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오전에 시간이 날 때마다 30분씩 혹은 1시간씩 이 책을 읽었다. 연속해서 2번을 읽는데 (나는 마음에 드는 책을 곧바로 한 번 더 읽는 습관이 있다) 거의 1년 넘게 걸린 것 같다. 참으로 긴 여정이었지만 놀랍게도 전혀 지루하지가 않았다. 물론 책 두께 때문에 좀 질린 건 사실이지만 그래도 읽고 있노라면 페이지마다 흥미진진하기 이를 데 없었다. 만약 무인도를 갈 때 몇 권의 책을 가져갈 수 있다면 (몇 권까지 가져갈 수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이 책을 챙겨가고 싶다.
나는 경제에 대해서는 정말이지 잼병이다. 경제용어만 들어도 멀미가 나고 적금조차 나 스스로 들어본 적이 없다. 하지만 나 같은 사람도 이 책을 읽는 데 아무 문제가 없다. 이것은 '돈'에 관한 책이긴 하지만 정확하게 말해서 경제 서적은 아니다. 그렇다고 단지 철학이라고 하기도 (제목은 [돈의 철학]이지만) 애매하다. 철학, 심리학, 경제학, 사회학, 과학, 역사, 문화사, 미학 등등 너무나 방대한 관점을 총망라하고 또 종합하고 있기 때문이다. 만약 '돈'이라는 신이 있다면 이 책을 가히 '돈의 성서'라고 할 만하다. 실제로 이 책을 읽다 보면 '돈'이라는, 너무나 익숙해진 나머지 그 진정한 본질을 잊고 있는 이 수단의 기하학적이고 객관적이며 한편 주체적이고 역동적인 거대한 내면을 접하면서 가히 '성스럽다'라고 느끼게 된다. 내가 자꾸 돈을 '신'과 비유하는 이유는 돈에게 그런 속성이 있거나 최소한 신을 대체한 측면이 있기 때문이다. 왜 그 점잖은 예수가 환전꾼들에게 버럭 화를 내며 주먹을 휘둘렀겠는가. 자신의 가장 큰 경쟁자이기 때문이다.
이 책을 요약하는 건 좀처럼 쉽지 않을 듯하다. '돈'의 인문학적인 관점을 단 하나도 놓치지 않겠다는 듯이 (나름대로) 샅샅이 기술하고 있기 때문이다. 사실 좀 지나칠 정도인데 그것이 이 작가의 스타일인 듯하다. 적당히 얼버무리지 않는 것. 하지만 글을 믿고 따라가다 보면 어느새 길이 아니라 풍경을 보게 된다. 그것은 평면적이 아니라 입체적인, 물질적이 아니라 기하학적인, 그리고 물리적이 아니라 화학적인 풍경이다. 그 풍경 속을 오가며 기웃거리는 건 참으로 즐거운 일이었다. 하지만 능력이 부족한 관계로 나는 이 책 전체를 요약하기보다는 인상적인 두 가지 정도를 짚고 넘어가는 걸로 대신해야 할 듯싶다.
우선 돈의 속성 혹은 우리와의 관계부터 짚고 넘어가야 할 듯한데, 돈은 결코 단순한 도구나 수단이 아니다. 물리적인 도구는 더더군다나 아닐뿐더러 목적을 위한 수단, 심지어 여러 시스템 중 하나도 아니다. 돈은 인간의 외적인 요소이면서 내적인 요소이며, 동시에 인간이 돈의 외적 요소이면서 내적인 요소이기도하다. 다시 말해 돈은 우리를 관통하지만 또한 동시에 초월하는 것이다. 그리하여 돈에 대한 '철학'이 진정 가능해진다. 조금 선언적으로 단언하자면, 우리에게 돈이 (돈의 개념이) 없다면 우리는 결코 '인간'이 아닐 것이다. 여기서의 '인간'은 물론 생물학적 인간이 아니라 현시대의 실존으로서의 인간이다. 예를 들면 나는 예전에 한 종교인에게 성경 설명을 듣다가 만약 하나님의 왕국이 도래해서 영원한 생명을 얻게 되면 우리는 아담과 이브처럼 발가벗고 살아야 하느냐고 물은 적이 있었다. 왜냐하면 최후의 심판 이후 우리는 아담과 이브처럼 최초의 원죄 없는 영혼의 순수성을 회복한다고 들었기 때문이다. 그 종교인은 잠시 생각하더니 (놀랍게 솔직하게도) 잘 모르겠다고 대답했다. 그리고 그의 얼굴은 다소 어두워졌다. 그도 알았을 것이다. 만약 우리가 발가벗어도 부끄럽지 않은 인간, 고통과 죽음을 모르는 인간, 선악에 대한 고뇌와 번민이 없는 인간이 된다면 그건 결코 '인간'이 아니라는 사실을 말이다. 다시 말하자면 아담과 이브는 '인간'이 아니며, 우리는 결코 아담과 이브가 될 수 없으며, 될 수 있다 해도 되기를 원치 않을 것이며, 만약 된다면 그건 더 이상 '내'가 아닐 것이다. '돈' 역시 마찬가지인데, 이제 돈은 우리가 쓰고 말고를 결정할 수 있는 단순한 수단의 문제가 아니다. 물론 돈의 육화 된 부분에 대해서는 이런저런 조정과 변화를 (경제적으로) 도모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돈은 단지 외부적인 경제 상황이나 환경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지금 우리의 영혼의 일부를 형성하고 있으며 또 영혼 전체를 형성하는데 크게 일조해 왔다. 그런 점에서 몇몇 이념들이 '돈' 혹은 '자본'이 없는 세상을 꿈꾸는 것은 판타지에 불과한데, 그것은 마치 신의 나라에 들어가기를 원했던 나 자신의 영혼을 신의 나라에 들어가자마자 버려야 하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또 한 가지 이 책의 흥미로운 점은 돈의 속성과 역사를 변증법적으로 설명하고 있다는 것이다. 철학 이론을 잘 모르기 때문에 이해가 부족하지만 내 생각에는 변증법은 형이상학과 함께 이 책 전체를 관통하고 있는 철학 내지는 세계관이다. 돈의 내부나 외부에서 발생하는 갈등이나 대립들, 그리고 돈에 대한 혹은 돈에 의한 갈등이나 대립들은 서로를 제거하거나 우위를 차지하기 위한 부정적인 충돌이 아니라 (어떤 시점에는 설사 그렇게 보일지라도) 통합과 승화로 가기 위한 필연적이고 긍정적인 변증법적 발전 과정이며, 이것이 다시 다른 변증법들과 복잡한 망처럼 맞물려 끊임없이 순환하며 전체를 이룬다. 이 전체란 끊임없이 유동하면서 구조와 내용은 변하지만 언제나 그 자체로 실존하는 전체이다. 현대에 올 수록 사회의 관계 망은 더욱 광범위해지고 복잡해지며 정교해지는 데, 돈이야 말로 이 망의 일부이며 또한 그 망들을 이어주는 신경이면서 한편으로는 (감히 이렇게 말할 수 있다면) 그 망 자체이기도 한 것이다.
갈등과 대립이 통합과 조화를 찾아가는 과정, 혹은 통합과 조화를 위한 갈등과 대립의 필연성, 혹은 갈등과 대립의 거시적인 진보성 등에 대한 변증법적 해석은 결국 돈에 대해 긍정적으로 바라보는 시각을 드러낸다. 물론 이 책은 돈으로 인해 발생하는 여러 가지 부정적인 영향 또한 분명하게 인식하고 또 지적하고 있다. 또한 '긍정'이라고 해서 추종이나 편애를 말하는 건 아니다. 그러나 결국 지금의 자기 자신을 긍정하지 않을 수 없는 것처럼 돈을 긍정하지 않을 수 없음을 숨기지 않는다. 그것은 역시나 지금의 우리에게, 태생적으로 도시인인 (지리적으로가 아니라 본질적으로) 우리에게 설득력이 있다. 땅과 계급이 세습되고, 한 지역에 국한되며, 가족과 관습에 얽매인 실질적이고 다정하고 견고한 삶을 살아가고 싶은가? 세상에, 절대로 사양이지. 우리는 냉담하고 고독하며 소원하지만 그 어떤 시대보다 유동적이고 긴밀한 이 시대의 공허한 자유를 사랑한다. 그것은 돈이 없었다면, 모든 것에 냉담하지만 평등하고 공정하며 가능성을 담보로 모든 걸 낱낱이 해체해버리고 다시 통합하는, 돈이 표방하는 정신이 없었다면 애초에 불가능했을 자유이다.
돈이란 [욕망된 사물들이 경제적 가치가 되도록 하는 상대성을 숫자를 통해 가능성의 가치로 표현한 것]이라고 (지나치게 단순화해서) 정의 내릴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 짧은 문장 안에서도 단어 하나하나가 철학적이며, 역사적이고, 심리적인 세계를 내포하고 있다. 이 세계를 혼자 여행한다는 건 내게는 불가능한 일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훌륭한 여행 가이드와 함께라면 굉장히 즐거운 여행이 될 수 있다. 물론 이 여행 가이드가 문외한인 나를 지엽적인 곳으로 이끌고, 거짓말을 하고, 오해를 양산하고, 싸구려 물건을 사도록 유도할 수도 있겠지. 그래, 심지어 (누군가의 관점으로 보면) 타락시킬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상관하지 않는다. 나에게 중요한 것은 여행 그 자체이기 때문이다. 나는 다음 여행도 이 여행 가이드와 함께 하기 위해 곧바로 여러 권의 책을 사 두었다. 다시 그와 함께 여행을 떠나길 손꼽아 고대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