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들과 물고기와 게

이중섭

by 곡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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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들과 물고기와 게 - 이중섭 (1950년대)






나는 그의 그 대단한 소 그림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그 그림에서 어떤 사람은 우직한 기상을,


어떤 사람은 장대한 힘을, 어떤 사람은 꺾이지 않는 의지를 보지만


나는 그저 한 초라한 화가의 발버둥을 본다.


(그가 정말 초라했는지는 잘 모르겠다.)


대가가 되고 싶은 야망, 사람들을 압도하고 싶은 욕망,


누가 봐도 그럴듯하고 거창한 그림을 남기고 싶은 허세.


마치 자신의 단단한 근육에 짓눌려 울부짖는 황소처럼


자신의 본성과 이상의 단단한 차이에 짓눌려


아무런 기쁨도 상상력도 없이 붓을 휘두르는 그는


참으로 재능 있고 소심하며 비겁하고 진지하다.


그 소는 일면 그의 자화상이라고 할 수도 있다.


자신을 바라보는 자신이 아니라


자신이 바라보는 자신이라는 의미에서.


그러나 그런 그림들 보다는


그의 작은 그림들이


훨씬 그답고 (그를 전혀 모르지만)


재능과 농담이 거리낌 없이 자유롭고


그리는 이도 즐겁고 보는 이도 즐거우며


그림 스스로도 즐거운 그런 작품들이다.


사실 그거면 이미 더할 나위 없이 너무나


충분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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