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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곡도 Sep 03. 2020

프릭스


Freaks / 프릭스 (1932) 






포르노는 스스로의 가증을 숨기지 않는다.


그것이 포르노의 매력이다.


카메라 앞에서 강간당하는 여자는 성스럽고 상스럽다.


실제의 여자가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니


마지막에 여자의 복수 같은 게 필요할 리 없지. 


우리는 모두 현실과 욕망 정도는 구별할 줄 아는


건전한 정신과 육체의 구경꾼들이 아닌가?


그러나 모든 영화가 그토록 진솔한 것은 아니다.


우리는 여기서


차별을 금지하면서 차별을 조장하고 결국 차별을 단죄하는 진기한 장면을 본다.


무례하고 거만한 취향을 노골적으로 들어내지만


결국 교훈적인 마무리로 모두를 화목하게 만드는 재주를 부린다.


이 영화의 매력이 무어냐고 묻는다면


권선징악? 설마. 그게 언제부터 우리의 흥미를 끌었지?


하물며 그 권선징악이 악마적인 것이 아니었다면?


사실 선악 따위가 뭐가 그리 중요한가. 


결국 우리가 입맛을 다시게 되는 것은 


이질적인 것, 비정상적인 것, 괴상한 것, 뒤틀린 것, 희귀한 것, 


마법적인 것, 끔찍한 것, 더러운 것, 징그러운 것, 소름끼치는 것, 그리고


기형에 대한 미학적인 관심.


그래, 나는 여기에 [미학적인]이라는 수식어를 붙임으로써 


우리를 죄의식에서 구원하였다. 하지만


우리의 죄의식은 우리의 취향에 대한 것이 아니라 실은


이 영화가 가증을 감추는 방식에 대한 것이다.


그러니 이제 우리는 솔직하게 회를 치며 꼬꼬댁 외치도록 하자.


이것은 괴물 서커스쇼에 대한 영화가 아니라


그야말로 [괴물 서커스쇼] 그 자체라고.


그리고 우리는 그 괴물들의 재롱을 보며


 참으로 즐거웠노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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