거리들로 정치를 쥐락펴락했다. 이때 만연했던 권력부패가 조세 군역 등을 문란케 해서 임진왜란의 먼 원인이 되기도 했다.
왕조제의 뒷모습
저승에서 태조 왕건과 세종 이도가 그들의 자녀들이 서로 벌인 살육전을 보았다면 복이 아니라
고통이었을 것이다. 국가 역시 그 후 내리막을 한동안 걸었으니 백성들 역시 고통 속에 살았다.
왕조제의 복불복이다. 위대한 왕의 업적 만을 배울 것은 아니다. 우리가 사는 공화제 세상에는
어떤 복과 불복이 기다리고 있을지는 우리가 왕건과 세종을 판단했듯 후손의 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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