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녁식사를 마치고 커피 마시는데 아내가 나에게 질문을 했다.
"의무방어전이 어디서 온 말이야"? 권투가 유래라고 얘기를 시작했다.
음..... 나는 거두절미한 이야기 진입보다. 6하 원칙 풀텍스트를 선호했다. 대신 입이 아팠다.
70~80년대에는 박찬호 김연아 손흥민 같은 글로벌 스포츠 스타는 없었고, 생계형 운동선수가 대세를 이뤘고 단 번에 명성과 큰돈을 얻는 수단은 프로권투 외에 없었다. 지금이야 프로 투기 경기가 참으로 다양화해서 여러 격투기가 있지만 그 시대엔 TV에서 본 것은 레슬링과 권투였다. 레슬링은 일찍이 게임에 시나리오가 있다는 사실로 80년대 중반에 시들해졌고, 90년대 초 중반까지 권투는 리얼이라는 면에 선수의 서사가 감동이어서 인기가 좋았었다.
옛날 권투가 국민스포츠이던 시절 키워드를 떠올린다. 홍수환 4전 5기, WBC WBA IBF
카라스코야, 박종팔, 불운하게 사망한 김득구, 황충재, 장정구 , 금메달 유명우... 레너드 헌즈
화려했던 마이크 타이슨 등 많은 키워드가 튀어나왔다.
아내에게 대답을 했다. 권투 프로모션 단체에서 리그를 운영하면서 내실을 겸한 흥행을 위해서 챔피언 방어전이라는 개념으로 연속 게임을 기획했다. 그래서 챔피언이면 몇 차 방어까지 했다는 기록으로 선수의 트로피를 채워갔다. 장정구가 챔피언이 된 후 16차 방어전까지 한 것으로 기억이 났다.
흥행과 내실을 기하기 위해 챔피언 방어전 중에 의무로 권투단체에서 정하는 도전자의 순위를 정해서 방어전을 만든다. 이것을 의무방어전이라고 불렀고, 의무방어전에는 수많은 실력자들이 치열한 경쟁을 통해 챔피언에게 도전을 하기 때문에 숨은 강자들이 많았다. 챔피언 급에 준하거나 월등한 선수가 많았고, 의무방어전을 통과하면 챔피언이 약해 보이거나, 챔피언 방어가 가능할 것 같은 상대를 일방적으로 고르고 진행할 수 있었다. 그래서 의무방어전은 정말 이기기 힘든 과정을 의미했고, 많은 남자들은 의무방어전의 정서를 너무나도 잘 이해하고 있었다. 그 시절 챔피언이 의무방어전을 패하면 배가 불렀네, 안일했네 비난이 따르던 게 아직도 기억에 생생했다. 의무방어전이라는 용어를 확장한 것은 남자일 것이라고 대답을 해줬다.
반대의 개념이 지명방어전이었다.
인생이 지명방어전만 있으면 재미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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