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레이기 에이치슨
Crucifixion 9 십자가에 못 박힘 9 / Craigie Aitchison 크레이기 에이치슨 (1987)
예수의 십자가는 고통의 과시로 가득하다.
그의 십자가는
인류에 대한 자극적인 유세이다.
이 극적인 쇼를 증언하기 위해 모든 시선들이
하늘 위로 드높이 매달려 있는
그를 우러러본다.
봐라, 이것이 바로 클라이맥스다.
그 얼마나 위대하고 감격적인가.
밝은 조명과 환호와 박수소리가 모든 세계로부터
모든 세대로부터 쏟아진다.
예수는 고통스러울지언정 결코 외롭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런데 우리가 짊어진 십자가는?
(난 딱히 자조적이 되거나 동정을 사려는 건 아니지만)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는다라는 말은 옳지 않다.
있는지조차 모르니까.
나는 [허무]라는 단어도 쓰지 않을 것이다.
현실에 비해 너무 비장한 느낌을 주기 때문이다.
그저 모든 게 낮고 시시한,
쓸쓸하기보다는 지루하고,
고통보다는 방치로 더 낡아버린,
도달할 수 없는 골고다를 향해
영원히 짊어지고 가야 하는,
나의 십자가.
우리는 부끄러워서, 그리고 귀찮아서
발아래로 몸을 웅크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