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누트 함순
아무리 1인칭 주인공 시점의 소설이라고 해도 주인공에게 온전히 몰입하는 경우는 드문데, 이 책은 주인공에게 푹 빠져서 글을 읽었다. 마치 내가 정말 주인공 자신이라도 된 듯했다. 이 정도로 내면으로 함몰되어 있는 소설은 오랜만이었다. 마치 자신의 그림자를 쥐새끼 쫓듯이 쫓아가는 굶주린 사냥개 같은 소설이다. 내용은 딱히 별게 없다. 소재도 주제도 뻔하다면 뻔하다고 할 수 있다. 굳이 정리하자면 굶주림에 시달리는 가난한 작가의 비참한 일상 정도로 요약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도 이 소설이 흥미로운 것은 주인공이 지독할 정도로 자기 자신에게 몰입해 있기 때문이다. 그러한 자의식의 과잉과 과민은 그의 굶주림의 원인이기도 하면서 또한 굶주림의 결과이기도 하다. 이 글을 읽다 보면 주인공뿐만 아니라 독자인 나 역시 끝도 없이 미끄러지는 굶주림의 소용돌이 속으로 빙글빙글 돌며 가라앉는 듯하다.
만약 독자가 이 주인공의 무능력, 조울증, 자의적인 도덕성, 게으름과 자기기만 등에만 집중한다면 이 작품을 온전히 즐기지 못할 것이다. 나도 알고 있다. 아마도, 아니 분명히, 주인공은 한심한 인간이다. 심지어 더 나쁜 것은 그가 한심한 지식인이라는 사실이다. 그는 쥐뿔도 없는 주제에 지식인 특유의 허영심과 자존심, 무기력에 빠져 어중간하게 살아가느니 차라리 아예 비천해지기를 선택하는 비겁한 인간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게 어쨌다는 것인가. 한심한 인간은, 한심한 지식인은, 고통받을 자격이 없다는 것인가. 한심한 인간의, 한심한 지식인의 고통은 고통이 아니라는 말인가. 우리가 너무 쉽게 타인의 고통을 얕보는 건 우리가 경솔하거나 냉담해서가 아니라 실은 우리 중에 고통받지 않는 자가 아무도 없기 때문이다. 다른 사람의 고통을 얕봄으로써 우리는 자신의 고통의 무게를 덜어내려 한다. 그러나 고통은 결코 줄어들지 않는데 고통은 마치 거대한 발원지에서 우리 각자에게 많거나 혹은 적게 끊임없이 흘러들어오고 있는 것만 같다. 그리하여 우리는 우리 자신의 고통을 거슬러 올라가 발원지를 넘어 타인의 고통 속으로 함께 흘러들어 갈 수 있는 것이다. '공감'이란 결국 고통을 통해 가능하며 휴머니즘이란 고통에서부터 시작하는 것이다.
이 소설은 굶주림이라는, 나로서는 경험해보지 못한 이 절대적인 육체적 상황이 어떻게 한 인간에게서 마지막 한 방울의 영혼까지 남김없이 쥐어짜내는지, 어떻게 한 인간의 정신을 위장 속으로 쑤셔 넣어 갈갈이 뒤틀어버리는지를 생생하게 보여준다. 외부에서 먹을 것을 찾아내지 못한 굶주림은 자신의 육체를 뜯어먹기 시작하고, 이윽고 육체에서도 더 이상 먹을 것을 찾지 못하자 자신의 영혼마저 뜯어먹기 시작한다. 우선 영혼의 질긴 근육과 지방부터, 그리고 부드러운 살코기, 그다음에는 붉은 내장, 따듯한 뇌수, 결국 영혼에게서 뼈만 앙상하게 남을 때까지 굶주림의 식욕은 결코 멈추지 않는다. 그런데 안팎으로 뼈만 남아 앙상해진 그를 배부르고 건장할 때의 그보다 더 잘 들여다볼 수 있게 되었다는 건 흥미로운 일이다. 굶주림이 그의 인격을 짐승처럼 만드는 게 아니라 오히려 더욱 인간적으로 만드는 과정에는 어떤 감동이 있다. 그가 더 인간적이 된다는 건 그가 더 도덕적이 된다는 뜻이 아니라 그가 진정 그 자신다워진다는 뜻이다. 그에게는 더 이상 다른 사람인 척하거나 아무렇지도 않은 척할 여유가 조금도 남아있지 않은 것이다. 그는 물이 다 빠져나간 자신의 가장 밑바닥에 가라앉아있던, 어쩌면 영영 몰랐거나 모른척했을 찌꺼기의 진흙탕 속에서 허우적거린다. 그 순간 그가 그 누구보다 열렬하게 실존하고 있노라고 누군가 말한다면 그는 상대에게 가차 없이 마른 가래침을 뱉을 것이다. 그리고는 몇 번쯤 더 가쁜 숨을 내뱉다가 마침내 잠잠해진다. 결국 그는 자신의 찌꺼기 속으로 깊이 가라앉았다. 그가 살아있든 죽어있든 결말은 더 이상 크게 다를 게 없다.
자, 그럼 식사 준비는 모두 끝난 것이다. 우리는 식욕과 기대 때문에 퍽이나 허기지다. 우리의 굶주림은 그의 영혼을 남김없이 싹싹 긁어내어 깨끗한 접시 위에 보기 좋게 올려놓는다. 그리고는 고상하게 나이프와 포크를 들고 접시로 달려들어 천천히 맛을 음미하면서 미식가처럼 쩝쩝거리며 인상을 찌푸린다. 비참함과 고독의 단맛에 톡 쏘는 희망과 분노의 쓴맛이 곁들여져 하나의 훌륭한 만찬이로다. 마침내 우리는 포만감을 느끼며 참으로 만족스럽게 우울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