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소설을 처음 읽었을 때 글의 내용보다도 우선 글쓰기의 기술적인 완성도와 원숙함에 놀랐다. 글은 처음부터 끝까지 군더더기나 곁가지 하나 없이 촘촘하게 짜여져 있었고, 이야기와 이야기를 한가닥씩 엮어나가는 솜씨 또한 매끄러웠으며, 텍스트를 상징으로 고양시키는 과정은 과감하면서도 결코 침착함을 잃지 않았다. 사실 개인적으로는 글을 너무 맨질맨질해질 정도로 다듬었다는 느낌이, 아귀를 지나치게 빈틈없이 딱딱 맞췄다는 느낌이 들기는 했지만 그것이 흠결이 될 수는 없는 노릇이다. 마치 섬세하게 세공된 조각상처럼 이 소설은 가히 장인의 솜씨라고 할 만하다. 나는 작가의 글솜씨와 문학적 완벽주의에 흠뻑 빠져서 이 소설을 단숨에 읽었다. 그것은 이 소설이 그리 길지 않기 때문이기도 하다.
줄거리 자체는 복잡하지 않다. 그러나 구성은 간단치 않으며 많은 것들이 응축되어 있다. 커다란 이야기 줄기는, 노동절 기념대회에 초대받은 주인공이 행사장까지 걸어가는 짧은 여정을 그리고 있다. 고작 두어 시간 정도가 걸렸을 것이다. 그는 그 길을 걸어가면서 수많은 인간 군상들을 만나고 수많은 이야기들을 섞어 넣음으로써 시적이면서도 로드무비 같은 추상성과 상징성을 만들어낸다. 우선 그는 개인적인 비극을 신화적인 비극으로 확대하는데, 자신과 공산당 간부의 딸인 수잔나와의 결별을 전제주의 전쟁을 위한 아가멤논의 딸 이피게네이아의 희생과 연관시킨다. 그에게 있어서 수잔나는 이피게네이아와 동일시되지만 사실 이피게네이아는 수잔나가 아니라 주인공 자신이며 더 나아가 알바니아 민중일 것이다. 무고하고 순결한 희생자인 그가 (혹은 알바니아 민중이) 이피게네이아처럼 '처형'되기 위해 영광의 대회장까지 걸어가는 그 길에는 역사, 이념, 이야기, 전설과 인물들이 마치 서사시처럼 펼쳐진다. 글의 배경이자 실제 작가의 조국인 알바니아는 전제주의 공산당이 지배하고 있다. 그리하여 ('그리하여'라는 말이 과연 정당할까? 그러나 또 한편으로 보면 참으로 정당하지 않은가) 자유와 희망이 억압당하고, 공정과 정의의 기준이 무너지고, 점차 비인간화, 기계화되어버린 국민들은 전체주의적 공포와 광기에 사로잡혀 있다. 그들은 희생자인 주제에 가해자에게 감정을 이입하여 공산당에게 지지와 환호를 보내는 한편 자발적으로 반대자를 감시하고 색출하고 밀고한다. 이피게네이아를 죽인 건 누구인가. 아가멤논인가? 아니면 조국인가? 혹은 이 평범한 사람들인가? 아가멤논이 이피게네이아를 죽이고, 또 다른 이피게네이아를 죽이고, 또 다른 이피게네이아를 죽이면서 온 국민을 하나씩 하나씩 처형해나갈 때 살아있는 이피게네이아들은 환호한다. 왜냐하면 약자들, 방해자들, 반대자들부터 죽여나가기 때문에 그런 사람들이 많으면 많을수록, 그리고 열렬히 환호하면 환호할수록 자신은 더 오래 살아남을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그들 역시 죄의식을 느끼는데, 그 죄의식을 온전히 자기 자신에게로 돌림으로서 오히려 저 강력하고 완벽한 조직에게 더욱 충성할 수 있는 원동력이 된다.
이것은 알바니아의 정치 체제에 한정되는 것이 아니라 결국 인간과 권력의 속성과 운명을 보여준다. 책의 여러 내용 중에 가장 내 흥미를 끌었던 것은 주인공의 동료인 G.Z. 와 독수리를 타고 꼭대기로 올라가는 대머리 인간의 이야기이다. 우리는 거대한 날개를 가진 권력이나 이념, 혹은 독수리를 타고 저 높은 곳으로 날아오르길 바라지만 권력이나 이념, 혹은 독수리는 언제나 피가 흐르는 사람의 고기를 원하기 마련이다. 누군가의 고기를, 만약 그것이 안된다면 나의 고기라도 바쳐야 하는데, 말하자면 하늘에 도착하는 일은 인간성을 상실한 살인마나 해골에게나 가능하게 된다. 그런데 내용보다 나를 더 즐겁게 한 것은 이 두 이야기를 조각조각 교차하여 배열하는 방식이다. 실제 인물과 (물론 이 역시 소설 속 인물이긴 하지만) 전설 속 이야기의 인물이 한 문단씩 교차하며 이어지면서 자연스럽게 녹아들어 가 당연한 듯 그들은 하나의 인물이 되고 하나의 이야기를 이룬다. 마치 조각난 여러 조각보를 꿰매어 더 멋진 옷을 만들어내는 디자이너처럼 작가는 조각조각난 이야기들을 뛰어난 솜씨로 엮어서 다채롭고 색다른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것이다. 그리하여 과거와 현재가 결합하고 이야기와 역사가 연결되면서 거대한 원을 형성한다.
사실 이러한 정신세계의 통합이야 말로 이 책의 주제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그러한 통합이 보여주는 세계는 결코 희망적이지 않다. 역사는 반복되며 옛이야기는 모든 걸 예언한다. 인간은 결국 모두 같은 운명을 맞이할 것이다. 영원히 오지 않을 승리를 위한 희생양이 될 것이라는 운명. 우리가 바로 아가멤논의 딸이니까. 이피게네이아는 지금도 끊임없이 태어나고 끊임없이 제물로 희생되고 있다. 세계는 인간을 먹고 움직이는 엔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