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가 되어 깨달을 것
아버지와 어머니가 하셨던 말씀에서 사셨던 시간을 형과 나에게 많이 하셨다. 그것을 들을 때는 잔소리로 들었다. 호랑이 담배 물던 시절의 이야기라 무시할 수 없었지만, 기억에서 일찍 지워버렸다.
어머니의 "내가 시집왔을 때....."
아버지의 "내가 625 시절 때...."
시간의 거리와 두께
살아보고 아이들을 키워보니 숫자적으로 객관적이었던 숫자가 이젠 느낌으로 감각으로 다가온다.
그 얘기를 들은 것이 80년 대였고 참 많이 들었다. 그 이후 40년이 흘렀다. 어머니가 1968년도에 시집오시고, 아버지가 겪으신 625는 1950년이니, 그만큼의 시간을 나도 기억하며 겪으며 보냈다.
그 시절의 50 60년대는 주관적인 길이감으로 조선 500년 보다 길었고, 오래되기로는 고려시대
이상이었다.
80년대를 기준으로 지금은 40년 정도 시간이 흘렀으니 나도 격동의 80년대를 우리 아이들에게 얘기할 수 있을까? 그런 얘기들을 내 자녀들에게 얘기하면 호랑이 담배 피우던 시절 얘기라 듣지 않으려 할까?
호랑이 담배는 그 시절 속담처럼 하는 것이고 라테 꼰대라고 할 것이다. 그래서 나의 아이들에게는 라테 얘기를 안 하려고 하고 적어도 풍자 조롱을 섞어 재밌게 해주려고 하지만 아이들이 아빠는 꼰대라고 하면 할 말은 없을 것이다. 아무튼 아버지의 어머니의 시간을 이해하는 나이가 되었다.
역사는 현재로 갱신된다
24년 25년을 몰아친 축구협회 난맥상을 아이들과 대화를 나누었다. 아시안컵의 졸전 그 이전에 독일인 감독선임부터 신임 감독선임과정이 내가 보기에도 아이들이 보기에도 너무나도 이해가 되지 않았다. 아이들이 PL을 좋아해서 축구 수준이 나하고 대등하게 이야기를 나눌 정도로 성장하였고, 특히 중 3되는 막내는 PL뿐 아니라 라리가, 세리에 아까지 섭렵을 해서 내가 물어볼 정도가 되었다. 큰 애는 영국 레스터 시티 팀의 성장 서사를 특히 사랑하고 그 팀의 상징 제이미 바디의 팬이다. 제이미 바디가 누구야 내가 물어봤다. 이런 아이들에게 축구협회가 벌이는 삽질은 정치나 어른들의 세상이야기가 더 이상 아니고 그냥 부조리한 삽질인 것이다. 94년 얘기를 꺼내지 않을 수 없었다. 그 시대의 영원한 리베로였고, 최종수비수로 한 대회 2골을 넣는 금자탑을 세우고 02년 월드컵의 큰형으로 이미지가 각인되었다고 아이들에게 강변했다. 하지만 그가 아이들에게는 그냥 쓰레기가 되었다.
95년이니 30년 전 이 이야기가 아이들에게는 숫자는 30이지만, 느낌은 100년 200년 전 이야기였을 것이다 98년도에 머리가 터져서 피를 보았던 그런 선수도 있었다고도 얘기했지만, 아이들에게는 그도 그냥 쓰레기의 하수인이 되었다. 역사는 현재를 통해 항상 갱신된다는 의미라고나 할까? 그들이 왜 이 시대에는 퇴물이 되어가는지 씁쓸하기 그지없었다. 나는 그래서 한마디 아이들에게 그 당시 홍은 지금의 손에 버금가는 인물이었어라고 했다. 냉철한 큰애는 한마디로 정의했다. 손도 나이 먹고 홍처럼 행동하면 가루가 되게 부서질 것이라고.
공감의 소통
내가 입 아프게 아이들에게 설명하는 이유가 뭐지? 자문해 보지 않을 수 없었다. 그냥 같이 비판하면 맘 편하고 좋았을 텐데. 아버지 어머니가 625를 겪으셨던 때와, 시집오셨던 때를 우리에게 설명하고 싶었던, 소통하려고 하셨던 것은 아닐까 한다. 소통이야 공감이 없으면 잔소리로 치부되는 게 역사가 현재로 해석되어야 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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