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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곡도 Sep 28. 2020

네임리스

Los Sin Nombre / 네임리스 (1999)






무조건적인 사랑은 신앙의 영역이다.


'신'에 대한 무한하고 절대적인 헌신은


피를 혹은 눈물을 쏟으며 '신'의 뒤를 쫓는다.


'신'이 뒤를 돌아봐주길 기대하면서. (언제나 실망하면서)


그런데 '신'은 누구인가.


이것은 부적절한 질문까지는 아닐지라도 불필요한 질문이다.


우리는 '신'을 사랑하는 데 주의를 기울이느라


'신'의 정체에 대해서는 주의를 기울일 여력이 없다.


하기야 '신'이 누구든 무슨 상관인가?


사랑할 수 있다면.


우리는 언제나 사랑해왔고, 사랑하고 있으며, 사랑할 텐데...


무한한 허공 아래로, 죽음과 망각 속으로, 영원한 허무 너머로 떨어져 내리는 


우리에게 필요한 건 그저 


잠시라도 매달려있을 수 있는 이름 하나. 


그리하여 우리는 이 세계를 창조한 것이 '신'이 아니라 


'신'의 이름임을 이해하게 된다. 


공포는 우리가 정체를 알 수 없는 신을 사랑한다는 사실이 아니라


'신'이라는 이름을 들어 올려 그 뒤의 낯선 얼굴(얼굴?)을 보려고 할 때 솟구쳐 오르는 것이다.


그것은 우리에게 금지된 유일한 신성모독이며


'신'을 살해하는 일이며


타락하는 일이다. 


그것만 지켜진다면 우리의 자애로운 '신'은 자신에게


그 어떤 이름이라도 허락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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