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수아 라블레
예전부터 이 책에 대한 언급을 다른 여러 책에서 보아왔기 때문에 읽기도 전에 벌써부터 기대감이 높았다. 기대가 크면 실망이 크기 마련이라고 하던가. 와, 그러나 이 책은 내 기대감을 훨씬 뛰어넘어버렸다. 아니, 이걸 뛰어넘었다고 해야 할지 모르겠다. 차라리 걷어찼다고 해야 정확할 것이다. 이 책을 몇 마디로 설명하기는 어려운 일이다. 솔직히 뭐라고 표현해야 할지 난감하다. 가장 현학적인 지식들과 가장 천박한 욕설들이 이렇게 제멋대로 우격다짐으로 신나게 뒤섞여 있는 글을 나는 본 적이 없다. 이렇게 천진한 얼굴로 모든 걸 철저하게 비웃는 글을 본 적이 없으며, 자신이 산산조각 낸 잔해를 긁어모아 그 위에 이토록 우뚝 올라선 글 또한 본 적이 없으며, 그나마도 상체는 정장을 하고 하체는 벌거벗은 채 서 있는 것이다. 그러나 무엇보다 이 글을 독보적으로 만드는 것은 화려한 현학도 아니고 질펀한 천박도 아닌 바로 '부풀림'으로서 '허언증'이라고 부를 만한 것이다.
사실 허언증은 모든 글의 본질이다. 이 세상의 모든 글은 사실 '픽션'이며 '지어낸 이야기'이고 '거짓말'이다. 그것은 작가라는 글을 쓰는 주체가 의도를 가지고 그렇게 했다는 것이 아니라 '글'의 본래의 속성 탓이다. 우리는 결코 '의자'라는 단어로 의자 자체를 그대로 표현할 수는 없다. '의자'라는 단어는 단어가 되자마자 한없이 부풀어 올라 의자 그 이상, 혹은 심지어 전혀 다른 것이 된다. 그리하여 우리는 (우리의 개인적 의도와는 상관없이) 진실되기 위해 글을 쓰는 것이 아니라 진실로부터 자유롭기 위해 글을 쓰며, 다른 말로 하자면 우리가 글을 쓰자마자 진실은 우리를 멀리 내던지고야 만다. 다만 우리는 그것을 교묘하게 숨기고, 치장하고, 아닌 척 거드름을 피우고 있을 뿐이다. 그런데 [가르강튀아]와 [팡타그리엘]은 오히려 그 감추어진 부분을 찢어발기고 드러내고 강조함으로써 우리를 죄의식과 가증으로부터 해방한다. 말도 안 되게 부풀린 이야기를 들으며 우리는 어린아이처럼 즐거워진다. 마치 술에 취하듯 거짓말에 취한다. 그것은 이 글이 거짓말이 아닌 척 하기를 그만두었기 때문이며, 우리 역시 속아 넘어간 척 하기를 그만두었기 때문이다. 이제 우리는 순수하고 질펀하게, 그리고 말하자면 진정 진솔하게, 언어 자체와 어울릴 수 있게 된 것이다. 취했는데도 허벅지를 꼬집으면서 꼿꼿이 허리를 펴고 앉아 흘러내리는 머리카락을 자꾸 빗으로 가지런히 쓸어 넘기는 짓은 그만두자. 취했다면 취한 사람답게 옷도 열어재끼고, 바지춤을 열어 추태도 부리고, 비틀거리며 춤이라도 추는 것이 마땅하다. 야, 우리는 작고 초라한 인간이지만 언제나 기상만은 대단했지, 그렇지 않으냐, 소리도 고래고래 지르고 말이다. 거짓말은 우리의 한계를 부정하고 세상을 빙글빙글 돌아가게 한다. 그것은 바로 거짓말쟁이의, 술주정뱅이의, 오입쟁이의 쾌락이다. 그런 쾌락을 맨 정신에 방구석에 앉아 글을 읽으면서 느낄 수 있다니, 정말 놀라운 일이 아닌가.
줄거리 자체는 이 이야기에서 전혀 중요하지 않다. 이야기란 그저 놀기 위해 깔아놓은 멍석에 불과하다. 작가는 그 이야기 위에서 언어를 이리 굴리고 저리 던져가며 놀아재끼는데, 애석하게도, 그리고 당연하게도, 이 언어의 유희는 자신의 언어와 문화권 사람들에만 적합하다. 그러니 번역하면 그 맛이 현저하게 떨어질 뿐만 아니라 사실상 그 맛을 즐기기는 불가능해진다. 그저 그 개념을 객관적으로 조망하고 짐작할 수 있을 뿐이다. 그나저나 도대체 이런 글이 어떻게 나왔을까? 그리고 그것보다 더 궁금한 것은 어떻게 이런 글이 인정받게 되었을까? 나는 딱히 사대주의자는 아니지만, 예술 분야에서 만큼은 서구의 역사와 전통에 혀를 내두르게 된다. 그들에게서 예술은 단지 매체나 도구, 기교, 심지어 '작품'이 되기를 거부하고 기대되어지는 안전한 한계를 끊임없이 부정하고 부수면서 스스로 시대를 열어재끼려고 하는 유희적인 힘을 가지고 있다. 내 편견인지는 모르지만, 동양적 예술 미학에서는 낯선 정신이다. 동양은 내적 완성을 꿈꾸고 서양은 외적 반동을 꿈꾼다. (아마도 이 분야의 전문가는 '서양'과 '동양'의 구분조차 임의적이고 추상적이며 내가 지나치게 문제를 단순화해서 가상의 흑백논리에 빠졌다고 지적할 것이다.)
어쨌거나 이 책은 전혀 심각한 책이 아니다. 술주정뱅이의 횡설수설하는 넋두리라도 듣는 것처럼 낄낄거리고 읽을 수 있다. 그 안에 들어있는 (아마도) 고차원적인 비유라든가 치밀한 말장난은 다 이해하지 않아도 좋다. (어차피 다 이해할 수도 없으며 이해하라고 써놓은 것도 아니다.) 그렇게 웃음과 비웃음 사이를 오가다가도 슬쩍 비쳐 나오는 순진하고 천진한 이상향에는 잠깐 마음이 설레기도 한다. 그건 마치 아주 어린 시절에 적어 놓았던 우리 한평생에 대한 세세하고 장황한, 그리고 유치한 계획을 보는 것만 같다. 그것은 결국 거짓말이 되었지만 한 때 진실이기도 했었지. 온갖 종류의 거짓말들이 뒤섞여서 울려 퍼지는 요란한 합주 소리를 상상해 보라. 엉망진창 불협화음인 듯 하지만 듣다 보면 흥이 나서 옷을 모두 벗어던지고 사지를 흔들며 춤을 추게 된다. 그러나 잊지 마시라. 옷은 홀딱 벗었어도 신발은 꼭 신고 있어야 한다. 이 사람들아, 그게 예의가 아닌가.